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안티를 사랑한다"는 말 따위는 제발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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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츠님의 칼럼입니다.

나는 "공의(公義)"가 "힘있는 자의 독재적 이기심"으로 해석되기도 한다는 것을 교회에서 처음 배웠다.

"그래도 안티를 사랑한다"는 말 따위는 제발 하지 마라.

칼츠 0 3,281 2005.09.29 02:25

"그래도 안티를 사랑한다"는 말 따위는 제발 하지 마라. 
 
2003/08/14
 
 
-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화에 담긴 전제가 가진 문제점 -


예수가 한 말 중에, 도덕적으로는 누구나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무척 실천하기 힘든 말이 있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예수 이전에 부처나 공자도 같은 말을 했었지만,
이 자리에서 누가 먼저 그 말을 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이웃을, 나아가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어떤 다툼이 있겠는가?
(필자는 절망적이게도 인간의 본성에 도사린 욕구가
이것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존 레넌은 정말 몽상가였다.)


여기에서 그쳤다면 예수의 말은 보편타당한 도덕원리로서
종교와 민족에 상관없이 실천의 의무가 주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누가 이웃인가'하는 문제에 대해,
예수는 강도를 당한 사람을 구출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왜 하필 사마리아인이었을까?

필자가 괜한 시비를 건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바로 감추어진 인종/민족 차별에 다름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교회에서도 가르치고 있지만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로부터 천대받고 있던 족속이다.

예수는 그런 사마리아인이 유대인보다 더 나은 선행을 보였다는 예화을 이용하여
이웃을 정의함으로써 율법교사에게 큰 깨달음을 주고자 했을 것이다.

즉 예수도 사마리아인이 미천한 족속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었던 것이며,
사마리아인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예수가 가나안 여인에게 했던 말은 개운찮은 여운을 남긴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물론 예수는 가나안 여자의 소원을 들어주기는 하였다.

가나안 여자가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고 하면서 차별(개와 동격으로 취급되는)의 수모를 감수한 끝에 말이다.

 

예수는 은연 중에 사마리아인은 전반적으로 옳지 못한 족속이며
가끔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다는 식으로, 자신의 민족차별의식을 비친 것이다.

예수의 차별의식, 유대인을 위한 예수였다는 증거는 이 밖에도 또 있다.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중세의 기독교인들은 그나마 그정도라도 사랑의 정신을 보이지 못했지만,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화해와 용서의 정신을 표방하기는 한다.
(둘의 차이는 종교가 권력을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의 결과에 의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여기 까페에 오는 기독교인들의 전형적인 아나운스멘트인
"님이 안티일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예수의 숨겨진 차별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안티들의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고 교회가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도 있는데,
이것은 교회가 원래는 정의의 표상이라는 전제하에
잠깐의 타락이 있음을 인정할 뿐이라는 것으로,
이것은 결국 기독교인들의 커다란 망상일 뿐이다.


안티는 용서받지 못할 족속이라고 보고,
또한 비기독교인은 지옥갈 존재라는 전제를 숨겨두고서,
자신들은 신의 구원이라는 안락한 약속을 보장 받고 있다는 우월의식하에
"사랑"을 외치는 기독교인들은
그런 식의 사랑이 보편적으로 상대를 감복시키지 못하기 마련임을 모르고,
그런 "사랑"을 거부당했을 때 굉장히 화를 낸다.


필자는 이제,

우월감과 차별의식에 바탕을 둔 선심성의 사랑은 위선일 뿐이며,
협박의 다른 형태일 뿐이라고 감히 선언적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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