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츠님의 칼럼입니다. 나는 "공의(公義)"가 "힘있는 자의 독재적 이기심"으로 해석되기도 한다는 것을 교회에서 처음 배웠다. |
유치하기 짝이 없소.
2003/07/30
예전에 모 사이비비판 사이트에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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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더 이상 사람들에게 비젼을 제시하지 못하게 되고,
과학이 사람들의 내세관에 절망을 안겨주게 되자
무한에 대한 착각 속에서 색다른 우주관을 주장하는 부류들이 생겨났다.
그 첫번째 케이스가 영국의 과학자인 '홀데인'일 것이다.
홀데인의 가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주는 먼 미래에 점점 더 어두워지고, 엷은 가스로 가득해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시점에서는 이 가스농도에 변동이 발생할 것이다.
광대한 시간에 걸친 변동은 어떤 우주를 구성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 중에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와 똑같은 우주가 "재구성"되기도 할 것이다.
우주와 시간이 무한하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 같은 존재도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우리의 부모형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홀데인은 무한성에 대한 전제하에서만 자신의 가설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홀데인은 비판을 받을 소지가 그리 없다.
그러나, 홀데인의 생각은 일부 철학자들에 의해 기존 내세관의 대체물로 추천되었고,
여러 사이비들이 블랙홀과 화이트홀, 웜홀 등에 대하여 어떠한 물리학적 고찰도 없이
단순히 여러 개의 우주 존재와 그것을 연결하는 방법에 대한 해결책만 받아들이고는
각자가 하나의 이론을 형성하여 추종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이런 관념은 벌써 수천 년 전에 제기되었던 것이며, 앞으로도 증명될 길이 없다.
그런 것을 추구하기 전에 평형우주론의 진정한 의미부터 고찰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