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노력은 배제하고 작의적 해석을 너무나 쉽게 허락하는 기독교계의 고질적 풍토라고 할 수 있는 바,그러한 일차적인 책임은 바이블 작가 혹은 편집자에게 있다고 보여진다.
부언하자면 바이블에 묘사된 소위 비유로 표현된 문장들이 너무나 미숙한 표현들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신약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설교들은 그러한 경향이 특히 심하다고 판단되는 데,예수의 비유 설교 중 필자의 심기를 불편하게하는 대표적 표현으로 열처녀의 비유가 있다.
우선 바이블을 인용하겠다.
1 "하늘 나라는 열 처녀가 저마다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것에 비길 수 있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로 왔다.
3 미련한 처녀들은 등잔은 가지고 있었으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다.
4 한편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잔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있었다.
5 신랑이 늦도록 오지 않아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저기 신랑이 온다. 어서들 마중 나가라!'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7 이 소리에 처녀들은 모두 일어나 제각기 등불을 챙기었다.
8 미련한 처녀들은 그제야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기름을 좀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우리 것을 나누어 주면 우리에게도, 너희에게도 다 모자랄 터이니 너희 쓸 것은 차라리 가게에 가서 사다 쓰는 것이 좋겠다' 고 하였다.
10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 갔고 문은 잠겨졌다.
11 그 뒤에 미련한 처녀들이 와서 '주님, 주님, 문 좀 열어 주세요' 하고 간청하였으나
12 신랑은 '분명히 들으시오. 나는 당신들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하며 외면하였다.
13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
1)표현 기법의 무리함 그리고 어색함
소위 열처녀의 비유로 알려진 상기 문장은 마태복음(25장)에만 묘사되어 있는 데,마태 편집자의 독창적인 작품이라기 보다는 마가복음(13,33-37) 과 누가복음(12,35-38; 13,25-28)을 참조하여 편집했다는 가설에 좀더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구성과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스러운 그리고 작위적인 표현이 너무나 쉽게 눈에 띄일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여 진다.
몇가지 지적을 해보겠다.
*신랑이 왜 밤중에 와야만 하는가?
신부 친구들이 들러리를 서는 것, 신랑이 신부집을 예고하지 않고 방문하는 것 등은 그당시 이스라엘의 풍습의 하나였다고 한다. 문제는 신랑이 왜? 한밤중에 신부집을 방문해야만 했을까하는 의문이 되겠다.
문장 작성 시 메타포를 사용한다하더라도 이러한 무리한 설정은 독자의 동감을 얻기 힘든 게 상식인데 마태 편집자는 독자를 너무나 무시하는 버릇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신랑이 왜? 들러리에게 화내는가?
신부 친구들이 좀 어리석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잔칫날 신랑이 들러리들을 그렇게 박대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신랑이 신부 친구들을 전부 알아야만 했을까?
*등잔만 준비하고 기름은 준비하지 않는다?
신랑이 너무나 늦게 도착하여 준비한 기름이 충분하지 않았다.....이렇게 표현했더라면 예수 재림의 불확실성과도 연계되고 문장 표현의 보편성도 확립될 수 있다고 보여지는데,마태 편집자는 너무나 무리하게 문장을 구성하였다고 판단된다.
생각해 보시라....등잔은 준비하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들러리가 무려 50%라니....에혀....
그런데 마태 편집자도 쓰다 보니 무언가 이상했나 보다.
3절에선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표현했는데도 8절에선 갑자기 기름이 모자라는 것으로 묘사한다.....역시 마태 편집자의 표현력 부족 혹은 주의력의 산만함이라고 단정하지 아니할 수 없는 바이다.
2)이신칭의론과 어긋난 도그마
보편적 기독인들이 상기 비유를 풀이하는 바는 아래와 같으리라 믿는다.
*신랑은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뜻한다.
*열 처녀는 그리스도인을 뜻한다.
*슬기로운 다섯처녀는구원받을 그리스도인들이요,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구원에서 제외될 그리스도인들이다.
*예수의 재림은 기독인들의 생각보다는 늦을 지 모르지만,필히 오신다.
