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황홀했으면.....고레스를 그리스도로 책봉한 야훼

얼마나 황홀했으면.....고레스를 그리스도로 책봉한 야훼

손오공 0 1,509 2004.05.09 08:29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2~6) >>

 


상기 귀절은 신약(마 8:17,행 8:30-35) 에도 인용되어 있지만 대다수의 기독인들은 이 글이 예수의 형상을 묘사한 글이며 그 수난사를 예언한 것이라는데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과연 그러한가?


 


우선 이 문장은 52장 13절 부터 53장 12절 까지가 한 단락이 됨을 우선 알아야 된다.소위 네번째 야훼의 종이라는 찬송이 되겠다.(보편적으로 기독인들은 한 문장 가지고 해석하기를 즐겨함을 기억하자.) 그러면 여기에 표현된 종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라는게 오늘의 주제가 되겠다.


 


<<"이제 나의 종은 할 일을 다 하였으니, 높이높이 솟아 오르리라.
무리가 그를 보고 기막혀 했었지. 그의 몰골은 망가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었고 인간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메마른 땅에 뿌리를 박고 가까스로 돋아난 햇순이라고나 할까?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 ......반역자의 하나처럼 그 속에 끼어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그 반역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 때문이다. (이사야 52:13~53:12) >>


 


우선 구약에서 메시아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아 보기로 하자.
주지하는 바  메시아의 의미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메시아는 승리자로, 기름부음 받은 다윗 왕으로써 내정되어 있다. 이사야 11장을 보시라. 그 뜻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는 야훼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아 겉만 보고 재판하지 아니하고 말만 듣고 시비를 가리지 아니하리라. 가난한 자들의 재판을 정당하게 해 주고 흙에 묻혀 사는 천민의 시비를 바로 가려 주리라. 그의 말은 몽치가 되어 잔인한 자를 치고 그의 입김은 무도한 자를 죽이리라. 그는 정의로 허리를 동이고 성실로 띠를 띠리라. (이사야 11:3~5) >>


 


즉 유대인의 메시아관은 다스리고, 악을 파괴하며 멸망시키는 승리자의 모습, 그러한 개념이 유대인의 보편적 메시아관이 아니던가?


이러한 승리의 지배자가 동시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가 되며, 자기의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겠는가?라는 유대인의 일반적 의문이 마태 8장에 묘사된 제자들의 의문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렇다.구약의 유대인들이 갈망하고 기대하는 메시아는 승리자이지 고난받는,처참한 모습이 아니란 것을 기억하자.부언하자면 그리스도는 정복하고 지배하기로 되어있지, 정복되고 고난받기로 되어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종은 과연 누구일까? 하는 의문이 남게 된다.
신학자들의 견해를 우선 소개하기로 하겠다.
*제이 이사야 저자 자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
*특별히 고난을 많이 받은 예레미야 선지자일 거라는 주장
*여호야김이나 시드기야 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그외 이스라엘 공동체라고 해석한다 등등


 


여기서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사야서에 나타난 종에 대한 관념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사료된다.한번 정리해 보기로하자.


 


<<"이제 나의 종은 할 일을 다 하였으니, 높이높이 솟아 오르리라. (이사야 52:13) >>


*이 문장을 보면 종은 확실히 이스라엘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너희 가운데 야훼를 두려워하는 자가 있거든 그의 종이 하는 말을 들어라. 한 가닥 빛도 받지 못하고 암흑 속을 헤매는 자가 있거든 야훼의 이름에 희망을 걸 일이다. 자기 하느님을 의지할 일이다. (이사야 50:10) >>
*여기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자로 묘사되어 있다. 즉 예언자 정도로 보면 되겠다.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 너에게서 나의 영광이 빛나리라." (이사야 49:3) >>
*이 문장에선 다시 이스라엘을 뜻한다.


 


<<야훼께서 나를 지극히 귀하게 보시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신다. 야곱을 당신께로 돌아 오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을 당신께로 모여 들게 하시려고 나를 태중에 지어 당신의 종으로 삼으신 야훼께서 이제 말씀하신다. (이사야 49:5) >>
*확실히 종은 이스라엘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문장이 되겠다.


 


대개 이 정도가 제2 이사야서에 서술된 종에 대한 개념인데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그리스도나 다윗의 지배자라고 불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되겠다.


이러한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여기서의 종은 "고난 받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지 않을까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반증으로 아래의 문장을 보시라.
<<그리하여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오래 살리라....(이사야 53;10) >>
만약 그가 예수라면 예수의 후손이 누구이지? 하는 의문을 풀어야 하는 숙제도 생긴다.


