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학을 동원하는 무리들(물론 수비학도 카발라를 추종하는 사람...오시리스 숫자를 인용하는 사람...등등 여러가지 견해가 등장할 수 밖에 없다.)
*성령의 감화로 풀이했다고 사기치는 무리들
*그외 전천년설이냐...후천년설이냐....아니면 무천년설이냐에 따라 그 요망한 숫자는 이리저리 둔갑을 해왔던 게 사실이다.
바이블에는 이 숫자가 세번 등장한다.
정리해 보기로 하겠다.
[스2 : 13]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육 명이요
[대하9 : 13] 솔로몬의 세입금의 중수가 육백육십육 금 달란트요
[계13 :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만일 육백육십육이란 숫자가 악마의 숫자라고 가정한다면 상기 에스라서와 역대왕하에 기록된 숫자도 틀림없이 어떠한 의미를 부여해야만 한다.
비유풀이를 신봉하는 어떤 부류의 집단들은 바이블에 기록된 모든 숫자가 의미있다고 너무나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데....즉 육은 죽음과 부정을 의미하는 숫자라고 어이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바
그렇다면 솔로몬의 영광을 묘사하기 위해 차용된 상기 육백육십육 금 달란트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그리고 바빌론 유수 후 이스라엘로 귀환한 포로의 명단을 기록한 에스라서에서의 숫자는 어떻게 풀이해야만 하는가?
게다가 이 귀환포로의 숫자는 느헤미야서를 보면 또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느7 : 18]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칠 명이요
바이블이 성령의 감화에 씌어진 글이라면 에스라서 기자와 느헤미야서 기자는 왜 이렇게 다르게 기록했을까?...두 사람에게 임한 성령은 서로 다른 성령인가....
바이블은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된 수많은 전승 그리고 수많은 기록자들이 편집한 글모음집일 뿐이다.
그렇다보니 이렇게 상이한 숫자..틀린 묘사 등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물론 기록자 중에는 수비학을 신봉했던 사람도 있었을 수 있다.그러한 사람은 당연히 숫자에 의미를 두고 기록했을 터이고...수비학에 전혀 지식이 없는 사람은 숫자 자체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기록했을 터이다.
계시록에 묘사된 육백육십육이란 숫자는 필자의 견해론 수비학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사료된다. 그당시 헬라어는 그 알파벳 문자로 숫자를 표기하다 보니 기록자가 상징으로 표현하고 싶은 무리(필자는 로마로 추정한다)가 우연히 666이란 숫자와 일치된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의 글 "666의 정체와 제1차 유대 전쟁" 참조)
사족:만일 육이란 숫자가 죽음과 부정을 의미한다면 천지창조가 육일만에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결국 야훼의 창조는 파멸로 끝나게 된다고 또 다른 사기를 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