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상상을 해보자 아니 생각을 해보자. 지구촌쯤이 아니고 태양계를 벗어나 은하계 또 다른 은하계.....등 인간 사고력의 한계를 절감케하는 그런 우주를 창조한 조물주가 있다고...혹은 그 우주의 질서를 주관하는 궁극적 실재가 있다고.... 만약 그러한 초월자가 존재한다면 그의 궁극적 관심은 무엇일까? 사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그러한 궁극적 실재의 실체를 규명하다는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 어쨋던 한번쯤 상상을 해보기로 하자. *아마 우주의 질서 유지가 첫번째 목적이 아닐까하는 게 필자의 소견이다. *지구촌도 무한 우주의 구성 요소의 하나임은 틀림없으니 지구도 그 궤도를 벗어나게 하지않게 하는 게 그의 목적이자 임무의 하나에 속할 거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면 궁긍적 실재인 그 초월자는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모른다는 게 정답이 되겠지만 ....조그만 가정을 해보자. *우리는 개미의 사회 생활을 알고 있다.그 곤충은 일만을 하는 종,전투만을 주업으로 하는 종,생식만을 하는 종,모든 종들의 어미....등으로 나름대로의 조직와 문화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 개미들은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그들은 인간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하고 있을까?.... *사실 좀은 유치한 발상이지만 인간이라는 종과 개미라는 종과의 벌어진 간극 보다는 더욱 현격하게 차이나는 게 인간과 궁극적 실재와의 간격임은 틀림이 없는 진실이 아닌가한다. *개미와 인간은 시간과 공간에 종속되는 유사점이라도 있겠고.... *필자 개인의 우견으론 인간 각 개인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을 지라도 인류 전체가 저지르는 자연 파괴 정도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쯤은 해 보는 데..... 자 이쯤이 필자의 궁극적 실재에 대한 관념인데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신관에 대해 다시 거론해 보기로 하겠다. 우선 구약의 야훼란 신은 그래도 쬐끔은 궁극적 실재에 근처라도 가고자 한 흔적이 있다고 판단된다. 물론 그 야훼는 *질투도 하고 *후회도 하고,시험도 하고,의심도 하고.... *가끔은 근심도 하고 *게다가 증오와 피,전쟁,살륙..그리고 편집적 이스라엘 사랑에서 벗어 나지 못하는 인격신의 한계를 보여 주고 있지만 *그래도 그 신은 당당한 면에서는 신적인 모습을 쬐끔은 보여 주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신약에서 처럼 믿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신이란 뜻이다. 구약에 단한번[합2 : 4] 등장하는 믿음이란 단어가 신약에는 무려 224회 등장한다. 원죄론이니...대속이니...이신득의니.... 이러한 도그마는 일단 생략하자. 단 한가지,신약의 기자들이 그들의 믿음에 대해 얼마나 자신이 없었으면 혹은 믿고자 애를 썼으면 그렇게나 믿음이란 단어를 남발했을까? 우리는 공기의 고마움을 어느 누가 강조하지 않아도....그 실체를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우리는 공기가 있음을 믿고 그 고마움을 알고 있다. 기독인들은 신에 대한 관념들을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그대들이 강요하는 혹은 애원하는 ...가끔은 협박하는..... 그 삼위일체의 신이 진정 궁극적 실재라면 그렇게나 인간들의 믿음을 원할까? 하는 의심을 한번쯤 해보시길 권한다. 그리고 그 전도의 열매...조직이 되었던....물질이 되었던...명예가 되었던.... 그 결과를 향유하는 자 혹은 집단은 인간이 틀림없지 않은가..... 궁극적 실제 즉 초월자가 인간의 시간이나 물질,명예등이 왜? 무엇때문에 필요로 하겠는가? 사족:개미는 개미들 스스로의 한계 내에서 그들의 사회를 구축하고 유지하 듯 인류는 인류 만이 추구하는 모랄 내에서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정답이 아닌가 한다. 지금도 신의 이름을 사칭하는 무리들은 .....다시 생각해 보자....과연 개미가 인간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있는 지...어떠한 존재인지 과연 알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