 


동의하시는가?
적어도 이사야서에 묘사된 종은
메시아가 아님은 확실하다고 사료되는데 그대의 생각은 아직까지도 예수로 생각하시는가?


 


그러면 제이 이사야 기자가 생각한 메시아는 누구였을까?


 


이 대답은 황당하게도 이방인 왕인 페르샤의 고레스왕이 되겠는데 이방인을 유대인의 왕이요 제사장이며 메시아인 기름받은 자로 생각하는 유대인들의 변형된 사고관을 이 글에서는 볼 수 있다.
물론 처참했던 유배 시절을 끝내게 해주고 더우기 야훼를 믿어도 된다는 신앙의 자유도 허락하는 고레스 왕이 메시아 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필자의 과문함일까? 유대인의 그 선민사상과 철저히 반함에 연민을 가져 본다.일단 그 장면을 보기로 하자.


 


<<나는 고레스에게 명령한다. "너는 내 양을 쳐라." 그는 내 뜻을 받들어 이루리라. "너는 예루살렘을 재건하여라. 성전의 기초를 놓아라." (이사야 44:28) >>



<<야훼께서 당신이 기름 부어 세우신 고레스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의 오른손을 잡아 주어 만백성을 네 앞에 굴복시키고 제왕들을 무장해제시키리라. 네 앞에 성문을 활짝 열어 젖혀 다시는 닫히지 않게 하리라. (이사야 45:1) >>


 

결국 유대인들은 고레스에 대한 기대감과 고마움을 야훼에 대한 신앙으로 왜곡함을 엿볼 수 있는데,고레스가 만약 이 글을 봤다면 웃었을까?....아니면 가련한 민족....하며 비웃었을까?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우리나라가 미국의 도움으로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났을 때 당시 미국 대통령 트루만이 우리 민족 고유의 "옥황상제" 혹은 "단군할아버지"의 힘을 빌어 우리나라를 해방시켰다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겠다.


 


어쨋던 이방의 왕을 그들의 메시아로 생각했음은 발상의 큰 전환이라고 보여 진다.
아마 이러한 경향이 먼 후일 기독교의 이방 선교의 합리화에 기여하지 않았을까,하고 추측해 본다.


 


분명한 것은 이사야 53장은 예수의 고난사를 예언한 것은 분명아니라는 사실이 되겠다.


 


사족:만약 이사야서의 종이 메시아 혹은 야훼의 아들로 둔갑했다면 예수는 필히 장가를 가서 후손을 두고 오래 오래 (33년 정도가 아니고...)살았어야지 이사야서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보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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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항....고레스왕은 누구인가?]


 


고레스(Cyrus) 
 
 먼저 표면적으로 구약 당시의 고레스왕을 살펴보면, 바사(페르시아)제국의 건설자로서(재위 BC 559~529), 키루스 대왕(Cyrus the Great)이라고도 불리우며(캄비세스 1세의 아들), 헤로도토스의 문헌에 보면 생후 즉시에 산중에 버려져 이리의 젖으로 자랐다고 한다. BC 559년 안샨왕이 되었으며, BC 550년에는 아스티아게스를 쳐서 메대(메디아)를 멸망시켰고, BC 546년에는 리디아의 도읍 사르디스를 함락시켰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연대 즉 BC 538년 갈데아(신바빌로니아)를 멸하여 바벨론에 잡혀 있던 유대인들이 이 때 해방받게 되었다.


