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츠님의 칼럼입니다. 나는 "공의(公義)"가 "힘있는 자의 독재적 이기심"으로 해석되기도 한다는 것을 교회에서 처음 배웠다. |
파스칼의 팡세에 대한 반박
2003/10/16
무한대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 본질은 알수 없다
신의경우에서도 다르지않다
---> 무한대는 존재/비존재의 판단대상이 아니라 정의일 뿐이다.
"무한대"와 "신"은 서로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관념이다.
우리가 신의본질을 알수없다
그렇다고 신의존재를 의심할수는 없는것이다
---> 신의 본질을 알 수 없다면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이 아닐까?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상상해야 하는가?
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심할 이유가 더 많고, 나아가 부존재가 더 가능성이 높은데도 말이다.
그대도 신의존재를 부정하는가
좋다
그렇다면 내기를 걸자
신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그대가 만일 존재한다는 쪽에 걸어 그대가 이긴다면
그대는 무한한 행복을 얻을수 있을것이다
반대로 그대가 진다고 하여도 잃을것은 아무것도 없을것이다
그러니 주저말고 신이 존재한다는편에 내기를 걸라
---> 신의 존재는 내기를 해서 정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파스칼은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신의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단지 신이 존재할 확률이 있고, 이왕이면 존재하는 쪽으로 투자하자고 주장한 것일 뿐이다.
더구나 파스칼의 기대와는 달리 이 내기는 조금만 검토해보면
아예 상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내가 신이 존재하는 쪽에 걸어 내기에 이긴다고 해도
무한한 행복을 얻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그 신이 나를 좋아해 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신이 존재하는 쪽에 걸어 내기에 졌을 때 잃을 것이 없을 것이란 말은 틀리다.
신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들이 과연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인가?
파스칼 스스로가 "신을 믿는 행위" 자체를 의미없게 만들고 만 것이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무엇을 판단한다는 말인가?
가능성에 대해 손익계산을 하는 것은 주식투자나 복권구입으로 충분하다.
존재여부를 따지는 문제에서 손익에 대한 판단은 존재에 대해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내기는 내기일 뿐이며, 내기에 참가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 파스칼이 기독교인이므로 야훼의 존재에 국한하여 말했을 것으로 간주하면,
여러 안티분들의 반박처럼 파스칼의 내기는 "잘못된 지옥을 회피"하는 문제가 됩니다.
야훼가 만든 천국에 들기 위해 행동을 하다 보면, 다른 신이 만든 지옥에
빠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야훼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신의 존재문제로 확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