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츠님의 칼럼입니다. 나는 "공의(公義)"가 "힘있는 자의 독재적 이기심"으로 해석되기도 한다는 것을 교회에서 처음 배웠다. |
과학을 절대적 진리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2003/07/24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은 바로 오류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과학은 오류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서 발전한다는 말이다.
이 과정에서도 필연적으로 새로운 오류가 발생한다.
또한 섣부른 결론내림으로 인해 비웃음과 분쟁을 유발하기도 한다.
결국 새로운 가설들은 실험과 관찰, 그리고 지루한 검증과정을 피할 수 없다.
무자비한 반증의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가설은 폐기된다.
물론 세월이 흐른 뒤에 새로운 증거나 막다른 길이 나오면 슬며시 재등장하기도 한다.
그 한 예가 우주상수일 것이다.
과학은 인간의 불완전성과 착오와 오류의 가능성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 전제가 없다면 검증이라는 과정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검증이라는 과정은 바로 오류수정의 핵심적인 기제이다.
비록 유쾌하지 못할지라도 검증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만약 거부한다면 오류를 발견할 수 없으며, 곧바로 우리는 희망과 사실을 혼동하게 된다.
기독교인들은 슬며시 안티들의 지식과 두뇌회전도를 들먹이면서 우쭐대지만,
그들은 검증되지 않는, 아니 검증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절대적 진리라고 우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두 가지다.
(인터넷 서핑 중에 우연히 본 사이트의 대문에 있는 말들이다)
"물리학자와 형이상학자의 차이는 어느 한 쪽이 다른 한쪽보다 똑똑하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차이는 형이상학자에게는 실험실이 없으며, 종종 관찰의 과정을 생략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믿음의 체계들에 대해 그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절망이나 두려움에 빠져 검증되지 않은 믿음의 체계에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긴다는 것은
건전한 인간의 이성을 광란으로 몰아가는 죄악이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과학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절대적 진리에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바람직한 수단이다.
과학법칙은 그 자체가 진리가 아니라, 진리를 표현하는 언어이다.
우리가 말실수를 할 때가 있듯이 법칙도 수정될 소지가 있다.
이런 변경과정은 희망이나 감정이 아니라 검증과 증거에 입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