1. 생애와 전설


BC 590~580년 메대(메디아)가 아니면 페르시스(지금의 이란 파르스)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고레스라는 이름이 개인의 이름인지 군주가 되었을 때 부여된 왕호(王號)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그 의미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아케메네스 제국이 창설된 뒤에 이란과 관련된 자료에 그 이름이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 이름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고레스(키루스) 대왕이 그 이름을 사용한 페르시아 통치자로는 최소한 2번째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아카드어(그리스도교 이전 시대 메소포타미아 언어)로 된 한 설형문자 문헌에는 "그는 항상 왕권을 행사해온 가문 출신으로 안샨 왕 테이스페스 대왕의 후손이며 안샨 왕 고레스(키루스) 대왕의 손자이고 안샨 왕 캄비세스 대왕의 아들이다. 어쨌든 고레스(키루스)는 오랜 통치자 가문 출신인 것이 분명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생애에 관해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는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저작이다. 크세노폰이 쓴 이상화된 전기는 역사논문이라기보다 이상적 통치자에 관해 그리스인들을 교양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고레스(키루스)가 페르시아의 자기 나라 백성들만이 아니라 그리스인과 다른 민족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페르시아인들은 고레스(키루스)를 자신들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이후의 아카이메노스 왕조 군주 가운데 그렇게 존경 받은 인물은 없었다. 헤로도토스와 크세노폰, 그리스의 사가인 테시아스 등이 이야기하는 키로스의 어린 시절은 고레스(키루스) 전설이라고 할 만하다. 그것은 명백히 한 왕조의 창건자에 대해 거의 초인적인 자질을 지녔다고 믿는 민간신앙의 정형(定型)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이란 역사에 등장하는 후기 왕조의 창건자들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믿음이 존재한다. 전설에 따르면 메대(메디아)인의 왕이며 페르시아인들의 대군주인 아스티아게스가 자기 딸을 페르시스에 있는 자기 신하인 캄비세스라는 군주와 결혼시켰다. 이들 사이에서 고레스(키루스)가 태어났다. 그 아기가 자라서 자기를 멸망시키는 꿈을 꾼 아스티아게스는 고레스(키루스)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의 수석고문관이 아기를 죽이는 대신 양치기에게 주어 기르게 했다. 10세가 된 고레스(키루스)는 뛰어난 자질 때문에 아스티아게스에게 발각되지만 아스티아게스는 자신의 꿈에 개의하지 않고 주변의 권유를 받아들여 살려주었다. 페르시스에서 성인으로 자란 키로스는 자신의 외할아버지이며 대군주인 아스티아게스에게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아스티아게스는 군대를 이끌고 고레스(키루스)의 반란을 진압하려고 했으나 BC 550년 그의 군대가 그를 배신하고 고레스(키루스)에게 항복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 고레스(키루스)의 정복역사


메대(메디아)인의 제국을 계승한 뒤 고레스(키루스)는 먼저 이란 고원에 사는 이란 부족들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한 뒤 서방으로 확대해나갔다. 소아시아의 리디아 왕 크로이소스는 아스티아게스가 몰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메대(메디아)인을 희생시켜 자기 영토를 확대했다. 고레스(키루스)는 메대(메디아) 왕의 후계자로서 리디아를 치러갔다. 리디아의 수도 사르디스는 BC 547(또는 546)년에 함락되고 크로이소스는 살해되거나 분신자살했다. 어떤 자료에는 그가 고레스(키루스)의 포로가 되어 좋은 대우를 받았다고도 나온다. 리디아 왕의 신하국이던 에게 해 해안지방 그리스의 이오니아 도시들은 이제 고레스(키루스)에게 복속되었으며 대부분이 평화적으로 굴복했다. 몇 군데 반란을 일으킨 그리스 도시들은 나중에 가혹하게 진압당했다. 그 다음에 고레스(키루스)는 바빌로니아로 화살을 겨누었다. 그곳의 군주 나보니두스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을 구실로 그는 평야지대를 침략했다. 거대도시 바벨론의 민족신인 므로닥(마르두크/렘 50:2)를 섬기는 제사장들까지 나보니두스에게 등을 돌렸기 때문에 정복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BC 539년 10월 고대 세계의 가장 큰 도시였던 바벨론이 바사(페르시아)인의 수중에 떨어졌다.


구약 에스라 1:1~4절에서 고레스는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인을 해방시켜 고향에 돌아가게 해준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바빌로니아인과 다른 민족들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풀었다. 그는 므로닥 신을 존중하고 지방 관습을 지지하는 한편 지방 신들에게 제물을 바쳐 지방 주민들을 무마했다.


바벨론의 점령으로 고레스(키루스)는 메소포타미아 뿐만 아니라 이전에 바빌로니아인들이 정복했던 시리아와 팔레스티나까지 수중에 넣었다. 소아시아에 있던 실리시아의 왕은 고레스(키루스)가 크로이소스를 공격할 때 고레스(키루스)의 편을 들었기 때문에 실리시아는 고레스(키루스)의 제국 내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했다. 이와 같이 군사력과 외교적 수단까지 동원해 고레스(키루스)는 당시 유례가 없었던 최대 제국을 건설했다. 고레스(키루스)는 몇 군데에 도읍을 두었던 것 같다. 하나는 예전에 메대(메디아)인의 수도로 오늘날의 하마단에 해당하는 엑바타나 시였고, 다른 하나는 페르시스에 지은 제국의 새 수도 파사르가다에로 고레스(키루스)가 아스티아게스에게 승전을 거두었던 터에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남아 있는 유적은 얼마 안 되지만 방문객들의 찬탄을 자아낸다. 고레스는 바벨론을 겨울 수도로 삼았다.


