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츠님의 칼럼입니다. 나는 "공의(公義)"가 "힘있는 자의 독재적 이기심"으로 해석되기도 한다는 것을 교회에서 처음 배웠다. |
주님 안에서 행복하라고? 왜 그래야 하지?
2003/09/05
필자가 얼마전 "기독교의 도덕은 복종의 원리"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때 필자의 의도는, 신과 그 독생자에 대한 복종상태에서 벗어나는 행위는
모두 부도덕하다는 관념을 가진 기독교리를 비판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그 복종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 글은
사실 아무런 효과가 없다. 단지 비기독교인들에게나 통할 일이다.
기독교인들은 "주안에서 승리하세요, 주안에서 행복하세요" 라는 식으로
행복의 범위를 한정해 버린다.
이런 인사말을 통해 기독교인들은 복종의 미덕을 칭송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다지게 된다.
그들에게는 "주님"이 절대적이고 무한한 존재이기에 별 문제가 없는 축복일지 몰라도
반기독인들에게는 "주님"이 별 볼일 없는 존재이므로, 그런 인사는 저주와 마찬가지다.
이 차이점은 단순한 이유에서 생기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자기들만의 전제를 모든 이가 인정하는 전제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주님"이 절대적 존재인가?
기독교인들은 성경속에 나타난 "주님"의 헛짓과 개소리가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더라도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신념체계가 믿음이라고 하는 극히 빈약한 근거에
의존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에 아예 "믿음"을 종교의 최고가치에 올려둔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강조한 "사랑이 제일이라"는 구호는
최소한 현대교회의 대다수 교인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 "주 안에서.."라는 말로 시작되는 인사를 받으면
그 입에다 썩은 생선을 쑤셔 넣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그 말이 주는 의미를 모르고 인사하는 것이고,
그래서 어떤 악의가 포함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그런 인사를 받으면 쓴웃음을 지으며 받아준다.
하지만 필자는 심성이 곱지 못하므로 한마디 덧붙인다.
"주 밖에서도 사랑해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