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츠님의 칼럼입니다.

나는 "공의(公義)"가 "힘있는 자의 독재적 이기심"으로 해석되기도 한다는 것을 교회에서 처음 배웠다.

자유주의 기독교가 더 역겹습니다.

칼츠 0 2,763 2005.09.29 02:58

자유주의 기독교가 더 역겹습니다. 
 
2003/10/14
 
 
자칭 정통 또는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교파로부터 거의 이단시 당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기독교의 해악을 가려주어, 마치 쓰레기를 뒤덮어 가려주는
함박눈과 같은 이들이 있다.

눈이 내리기 전까지는 건조해졌기에 참을만 했던 쓰레기들은 눈이 녹으면서
이전 보다 더 심한 악취를 풍기는 법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의 해악을 덮어주는 함박눈과 같은 것이다.

기독교의 해악을 없애지 못하고 잠시 덮어줄 뿐이다.

 

자유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근본주의자들이나 이에 반대하는
반기독교 세력 모두를 문자주의의 노예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주장은 점잖게도 "성경은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이지만
결국 "너희들이 성경을 알어?"와 전혀 다를게 없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구약에 나타나는 살상, 학살, 전쟁, 협잡 등을
실제 있었던 사건이나 아니냐를 따지지 말고, 유대인의 선민의식이
투영된 것이며, 약소민족이었던 유대인들이 강력한 유일신 개념으로써
민족의 구심점을 확보하고자 한 것으로 보고 우리는 그러한 신앙고백의 정신만
받아들여 우리의 삶에 반영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물론 복음주의자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말이지만, 반기독교인들에게는
어느 정도 먹혀든다고 볼 수 있다. 자유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교회개혁, 사회와의 융화, 배타적 도그마 타파, 교리의 유연한 해석을
함께 주장하기 때문에 일부 반기독교인의 응원까지 받기도 한다.

 

나는 자유주의 신학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반기독교인들을 반대할 생각은 없다.
가독교를 반대하는 형태나 방향은 각자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필자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중대한 착각을 지적하겠다.


우선 기독교의 교의는 어떻게 표방되든 간에 인간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을
근거로 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분명 불완전하다.
하지만 그러한 점이 어떤 관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당위성까지 제공하진 않는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
공포에 근거하는 복음주의자들과 전혀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둘째, 기독교의 교의는 현대에 와서까지 받아들여야 할 만한 가치관이 되지 못한다.
나는 이때 기독교가 표방하는 사랑과 봉사와 헌신의 정신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지고한 정신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방법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기독교가 표방하는 방식이 그리 온당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유주의 신학이 표현하는대로 야훼는 유대인들의 구심점이자 단합의 상징일 수 있다.
또한 예수는 유대의 틀을 벗어나 만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징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야훼나 예수가 지난 2000여 년 동안 그런 역할을 했다는 증거를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남을, 그리고 서로를
핍박한 사례를 훨씬 많이 발견했을 뿐이다.
결과론적인 비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기엔 역사가 너무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굳이 그런 식으로 자유주의 신학을 매도할 것까지 있느냐는 비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독교의 변신이 우리가 재판정에서 사기꾼이나 도둑들로부터
늘 듣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그 많은 살육과 협잡들이 실재(實在)한 사건이 아니라
유대민족의 신앙고백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런 관념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
그런 선민의식은 구약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였든, 상징으로 받아들였든
항상 문제만 일으켜 왔다는 점을 우리는 역사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셋째, 자유주의 신학은 반대자들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한 결과일 뿐이다.
이 말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할 때 하는 말과 같지만
나의 의도는 아주 다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 스스로의 반성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천주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넷째, 자유주의 신학은 원죄를 부정하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버젓이
주장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지옥에 대한 것이다.
아무리 유연한 해석을 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라 해도, 신이 징벌의 개념을
표시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드물다.

나는 종교가 징벌을 말하는 순간부터 이미 분쟁을 예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섯째, 기독교의 비논리성은 근본주의나 자유주의를 가리지 않고 발현된다.
대표적인 것은 신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가 상충하는 경우에 대한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인간, 그리고 생명들 자체가 큰 기적이므로,
특정한 기적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곤 한다.

하지만 신의 의지 중에서 기적이 없다면 우리가 굳이 성경을 믿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지키기 위해
신의 개입을 배제할 수 있는 기독교인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행태나 문자주의적인 해석만 비판하는 것이 좋으며,
선한 기독교인까지 비판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논변이 있다.

나는 기독교인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나는 주로 기독교 자체를 비난한다.

잘못된 행태를 낳게 한 기독교를 비판한다.
잘못된 사고를 하게 하는 기독교를 비난한다.

기독교가 인간의 불완전함을 지적하면서 그것을 미끼로 정당함을 피력하려 한다면
나는 그런 관념에 대해 끝까지 반대할 것이다.
나는 기독교의 그러한 악취를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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