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우리나라는 왜 근본주의자들의 천국이 되었는가?

이상훈님이 저술한 바이블의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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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우리나라는 왜 근본주의자들의 천국이 되었는가?

※※※ 0 3,741 2005.02.23 07:27

6) 우리나라는 왜 근본주의자들의 천국이 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신학하는 사람들>이라는 인터넷사이트를 운영하는 기독교인 김남중씨가 게시판에 올린 아래의 글에 해답이 있다.


1. 무엇이 문제인가?

R형, 잘 믿는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상당수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그것이 다음과 같은 것들을 믿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첫째, 성경만이 하느님의 유일한 계시로서, 그것은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다는 것,

둘째, 예수만이 유일한 구세주로서 그를 구주로 믿고 받아들여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셋째, 기독교만이 유일한 참 종교로서 세상 사람들을 모두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 선교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

넷째, 우리 교회에서 가르치는 신학만이 유일한 진리로서 종래까지의 신학을 재검토하고 그것을 더욱 의미있게 재구성하려는 노력, 특히 역사비평적으로 성경을 이해하려는 진지한 노력 같은 것은 모두 거들떠볼 것도

없이 인본주의 신학이나 자유주의 신학이라 규정하는 것 등입니다.

성경만, 예수만, 기독교만, 우리 신학 만이라고 하는 "만만주의"의 대명사인 셈입니다. 영어로 "one and only syndrom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좀 세분해서 전통적인 신학 용어로 나열하면 1. 성경 무오설, 2. 동정녀 탄생, 3. 기적, 4. 육체 부활, 5. 인간의 죄성, 6. 대속, 7. 예수의 재림과 심판 등을 무조건 문자적으로 인정하고 의심 없이 믿어야 잘 믿는 것이고 그래야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이 근본적인 믿음을 잃어버리면 기독교도 기독교인도 있을 수 없으므로 이것만은 절대적으로 사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근본주의자들(Fundamentalists)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주장들이 기독교의 보편적 믿음 내용이라 생각하기 싶지만,

사실 누가 말했듯 이런 근본주의적 입장은 주로 "미국에서 그리고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은 나라들"에서만 서식하고 있을 뿐 서방 유럽 같은 데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기현상입니다.

현재 미국에는 이런 근본주의자들의 숫자가,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만, 대략 전체 기독교인들의 20 내지 4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보고 있고, 한국에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절대다수의 개신교 기독교인들이 여기에 속한다 보아도 됩니다. 미국이나 한국 TV에 나오는 소위 전자전도자들은 거의 이런 근본주의자들이라 해서 틀릴 것이 없습니다.

R형, 여기서 약간 까다로운 문제 한가지를 말씀드리고 지나가야 할 것같습니다. 영어로 신앙 혹은 믿음을 뜻하는 말로 faith 라는 말과 beliefs라는 말이 있는데, 이 두 말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faith는 우리가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이 느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의 한계성을 깨닫고 이를 초극하려는 마음가짐이나 결의 같은 것이라 한다면, beliefs는 이런 faith를 우리의 문화적 사회적 환경과 지적 능력에 따라 나름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표현한 일종의 특수 설명체계 내지 신념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꽤 추상적인 말이 되었습니다만, 이런 구별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faith를 우리말로 믿음 혹은 신앙이라 한다면 beliefs는 믿고 있는 것들 이라 하면 어떨까요. 자녀들이 부모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절대적 사랑과 신뢰가 faith입니다. 그런 사랑과 신뢰를 자기들 나름대로 해석하거나 설명해 놓은 것이 beliefs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은 다 같이 아버지에 대해 faith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가진 beliefs는 각자의 나이나 기타 처지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한 쪽의 특수 beliefs를 받아들여야 faith가 있고 그런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faith가 없다고 하는 것은 faith와 beliefs의차이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억지 주장입니다.

위에 열거한 근본주의자들의 교리는 일종의 특수 beliefs입니다. 이런 특수 교리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독교인으로서의 믿음이 나 신앙이 없는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억지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저는 여기서 그런 교리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틀려먹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말할 것도 없이 지난 2000년 가까이 이런 교리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들, 흔들림이 없이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느 특수한 시대적 배경과 요구에서 형성된 이런 특수 교리들을

