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인들에게 구약은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을까?
주지하는 바 신약과 구약은 신에 대한 관념이 분명 상이하며 구원관 그리고 사후세계에 대한 영생관 마저 틀리게 구성되어 있다.
종교를 구성하는 세가지 큰 틀인 신관,구원관,영생관이 이렇게도 상이한 경전이 동일 종교의
동일 경전이라는 게 정말 놀랍기만 하지 않은가?
물론 대부분의 기독 신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의 기본 교의인 원죄론과 대속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창세기 설화가 필요했으며 예수가 메시아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메시야의 출현을 고대했던 이사야,예레미야 등의 선지자들의 기록이 요구될 수 밖에 없었다고 보여 진다.
그러하다.
신약만으로 기독교의 도그마를 완성하기에는 헛점이 많다는 것을 그들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보니 어쩔 수 없이 구약을 차용할 수 밖에 없었다.
즉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종교인 유대교의 경전이 필요했다는 의미인 바, 기독교 논리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차용한 그 구약이 오히려 기독교의 비논리화를 더욱 극대화한 결과를 낳고 말았으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결과라 아니할 수 없겠다.
그리고 신약의 기자들이 구약을 너무나 많이 인용한 점도 구약을 배제할 수 없는 큰 이유의 하나라고 사료된다.(위경이나 외경도 무수히 인용했지만 교부들의 종교 권력 다툼의 결과로 바이블에서 선택되지 못하는 비운에 처했다.)
신약 중 마태 복음은 유난히 구약을 많이 인용했으며 예수의 일생 자체를 구약의 예언과 연결 시키는 모험을 시도하였다고 유추되는데 이 글에서는 마태복음 기자가 구약의 예언이 예수에 의해 성취되었다고 주장하는 장면과 그 진실성에 대해 거론하기로 하고져한다.
1)예수의 출생과 이름
<<이 모든 일로써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는 뜻이다 (마태 1:22,23) >>
우선 마태 기자가 인용한 이사야서의 기록을 살펴 보기로 하자.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
*상기 문장만 보면 정말 예언이 이루어졌구나하고 감탄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기독인들이 늘상 주장하는 대로 바이블은 한 부분 혹은 일부 귀절만 보아서는 안되겠다.
*7장의 앞 부분과 8장을 자세히 검토해보면 임마누엘은 이사야의 둘째 아들...."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아이임을 누구나 알게 되리라 확신한다.
*그외 처녀와 동정녀의 히브리어 원어 차이에 대해서는 생략하겠다.
*마태 편집자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한다면 예수는 이사야의 둘째 아들이 되어야만 하는 비극에 처하게 되는 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자,우리는 첫출발 부터 마태 기자의 오류를 지적할 수 밖에 없는 데 어쨋던 시작을 하였으니 다음 차례로 넘어 가겠다.
2)예수의 출생 장소
<<왕은 백성의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다 모아 놓고 그리스도께서 나실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서의 기록을 보면, '유다의 땅 베들레헴아, 너는 결코 유다의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영도자가 너에게서 나리라' 고 하였읍니다." (마태 2:4~6) >>
이 분은 구약의 어떤 귀절을 참고로 하였을까?
미가서를 같이 보기로 하자.
<<그러나 에브라다 지방 베들레헴아, 너는 비록 유다 부족들 가운데서 보잘 것 없으나 나 대신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너에게서 난다. 그의 핏줄을 더듬으면, 까마득한 옛날로 올라 간다.
(미가 5:1,2) >>
*예수는 과연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까?
*마태 편집자는 상기 미가서의 예언을 충족시키기 위해 베들레헴을 등장시켜 출생 장소를 조작하였다고 판단되는 바 미가서를 단 한번이라도 정독한 사람은 미가 편집자가 기대한 자와 예수라는 가공의 인물은 전혀 별개의 인물이라는 것을 인식하리라고 단언한다.
*그러하다.미가는 군사적 지도자 혹은 정치가의 등장을 고대하며 예언했으며 그 예언은 아직도 유보되고 있음이 진실이 되겠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대왕국의 멸망 그다음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을 했던 유대인들의 소망은 당연히 정치적 메시아의 도래였을게다.
*그러나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게된 것은 또다른 이민족인 페르시아의 고레스왕 덕분이 아니었던가?
*이사야서의 기자는 고레스를 메시아로 숭배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도 보여주고있다.
3)도피 생활과 출애굽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서 살았다. 이리하여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내가 내 아들을 에집트에서 불러 내었다"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마태 2:15) >>
예수의 가족들은 왜 애굽으로 도피했을까?
당시 애굽과 유다는 동맹국이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왜 파르티아(페르샤) 혹은 아라비아로 도피하지 않았을까?
이미 눈치를 챈 분들도 계시겠지만 마태 편집자는 모세의 출애굽을 기억했으며 예수 신화를 모세 신화에 접목하고져한 의도였음이 틀림없다고 판단된다.
그러면 이 내용은 구약의 어디 부분을 참고했을까?
호세아서가 정답이 되겠다.같이 살펴 보기로 하자.
<<내 아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너무 사랑스러워, 나는 에집트에서 불러 내었다.(호세아 11:1) >>
*마태편집자는 호세아서를 단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애굽에서 불러냈다는 내 아들 이스라엘과 예수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만약 호세아서에 묘사된 이스라엘이 예수라면 예수가 바알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웠다는 넌센스가 진실이 되어야만하는 데(호세아 11:2).....바알신을 경배하는 예수라?
4)유아살해
<<이리하여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 "라마에서 들려 오는 소리, 울부짖고 애통하는 소리, 자식 잃고 우는 라헬, 위로마저 마다는구나!"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마태 2:17,18) >>
이 설화 역시 모세의 출생시 파라오가 유아살해를 했다는 전설을 의식한 마태 편집자의 과욕이 빗어낸 넌센스라고 사료된다. 상기 문장은 예레미야서를 인용하였는데 같이 감상해 보기로 하자.
<<나 야훼가 말한다. 라마에서 통곡소리가 들린다.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울고 있구나. 그 눈앞에 아이들이 없어 위로하는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 가지 않는구나. (예레미야 31:15) >>
*주지하는 바 라마는 갈리릴 호수 근처의 고장인데 유아살해의 현장 베들레헴과 라마는 과연 몇 킬로나 떨어졌을까?
*유아 살해를 당한 장본인들인 베들레헴 혹은 예루살렘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 데 전혀 딴 고장 사람들인 라마 사람들이 왜 통곡을 해야만 했을까?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