*그러므로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대개 이정도인데. 문제는 기름이 과연 무엇을 상징하느냐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사실 마태 편집자의 의도는......예수님이 재림을 좀 늦추시더라도 방심하지 말라, 그분은 예기치 않은 때에 꼭 오신다, 그분이 재림하실 때까지 그분의 말씀을 충실히 행하라, 그것만이 재림하실 예수님을 맞이하고 구원받는 길이다.....라고 판단된다.
가라지의 비유와 동일한 맥락인데, 신자 중에서도 구원받을 사람은 일부라는 의미가 되겠다.
그렇게 보면 기름은 분명히 기독인들의 행위로 풀이함이 마땅하다.
그러나,구원은 행위로 이루어지 않는다는 바울의 이신칭의론에 대입하자면 여기에서의 기름은 결코 행위가 될 수 없다. 즉 야고보 공동체와 바울 공동체의 어긋난 구원관의 논란이 여기서도 재탕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바울론자들은 기름을 대개 성령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경우 그 문제점을 한번 지적해 보기로 하겠다.
*기름이 성령이라고 한다면 성령을 다른 곳에서 사거나 구할 수 있을까?....성령을 판매하는 가게라...에혀...
*재림이 지체된다고 하였을 때에, 충분한 여분의 성령을 더 준비하여야만 한다는 이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여분의 성령을 어떻게 준비할까?
역시 이 비유도 바울의 신학관과 야고보 혹은 마태 공동체의 신학관 차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히 풀 수없는 비유풀이가 아닌가한다.
3)비윤리적인 작가의 의도
마태가 묘사하고 있는 소위 재림주의 모습을 보기로 하자.
*그는 재림이란 달콤한 미끼를 던지지만 그 시기를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는 자이다.
*그는 신도들을 그저 들러리 정도로 생각한다.
*그는 초림으로는 부족하여 재림이란 이루지 못할 약속으로 미혹하지만, 신도들에겐 단 한번 만의 기회를 주는 냉혹한 자이다.
*하늘나라를 비유로 밖에는 설명 못하는 어쩌면 하늘나라에 대해 전혀 모를 수도 있는 자이다. 그러면서도 인정을 하지 않는 자이다.
*게다가 어리석으면 혹은 무식하면 상대도 하지 않는 자이고.....
똑똑한 사람만 갈 수 있는 하늘나라는 과연 어떤 곳일까?
4)이용하는 목사들 그리고 이용당하는 여신도들
바이블에는 예수가 신랑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이 전혀 없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신도들이 신부가 된다는 묘사도 틀림없이 없다.
그런데도 상기의 열처녀 비유를 멋대로 해석하여 신랑되신 예수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된다고 사기치는 무리들이 있다.
다시 기억하자.열처녀들은 모두 신부의 들러리들임을!!
좋다.그것은 문장 해독력이 다소 부족한 소치라고 이해를 해주겠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신랑 흉내를 내며 여신도들을 죄다 자신의 신부들로 착각하는 일부 목사들의 파렴치한 작태가 아닌가한다.
그러나,목사들이여 그리고 여신도들이여....
그대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바이블 조차도 그대들을 신부로 인정하지 않음을 필히 알고 계시라.
그러하다.
그대는 두가지 오해를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첫째는 바이블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거룩한 경전이라는 것
그 다음은 예수 재림 시, 예수의 신부가 되겠다는 거룩한 욕심!!
참조: *구약에서는 야훼가 이스라엘 백성과 혼인을 맺는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곧,
신랑은 야훼를, 신부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은유로 나타난다(호세 2,18; 3,1; 이사54,5-8; 62,4-5; 에제 16,7-8).
*일부 교회에서는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가리키는 은유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9,15; 요한 3,29; 2고린 11,2; 묵시19,7; 21,2.9)....물론 교회의 작위적 풀이임
*마태 25,1-13에서만은 교회를 뜻하는 은유가 신부 대신 신부의 여자 친구들이다.
*구약에서 메시아를 뜻하는 은유로 신랑을 거론한 적이 없다. 예수도 자신을 신랑이라고 한 적이 없다.
http://www.antichrist.or.kr/?doc=bbs/gnuboard.php&bo_table=onna&page=1&wr_id=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