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츠님의 칼럼입니다. 나는 "공의(公義)"가 "힘있는 자의 독재적 이기심"으로 해석되기도 한다는 것을 교회에서 처음 배웠다. |
종교는 무지하거나 나약한 자들의 선택
2003/07/29
여러분의 이웃에 기독교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여러분이 기독교인의 이웃에 이사왔다고 가정해 보자.
삭막한 정서로 가득한 동네가 아니라면,
반상회나 기타 여러가지 사유로 이웃 간에 인사를 나누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면이 익숙해지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기독교인인 이웃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종교를 가지고 계십니까?"
(만약 "교회에 다니느냐"는 식의 질문을 한다면 아예 상종을 않는 것이 좋다)
여러분의 대답이 불교라든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면,
그 기독교인 이웃은 기독교의 종교적/도덕적/역사적 우월성을 주장할 것이다.
이때는 안하무인격으로 기독교를 주장할 수도 있고,
상대방의 종교를 존중하는 자세를 보이는 듯 하면서 기독교가 더 나은 것이라는 식으로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러분이 종교가 없다라든지, 종교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말을 하면 양상이 조금 다르다.
그 기독교인 이웃은 우선 인간의 나약함과 불완전함(이것은 사실이다)을 말하고 나서,
이를 채워줄 수 있는 방법으로써 종교를 제시할 것이다.
종교를 가져야 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나면,
그 다음단계로 기독교가 인간의 불완전함뿐만 아니라 영혼의 안락까지 보장해주는 종교라고 선전할 것이다.
나는 인간이 반드시 어떤 종교를 가져야만 한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종교는 두가지 측면에서 인간이 가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종교가 불확실한 것에 대하여 어떤 관념을 스스로에게 주입함으로써
진리에 대한 인간의 탐구정신을 거짓되게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종교 자체가 패러다임과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면서 배타성을 띨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종교도 진리를 말해주지 못했다.
이를 증명하는 가장 간단한 예는 사람들이 종교를 선택함에 있어서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가 속한 사회의 종교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후세인 정권의 제5인자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조금 놀랍기는 하다)
어떤 신학자가 신의 존재를 증명할 때 인류가 보편적으로 종교를 가져왔다는 것을 증거로 든 적이 있다.
세상에는 정말로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이름의 신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신을 만들어냈다는 증거로 삼겠다.
결국 여전히 종교는 진리를 말해주지도 신을 증명해 주지도 못한다.
종교는 무지한 자들이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려고 할 때 필요한 것, 즉 든든한 큰형님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기독교는 인간의 공포(죽음, 영혼, 내세 등에 대한 두려움)에 기반하는 종교로서
인간의 대담한 도전정신과 탐구정신을 훼손케 하는 암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