첫 4세기동안의 기독교(2)
손오공
일반
0
1,647
2004.05.09 07:41
오리게네스(Origen, ACE 185~254)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출생. 그곳의 클레멘스가 운영하는 교리학교(敎理學校)에서 배우고 암모니우스 사카스에게서 철학을 교수받기도 하였다. 203년 18세 때 클레멘스의 뒤를 이어 동 교리학교의 운영자가 되었다. 로마 아라비아 그리스 등지를 다녀왔는데, 후에 데메토리우스의 미움을 사서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팔레스티나의 카에자리아(가이사리아)로 가서 그곳에 교리학교를 세웠다. 이 시기가 그의 문필활동의
최성기였으며 그 후로는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를 받아 254년경 티루스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서가 매우 많아 히에로니무스는 2,000권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 첫째 부류는 성서와 관련된 것인데,대표적인 것은 《헥사플라 Hexapla》이다. 이 책은 구약성서의 헤브라이어 본문과 네 가지 그리스어역 및 주석을 대조한 것이다. 둘째 부류는 체계적 신학에 관한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원리론(原理論) De Principiis》인데, 이른바 조직신학(組織神學)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셋째 부류는 그리스도의 변증적(辨證的) 저술로서, 《켈수스에 대한 반론(反論) Contra Celsus》이 대표적이다. 오리게네스의 신학사상의 근본은 그리스도교와 그리스철학을 조화 ·융합시킨 데 있다. 그 목적을 위하여 사용된 방법이 성서의 비유적 해석이다.
인간이 몸 ·마음 ·영혼으로 이루어졌듯이 성서에도 이 세 가지에 대응하여 자의(字義的) 도덕적 영적으로 각각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성서의 영적 의미는 철학적진리의 비유로 이해하였다. 이 방법에 따라 성서해석에 상당한 철학적 첨가가 이루어진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정통적인 유신론과 플라톤적인 세계관이 절충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은 아버지이신 신의 아래 위치한다.”고 하는 등, 몇 가지 점에서 교회의 전통적 해석에서 벗어나는 유설(謬說)이라고 공의회의 배척을 받았지만, 그리스도교 최초의 체계적 사색가(思索家)로서 이후의 신학사상 발전에 공헌한 점은 매우 크다. ]..이상 두산백과사전에서
그러면 오리게네스의 견해를 살펴 보기로 하자.
*신이외에는 완전한 형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별들은 살아 있는 이성적인 존재들이며, 신은 이 별들에게 이미 존재하던 영혼들을 주었다고 하였다. 그는 태양도 죄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인간의 영혼은(플라톤의 가르침과 마찬가지로)그가 태어날 때에 다른 곳에서 그에게로 임한다. 그리고 이 영혼은 천지가 창조될 때부터 이미 존재하였던 것이다.
*누스(Nous)와 영혼은 플라티노스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구별되고 있다. 즉 누스가 타락되면 영혼이 된다. 그리고 영혼도 덕을 갖게 되면 누스가 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영혼이 다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되며, 또 그때에는 육신을 갖지 않게 되며, 마귀들도 드디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는 구약의 원전을 확립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으며 이는 제롬(St. Jerome)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된 원인으로 보여 진다.한편 그의 청년 시절은 바이블을 너무나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큰 오류를 범했다고 고백하고 있다.예를 들어 보자.
<<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다(마태, 19장 12)>>
이러한 바이블 구절을 근거로 하여 그는 육체의 시험을 피하는 여러 방법론을 무모하게 주장하였으며 이는 교회에 의해 즉시 정죄되었고 그가 성직자가 되지 못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다 한다.
오리게네스의 저술 중 가장 저명한 것으로<<켈수스를 논박함>>(Against Celsus)이라는 책이 있다.
여기서 켈수스와 오리게네스의 대화를 잠깐 살펴 보기로 하자.
*켈수스는 우선 기독교인들은 불법적인 단체를 조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오리게네스는 이에 대하여 부인하지 않고, 그것은 하나의 덕이 되며, 마치 폭군을 살해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라고 답변한다.
*켈수스는 어찌하여 기독교를 싫어하는가에 대하여 진정한 이유를 말한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는 유태인들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유태인은 야만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오직 그리스인들만이 야만인들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오리게네스는 아래와 같이 답변하고 있다. 누구든지 일단 그리스 철학에서 복음으로 기울어지기만 하면, 이 복음이야말로 참된 진리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며, 이에 대하여 그리스인들의 지능이 어느 정도라는 것을 만족할 만하게 입증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은 그 자체의 증명을 갖고 있으며, 이것은 그리스의 변론으로 확증한 어떤 증명보다 더 신성하다. 이와 같은 방법을 사도는 [성령과 능력의 계시]라고 불렀다.
오리게네스의 사상은 특별한 그리스도론과 결합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오리게네스 이후에 알렉산드리아의 상황에서 괄목할 만한 영향을 끼쳤다. "예수와 함께 인성과 신성이 함께 결합되기 시작하였으니, 이 신성과의 결합으로 인해 인간 본성이 신화될 수 있었다."부언하면 오리게네스로 부터 예수의 신성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오리게네스는 교부의 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으나 나중에 그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단 사상을 주장한 사람으로 비판을 받았다 한다.
1)플라톤이 가르친 것과 같은 영혼의 선재성(불교의 윤회론과 유사함).
2)그리스도의 신성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성도 육신을 받기 이전에 존재하였다.
3)우리의 몸은 부활할 때 완전히 영체로 변화될 것이다
4)모든 사람과 마귀들까지도 결국은 구원을 받게 된다.
기독교 역시 승리자의 역사임에 예외는 없다고 보여 진다.
초창기 교리가 정립되기도 전에 이단 논쟁을 시작하는 기독교의 모습에서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것은 소위 사랑이란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관념 보단
오로지 다수가 되기 위한 승리자가 되기 위한 인간들의 추악한 아집만 엿 볼 수 있다는 그 현상이 가슴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