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츠님의 칼럼입니다. 나는 "공의(公義)"가 "힘있는 자의 독재적 이기심"으로 해석되기도 한다는 것을 교회에서 처음 배웠다. |
초라해 보이지만 찬란한 사람 - 몰러
그와의 첫만남은 실망 자체였다. 대충 커팅한 돼지털머리, 넓은 이마, 착용자의 눈을 소 눈만큼 커 보이게 하는 돋보기안경, 얇은 입술, 옆으로 넓은 듯한 얼굴… 쉽게 말해서 영심이를 짝사랑하는 경태와 같은 이미지를 가졌다. 넷 상에서 그의 글을 몇 개 읽고 좀 스마트한 모습을 상상했었나 보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습성이 남았으니 글만 보고 그 외모를 미리 짐작하는 못된 버릇이 나온 듯하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아마도 "칼츠"로서의 그를 만난 사람은 내가 유일할 듯 싶다. 물론 그의 부인이나 형님도 그의 안티활동을 알았겠지만…
4번의 만남을 통해 그와 많은 것을 나누었다. 그는 내게 기독교리에 대해 많은 것을 물었고, 초보에 불과한 내게 서양철학의 조류까지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식은 땀이 난다. 그의 글 일부는 내가 가르쳐 준 것도 있다. 물론 그는 내가 말한 그대로 쓰지 않았다. 여기저기 뒤져서 확인을 한 흔적이 보인다. 내가 말해주지 않았던 내용이 보충되었고, 내가 틀리게 말했던 부분을 수정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반년밖에 안되는 짧은 안티활동을 했다. 이전에 그는 수년 동안 의사과학, 사이비과학 비평활동을 해왔다고 했다. 창조과학과 싸우다 보니 그 근원인 기독교가 무척 궁금하여 안티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안티활동이 꽃 피울 즈음, 그리고 나의 직장생활에 여유가 생겨 안티활동에 복귀할 즈음, 불의의 전복사고로 그는 유명을 달리했다.
스테어님도 그렇지만, 정말 천재들은 요절할 운명인가? 그런 통계 따위는 믿지 않지만 그래도 허망하기는 마찬가지다.
그와의 다섯번째의 만남은 없었다. 그의 죽음을 한달 가까이 지난 뒤에 알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그의 글을 모두 읽기 시작했다.
그의 글은 간결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그리고 쉽다. 화려하지 않아 보이는 문체지만 실은 위트가 넘치는 표현과 이해하기 쉬운 반어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글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몰러의 음흉하고 속물스럽고 장황한 글에 비하면 그의 글은 누구의 평가따나 말그대로 보석글이다.
그의 보석글들을 음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