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츠님의 칼럼입니다. 나는 "공의(公義)"가 "힘있는 자의 독재적 이기심"으로 해석되기도 한다는 것을 교회에서 처음 배웠다. |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은..
2003/09/14
고대 그리스인들은 체계적인 탐구를 하는 사고의 방식을 제시했다.
또한 그들은 이 세상을 자연의 법칙이 지배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기반은 너무나 미약했다.
그저 눈으로 관찰되는 것만 판단할 수 있었으며, 그나마 시간에 대한
척도와 함께 공간측정을 위한 정확한 도구가 없었다.
결국 일식현상을 예측하거나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아내거나,
그리고 대략적인 지구의 크기를 측정하는데 그쳤다.
지금 생각하기에는 어처구니없을지 모르지만, 물, 공기, 흙, 불을
근본물질로 제시하고 여기에서 모든 물질의 조성을 파악하고자 한 것은
현대화학자들이 연구하는 방식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단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전자현미경을 비롯한
측정/실험 도구가 없었을 뿐이다.
이렇듯 탁월한 사고방식에도 불구하고 미약한 기반에서
시행된 실험과 관찰결과는 많은 오류를 낳을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이에 대한 대안은 "신의 간섭"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에 대하여, 변덕스럽고 불공정한
신의 장난 이상으로 잘 설명해주는 것은 없었다.
인간이 과학을 받아들일 역량이 부족한 시대였기에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이들이 패러다임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들 철학자들은 사유의 방식에 있어서 크나큰 업적을 남겼지만,
유감스럽게도 관찰과 검증이라는 것을 소홀히 하였기에
인류사는 관념에 지배당하는 시대에 접어들고 만 것이다.
이어진 기독교 시대에서는 신의 변덕을 "큰 뜻'으로
포장하면서, 일방적인 믿음을 강요하였다.
물질의 본성과 광대한 시공간에 대한 탐구정신은
신에 대한 경이와 복종으로 전환되었다.
결국 아랍인들이 고대 그리스의 업적들을 유지하여
유럽에 돌려줄 때까지 과학적 탐구정신은 퇴보하였다.
낙하하는 물질의 속도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념은
갈릴레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실험과 관찰로 타파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관찰결과들은 지구중심설을 타파함으로써
신의 영역에 넘겼던 자연에 대한 탐구의지를 인간에게 되돌려 주었다.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신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깨어진 순간,
인간은 자연을 연구해야 할 일종의 의무가 생긴 것이다.
(이런 변화에 대해 기독교가 한 일이라고는 오로지 "반대"였다.
자연의 신비가 풀리면 신에 대한 경이가 없어지리란 것을
그들은 먼저 알고 있었던 듯 하다.)
그렇다. 우리는 계속 관찰하고, 탐구해야 한다.
자연과 우주를 계속 탐구하다 보면, 설혹 우리가 거부하고자 했던
변덕스런 신이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지라도
무지의 늪에서 신에 대한 숭배만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만약 신이 있다고 한다면, 그 신은 무지함에서 비롯된 숭배보다는
신의 생각과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한 상태에서 인간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경이를 더 좋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물론, 기독교의 신은 아예 이런 논의에서 제외대상이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인간이 지혜를 갖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선언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