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츠님의 칼럼입니다. 나는 "공의(公義)"가 "힘있는 자의 독재적 이기심"으로 해석되기도 한다는 것을 교회에서 처음 배웠다. |
웃기는 파티마 예언
2003/09/13
파티마 예언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조작이다.
1. 사람들 모두에게 알리라면서 시골 꼬마들에게 말한 것은 납득이 안된다. 내가 마리아라면 리스본 시내에 나타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에서 떠들었겠다.
2. 국가에 대한 교회통치를 주장한 점은 마리아가 반공화주의자여서인가? 아니면 이웃나라 스페인에 다가올 내전을 염두에 두고 예방차원에서 한 말일까? 만약 후자라면 파티마가 아닌 바르셀로나에 나타났어야 했다.
3. 제3예언과 관련해서.. 일개 인간일 뿐인 교황에 대한 암살시도가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그것도 예언을 봉인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 마리아가 진정 인류를 위하여 발현하고자 했다면 히틀러와 무솔리니, 그리고 프랑코가 권력을 잡지 못하게 했어야 했다.
4. 2번과 3번에 관련하여 악독한 독재자 대신 교회통치를 주장한 것이라면 파티마가 아닌 국제연맹 회의장에서 연설을 했어야 한다.
하나하나 따지자면 끝이 없지만 위에 나온 것만으로도 교황청이 80년 넘게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증거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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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난 천주교 신비주의자에게 들려주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지독한 마리아 숭배자였나 봅니다.
천주교가 사회적으로 온순해졌다고 해도..
2003/09/13
공포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추상적인 존재에 의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더 그럴듯하게 전파하는 이들은 개신교가 아니라 천주교입니다.
천주교는 자신들의 발톱을 감추기 위해 자신들의 교리를 희안하게
해석해서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사회규범 및 보편적 가치관과의 충돌은 적습니다.
또한 저를 포함한 극단적 반대자들까지 고개를 수그리게 만드는
훌륭한 인품과 덕성을 보이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이바지한 공에 대해서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천주교의 공익성은 없습니다.
천주교인의 공익성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럼, 이제부터 조금 다르게 말해보겠습니다.
종교가 전면적인 비판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잘못된 부분만 비판받아야 하겠지요.
제가 예를 든 파티마의 예언은 비판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천주교인이 사회에 끼치는 해가 적다고 해서, 또한 천주교인이 사회에 많이 이바지했다고 해서,
분명코 잘못된 것이 확실한 것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천주교를 비판하려면 천주교 비판 까페에 가서 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셨는데,
저는 천주교나 개신교나 그 교리 중에서 비판받아야 할 부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천주교가 삼위일체를 부정합니까?
천주교가 원죄를 부정합니까?
천주교가 종말이 없다고 합니까?
천주교가 예수의 대속을 선전하지 않습니까?
천주교가 이성보다 믿음을 우선시하지 않고 있습니까?
천주교가 기형아 낙태를 찬성합니까?
(천주교인들이 부모와 기형아의 고통을 복지원 운영 등으로 대신한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 고통이 사라졌을지는 분명하게 의심이 됩니다.
참고로 저는 아직도 기형아 낙태에 대해서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천주교가 불행한 결혼을 해제하기 위한 이혼을 찬성합니까?
(천주교는 이혼이라는 교리위반을 인정하지 않으려다가 계속 비판에 처하자
결혼무효 또는 결혼해소라는 아주 웃기는 말장난을 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무효화한다고 해서 그동안의 결혼생활들의 편린, 즉 추억들이나 아픔들이 무효화될까요?)
이 까페에서 지금까지 제가 올린 글들을 보시지요.
제가 개신교인이나 천주교인들의 사회적인 해악을 비판한 적이 있습니까?
저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믿는 바를 비판합니다.
그것도 잘못된 부분만 비판합니다.
교리상 옳은 부분을 실천하지 않고 반대로 하는 교인들의 도덕성을 의심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의 기독교 비판활동의 중점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도그마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