결코 페르시아 국수주의자가 아니었던 고레스는 피정복민들에게서 기꺼이 배우는 자세를 취했다. 그는 메대인을 무마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페르시아인과 결합해 두 민족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이원적인 왕국을 꾸렸다. 고레스(키루스)는 페르시아인들을 신하로 거느리고 제국을 통치했던 메대(메디아)인들에게서 왕권의 전통을 빌려와야 했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들은 아마도 메대(메디아)인 한 사람을 총리대신 비슷한 고문관으로 삼는 것이 관례였던 것 같다. 다리우스 시대 이래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에서 출토된 후기의 부조를 보면 한 메대(메디아)인이 대왕과 나란히 있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또한 페르시스 토착민이던 엘람인들도 여러 면에서 페르시아인의 스승이었다. 예컨대 페르세폴리스에서 출토된 석재 부조에 페르시아인들이 엘람인의 옷을 입고 엘람인이 만든 물건을 들고 있는 모습이 나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정부형태와 통치방식에서도 새로운 것이 없이 다른 민족의 것을 차용하여 그것을 새로운 제국에 맞게 응용했다. 고레스(키루스)는 거대한 제국을 만들어내는 데서뿐만 아니라 아카이메노스 특유의 문화와 문명을 형성해내는 데서도 지도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고레스(키루스)의 가정생활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2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1명인 캄비세스가 그를 계승했다. 다른 한 아들 바르디야(그리스인들이 부르기는 스메르디스)는 캄비세스가 집권한 뒤 비밀리에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오빠인 캄비세스와 결혼한 아토사라는 딸과 그밖에도 두 딸이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역사에 자취를 남기지 않았다. 고레스(키루스)는 아스티아게스를 무찌르고 메대(메디아)인이 소유한 동부 이란의 영토도 물려받았다. 그러나 이 지역의 통치권을 확립하기 위해 그는 많은 전투를 치러야 했다.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뒤 그는 다시 동쪽으로 진격했다. 헤로도토스는 카스피 해 동쪽에 사는 유목민족들을 상대로 그가 벌인 원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고레스(키루스)는 처음에 마사게타이족이라고 하는 유목민족의 여왕을 무찌르고 그녀의 아들을 포로로 잡았다. 그 아들이 포로로 있다가 자살하자 어머니가 복수를 맹세하고 고레스(키루스)를 무찔러 죽였다고 한다. 헤로도토스의 이야기는 지어낸 것일 수도 있지만 고레스(키루스)가 중앙 아시아를 정벌했던 것은 아마도 사실인 것 같다. 멀리 변방에 있는 소그디아나에는 키레스카타 또는 그리스어로 키로폴리스라고 하는 도시가 있었는데, 이는 고레스(키루스)의 동방 정복이 얼마나 먼곳까지 미쳤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로 보인다.


 


3. 고레스(키루스)의 유산


아케메네스 제국이 그 창건자인 고레스(키루스)의 사후에도 끊임없이 확대되어 2세기가 넘게 존속했다는 사실은 그의 능력이 대단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고레스(키루스)는 위대한 정복자이며 행정가였을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인들의 마음 속에서 로마의 로물루스와 레무스, 이스라엘의 모세 같은 지위를 차지했다. 그의 무용담은 세부내용에서 고대세계의 다른 영웅이나 정복자들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갓난아기 고레스(키루스)를 양치기가 맡아 기른 이야기는 이집트에서 모세가 강가의 갈대 사이에 버려진 이야기를 연상시키며 폭군 할아버지를 타도한 이야기는 다른 신화와 전설에도 흔히 나온다. 고레스(키루스) 전설은 일찍이 페르시아인들에게서 생겨나 그리스인들에게 전해진 것이 분명하다. 페르시아인들의 고레스(키루스)에 대한 존경이나 외경의 감정은 그대로 그리스인들에게 전달되었다. 크세노폰이 그리스인 동포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고레스(키루스)를 통치자의 모범으로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간단히 말해서 고레스(키루스)는 제국 창건자 이상의 존재로 역사 속에 남아 있다. 그는 고대 사람들이 통치자에게 기대한 탁월한 자질의 상징이 되었으며 용맹하면서도 관대하고 아량 있는 정복자로서의 영웅적 특질을 지녔다. 그의 인품은 그리스인들에게 알려져 그들 자신과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영향을 미쳤고 로마인들이 전하는 전설을 통해 오늘날 우리들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71년 이란은 고레스(키루스)의 제국 창건 2,50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참고문헌


The Heritage of Persia : R. N. Frye, 1963


History of the Persian Empire : A.T.E. Olmstead,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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