진리 자체라 여기고, 여건이 완전히 바뀐 오늘에도 이런 특수 교리들을 문자대로 붙들고 있어야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R형,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근본주의 입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고 해서 그대로 자유주의자들(Liberals)의 입장을 백퍼센트 옹호하려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근본주의자들도 자유주의자들도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합니다. 차이점이라면 근본주의자들이 성경을 문자대로 읽고 그것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을 문자대로 읽고 그것을 모두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근본주의던 자유주의던 성경을 문자대로 읽어야 한다고 믿는 문자주의(literalism)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섯 살짜리 철수에게는 우리 아빠 최고라고 하는 믿음의 내용 혹은 신념체계(belief-system)가 그의 성장과정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인류 전체의 정신발달사로 보거나 개개인의 신앙 성장사로 보아 초기 단계에 서는 이런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철수가 머리가 커가고, 어른이 되었어도 끝까지 "우리 아빠 최고"를 문자적으로 믿고 살아간다면 철수라는 이름과는 달리 그야 말로 철이 덜 든 인간입니다 더구나 자기 누나나 형들이 "그래, 철수야, 우리 아빠 정말 최고야. 그러나 철수 네가 생각하는 대로 그렇게 문자적으로 최고는 아니야. 아빠가 훌륭하시다는 것은 그런 문자적 의미 이상인 거야"하고 일러주면, 그런 누나나 형들의 태도야말로 신신학에 물이 들어 가문의 전통을 배신하고 아빠를 모욕하는 처사라고 그들을 정죄합니다.

자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근본적인 것을 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동네방네 다니면서, 심지어 산 넘고 물 건너까지 가서, 자기 누나나 형들의 말은 우리 집안을 대표하는 정통적인 말이 아니니까 절대로 듣지 말라고 외칩니다. 철이 덜 든 정도가 아니라 아예 철딱서니가 없는 짓입니다. 물론 우리가 아끼는 철수는 그럴 아이가 아닙니다.

우리가 앞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도 이런 단계의 믿음에서 자라나 성숙한 인간, 장성한 사람으로서의 신앙생활을 영위하자는 것입니다. 아직 다섯 살 철수임을 자처하고 싶으면 그런 대로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평생을 그렇게 살수가 없습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은 아무리 연령적으로 오래 산다 하더라도 정신연령 내지 종교 연령(?)으로는 영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채 요절하고 마는 셈입니다. 그야말로 비극적 종언입니다. "이런 비극적 종언을 고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입니다.


2. 허스키와 진도개 - 내 종교만 종교인가?

서부 캐나다 북쪽 어디에 외딴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는 개라면 눈썰매를 끄는 허스키라는 개밖에 없었습니다.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개 하면 떠오르는 것이 희색 털, 반미터 정도의 키, 우뚝 솟은 귀, 뾰족하게 튀어나온 입, 늑대 같은 짖음 등입니다. 그들의 경우 개라면 무조건 허스키입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바뀌어 이 마을에서도 점점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나 다른 주로 나들이를 나갈 뿐 아니라 멀리 다른 나라에까지 여행을 하게 됩니다. 어느 날 어디로 멀리 여행을 갔다 오는 사람이 중국산인가 하는 시츠(Shih Tzu)라는 개 한 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갈색인데다가, 손안에 들어올 만큼 작은 몸집, 귀는 척 늘어졌고, 긴 털이 온통 얼굴을 가리고 있고, 입은 몽땅하고, 짓는 것도 캥캥하는 소리뿐입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 개를 놓고 이것이 개냐 아니냐 하고 토의하기 시작합니다.

몇몇 사람들은 이것도 우리가 알고 있는 허스키와 기본적으로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요상하게 생긴 짐승을 개로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껏 사랑하던 허스키에 대한 모독으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단설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제 사람들의 여행이 더욱 잦아지고, 이에 따라 이 마을에도 쉐퍼드,도벌만, 라바돌 리트리버, 토이 푸들, 테리어, 치와와, 진도개 등등의 개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많은 마을 사람들이 개라는 것도 한두 가지만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의 기호에 따라 이런 저런 개를 사서 키우며 자기들의 개 경험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아직도 허스키만 개라는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모든 개를 개로 여기는 사람들의 타락상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 더러는 적극적으로 딴 모든 개를 개로 인정하려는 사람들 의 오류와 그런 오류를 퍼뜨리려는 사람들의 기도를 박멸하는 것이 허스키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입증하는 것이라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이 이야기를 좀 계속해 봅시다. 이런 극진한 허스키 충성파 사람 중 몇몇이 한국에 와서 그들의 생각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똥개들이 개가 아니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진돗개 같이 허스키 비슷하게 생긴 개도 진짜 개가 아니라고 합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를 지나자 어처구니없게도 그 캐나다 서부 북쪽 마을 사람들 보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 허스키만이 개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허스키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두 젊은이들이 그것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겠다고 허스키의 본고장 캐나다 그 북쪽 마을로 유학을 갔습니다. 가서 보니 놀랍게도 그 마을에서는 이미 허스키만 개라는 생각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습니다. 한 젊은이는 허스키만 개라고 믿었던 자기들의 믿음이 사실 근거도 없고 필요도 없는 믿음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른 젊은이는 이 마을이 타락을 해서 아름다운 허스키 전통에서 멀어져도 한참 멀어졌구나 하고 개탄합니다. 둘이서 다시 한국으로 귀국해서 각자 자기들이 발견한 것을 말합니다. 다시 어처구니없게도 처음 젊은이는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이단이라 하여 강단에서 쫓겨나고 둘째 젊은이야말로 배울 것을 잘 배워왔다고 떠받들어집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허스키만, 그것도 특종 허스키만이 진짜 개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지고 더욱 널리 퍼집니다. 가히 허스키의 종주국이라 할 만합니다.

