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필사과정에서의 문제
《 옛날에 이 필사본들은 만드는 방법은 흔히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한 개인이 한 자 한 자 옮겨 써서 만드는 법인데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알파벳에는 유사한 글자들이 여럿 있어서 아주 성실한 사사일지라도 종종 혼동을 일으켜서 잘못 옮겨 쓰는 일이 생기곤 하였고 더구나 옛날에는 원어 성서에서도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필사할 때 여러 가지 종류의 과오를 일으켰던 것이다.
또 한가지 방법은 한 사람은 읽어 주고 여러 서사들이 받아쓰기하는 방식으로 단 번에 서사의 수만큼 많은 사본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서사들이 그 문서내용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 자연히 잘못 듣고 쓰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글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같은 경우 등에는 많은 착오가 생기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후대 헬라어에서는 '우리'라는 말과 '너희'라는 말의 발음이 거의 구별할 수 없으리 만큼 같았다. 그러므로 신약성서의 서신들에서 사본마다 각각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본래 어떤 인칭이 사용되었는지 결정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 때로는 이러한 차이가 고의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컨데 마태복음의 가장 오랜 사본에는 주기도문(마 6:6~13)이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옵소서"라는 말로 끝난다. 그런데 후대 사본에는 그 끝에 의식(儀式)에 사용하기 알맞은 송영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라는 두 마디 송영이 되었지만, 후에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라는 세 마디 송영이 되었다. 이와 같이 교회 의식의 발전과정을 통해 약간의 고의적 첨삭이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때로는 금욕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성서 사본이 변하는 경우도 생겼다. 예를 들면 마가복음 9:29에 본래는 "기도하지 않고는 이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고 되었던 것이 후에 금욕적 사상의 영향을 받아 "기도하고 금식하지 않고는...."으로 변하였으며, 사도행전 10:30과 고린도 전서 7:5 등도 그러한 예다. 또 때로는 필사자가 다른 책에 있는 병행 구절들과 조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보충 삽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골로새서 1:14은 "우리는 그의 아들 안에서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라고 되어 있는 것인데, 후대의 어떤 사본에는 에베소서 1장 7절과 조화시키기 위해서 '그의 피로'라는 말을 첨가했다.
이와 같이 실수로, 또는 고의로 사본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차이가 생긴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내용이 바뀌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어쨌든 원문 비평학자들의 피땀어린 노력에 의하여 오늘 우리는 성서 원본에 거의 가까운 것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도 된다.》
이상은 박창환 교수가 말한 내용이다. "근본적으로 내용이 바뀌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고 지금 성서원본에 거의 가까운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뒤에서 좀 더 솔직한 신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필사과정에서 너무나 오류와 변개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