서양에서는 천 몇 백년 동안 거의 아무런 외부적 도전이 없이 기독교만종교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종교라 하면 의례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교리상의 특성들만을 생각했습니다.

저위에 계시는 초월자로서의 신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신이 인간으로 나타나야 한다, 특히 천당 지옥 등 내세를 말해야 한다, 계시의 교리가 있어야 한다, 부활을 믿어야 한다 하는 등의 기독교적 범주를 설정하고, 이 범주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종교는 모두 종교가 아니라고 하든가, 종교라도 기독교와 유를 달리하는 유사종교 내지는 그릇된 종교(religiofalsa)라 생각해 왔습니다.

만약 그런 것들이 종교라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기도 합니다. 특히 스위스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딴 종교들은 모두 종교이지만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이 되어 남의 종교도 함께 비교 연구하는 종교학

(Religionswissenschaft)이라는 학문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창시자

막스 뮬러는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알지 못한다"는 전제

아래 여러 종교들을 비교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이런 종교학자들의 공헌에 힘입어 서양에서도 타종교의 존재와 그들의 가르침이 대략 무엇인가 하는 것을 좀더 객관적으로 알게 되고, 이런 심도 있는 연구와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타종교와 나의 종교를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점점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이 타종교가 얼른 보아 나의 종교와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도 결국 인간의 "궁극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고, 그 궁극관심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를 통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잡아 나가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기독교와 기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개라면 반드시 허스키여야만 한다는 생각에 변화가 온 셈입니다.

R형, 우리 중에 아직도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 윤리체계 내지는 조상 숭배다" 한다든가,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 혹은 우상숭배다" 하는 등 내가 믿는 종교만 종교이고 남의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나라의 기독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나라는 미국이고 그 미국으로부터 근본주의를 수입하여 우리 나라의 기독교인들은 근본주의자가 아니면 기독교인도 아니라는 생각에 찌들어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성직자들은 미국의 망해가는 교회를 사들이고 있는 웃지 못할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선진국들이 거대한 미신에서 깨어나 제정신을 차려가고 있을 때 우리민족은 거대한 미신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90% 이상을 넘는 나라는 지구상(일부 후진국을 제외)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의 허스키와 진돗개의 비유는 정말 절묘한 비유이며, 근본주의(허스키)만이 기독교(개)이고 근본주의를 제외한 다른 종파(진도개,세퍼드...)는 기독교(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리고 정작 한국에서 허스키(근본주의)만이 개(기독교)라는 세뇌교육을 성공시킨 미국에서는 허스키(근본주의)도 개(기독교)의 다수가 아닌, 일부에 지나지 않고 다른 개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더군다나 개들 중에서도 아주 틀리다고 생각하는 개들(불교, 유교 등)조차도 개(기독교)와 같은 종류(종교)라고 인정되고 있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 자기 종파만이 참기독교이고, 자기 종교만이 참종교라고 생각하는 아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인류평화를 도모하는 길이요, 유치한 어린 아이(철수)의 생각에서 벗어나 21세기에 걸맞는 성숙한 어른(철수의 형과 누나)이 되는 길인 것이다.

석가모니는 인간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고 누구나 자기와 같이 되기를 원했다. 마찬가지로 예수는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공포했으며, "너희 인간들은 신"이라고까지 선언한다. 과연 예수는 지금의 기독교인들처럼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거나 예수를 닮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자신(예수)만 믿고 의지하면 구원받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기독교인을 좋아할까? 아니면 그런 의타적이고 유아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를 닮으려는 노력과 실천을 통해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 가는 인간을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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