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vencrow님의 칼럼입니다

[성서의 무오성?] 첫번째, 그것은 과연 근본에 충실한 것인가?

ravencrow 0 3,316 2004.09.29 04:06

*먼저 하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저는 두가지의 해석이 존재할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반기독 노선이고요, 나머지 하나는 기독교와 근본주의적인 논쟁을 행하는 부분에 있어서 제가 기독교와 대치되는 유대교 비탈무드 사변을 지지하는 일종의 알 아라침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대개 성경의 무오성이라는 부분을 주장 하는데, 이 문제에 대한 교의 해석이라는 것에 대해 저는 기독교적인 것의 해석에 대해 서너가지 증명을 들어 반증을 하고자 합니다.


1. 유대교적인 관점에서 성서 해석이 오류가 적었던 이유는 두가지 안전장치, 즉 게마트리아와 테무라 때문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기독교가 바이블코드로 인용한 것이 바로 이 두가지의 해석법이다.

히브리어는 신성문자로, 문자 하나가 대입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자는 현재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룬어와 히브리어(고대) 이 두가지이다.

성경문서, 즉 네빔이건 토라건 아니면 다른 문서든 간에 일단 히브리어로 쓰여진 열왕기 시대의 문서라면 이 게마트리아와 테무라라는 부분이 성립을 한다. 이는 생각보다 복잡하면서 간단하다.

일단 테무라, 열을 퍼즐처럼 맞춰서 문자들을 배열해 보면 그것은 일정한 단어를 형성한다. 그것이 바로 성서 자체에서 볼때, 그 문장 내에 축약이 될수 있는 일종의 상징적인 암호이다.

게마트리아는 문자 자체에 일정한 지수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 뒤에 그 지수의 의미를 각각 더하고 그것을 인수분해 하여 그 의미 자체를 해독한다. 여기에는 수비학적인 해석이 들어가나 게마트리아에 적용된 수비는 평상적으로 생각되는 수비와는 약간 다르며, 두가지 구분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실질적으로 이 안전장치가 거듭되는 번역에 의해 사라져 버린 것을 들수 있다. 즉, 기준이 없어진 것이다. 더 문제는 성서의 무오성 주장에 있어 바이블 코드가 인용된다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이단으로 여기는 기준이 말이다....-_-' 

 

2. 번역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기독교는 원 유대교의적인 의미를 무시했고, 결과 원 관점에서 보면 신성적인 모독이 될수도 있는 부분들에 대해 오역하고 그 마음대로 그 발음이라는 부분을 바꿨다.

그 대표적인 실례는 여호와/제호바/야훼의 오역이다.
물론 문자화 시키면 그렇게 발음이 난다는 부분에 있어서 오역이 아니지 않는가 하고 반문할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유대교 전통상에 있어서 신의 이름을 표방하는 것은 신과의 언약의 징표라는 부분이 제수되어 매우 경건한 과정이고 또한 신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샬롬이나 할렐루야, 혹은 아멘과 같이 간단히 사용이 될 문제가 아니라, 이 이름을 알고 부른다는 것은 신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의미하는 바, 그 사용은 헤프지 않았다.

여기에 대한 정확한 발음적인 요소를 테트라 그라마톤으로 표현하며, 이것은 네글자로 된 신의 이름을 의미한다.

두번째의 경우는 쉠 하 메포라쉬라고 하여 72음절로 된 신의 이름의 나열인데, 이는 일종의 신성하고 경건한 예의를 의미하는 바가 컸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어떻게 신의 이름을 불렀는가, 아도나이라고 칭하거나 샤다이라고 했다.

샤다이는 전능자에 대한 존칭으로 표현되며 아도나이의 경우는 테트라 그라마톤에 가상이 모음을 붙인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의 존재로 말미암아서 그것이 이미 깨어진 언약이 아닌가 하는 신학적인 의문은 당연히 제시될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해석이다. 어느 언약이 깨어졌는가? 하는 부분.. 만일 그 언약이 다 수정되었다면, 구약이라는 경전 자체 및 유대교의적 율법의 잔재는 모두 없어져야 하나, 기독교 자체는 그러하지도 않을 뿐더러 성서 자체가 유대교의적인 관점론을 많이 따르고 있으며, 그것은 성립 자체가 증명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지금까지 기독교가 주장하는 것에 대한 부분이 대폭 수정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번역 오류들 때문에 계속 불거지는 것들이 바로 성서의 어원논쟁들이기에...


3. 성서의 성립이라는 자체에 있어서 타당성이라는 부분을 주장하나 이것또한 모순이다.

이것은 주장자가 대개는 유대교의적 전통에 대한 지식이 무지하여 저지른 실책으로 생각이 가능하다.

성서의 본문서 성립시기를 논할때, 직접적으로 쓰여졌던 시기들은 고고학적 반증에 의해 계속 수정되었다. 이유는 무엇인가... 그 사건이 있었던 당대에 쓰인 성서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대교의 경전전통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잘 알수 있는 부분이다. 성서가 쓰여진 것은 수집된 구전 및 전승의 양이 많아 더이상 구전이나 세습적인 부분으로 전달할 경우 오류가 나올수 있는 점들을 방지하기위해 토라의 법에 따라서 처음으로 쓰여지기 시작했다. 이는 다른 경전, 특히나 탈무드나 마드라쉬 성립에 있어서 즉, 내 분야는 아니나 할라카 성립에 있어서 드러나는 과정적인 부분이 간접적으로 인증한다.

미쉬나와 게바라 두가지의 양이 방대해지자, 이 두 경전의 변형과 자의적인 부분의 해석을 막기위해 통합하여 편찬한 것이 바로 탈무드이다. 마드라쉬는 학원 강의용으로 편찬되었기 때문에 좀 다르긴 하지만, 원안이 되는 구전 양이 많아 변질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이 될 시기에 성문화 한다는 원칙은 충분히 지켜졌다.

그리고 외경문제, 이 부분에 있어서 허구한날 특히나 개신교 쪽에서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단성이다. 카톨릭쪽 기독교사변에서 인정하는 것은 외경에 대한 편집시 기독교계에서 잘 주장하는 성령에 의한 간택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의 배제가 있었음이라는 사안들이다. 이것은 교단내 영지주의적인 해석을 주로하는 교파 자체에 대한 문제로, 2~4세기경에 이들은 교회의 분리까지 주장할 정도로 세력이 있었던 편이며, 또한 교황권을 우습게 알고 행동하기를 밥먹듯이 하던 자들이었으므로 당연히 이 부분에 대해 근거성을 줄수 있는 신구약의 외경이나 위경 성서는 제외 되었다.

후대에 있어서 그것이 언어적인 신빙성 때문이라고 하는 부분에 있어서 제외 되었다고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창세기 원전 자체에 아카드어도 아닌 아람어가 튀어 나온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단성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유대교는 외경, 즉 아포크리파와 위경성서를 '인정'한다. 인정할 뿐만이 아니라 이에 대한 부속경전이 두개가 존재한다. 하나는 기원후 150년 경 랍비인 시메온 반 요하이에 의해 수집된 논문들의 총서인 세펠 예트지라, 그리고 하나는 12~14세기에 있어서 모세 드 레온에 의해 집필된 세펠 조하르 이 두권이다.

이 부분은 유대교의 아가다(할라카, 즉 율법 이외의 것)를 연구하는 전통에서 시작 되었으며, 이 연구자들의 경우는 대개 마쉐 멜카바와 마쉐 베레쉬트라는 두개의 전통을 따르는 랍비들이다.

마쉐 멜카바는 참오하기 위한 수행의 전통이며, 베레쉬트는 창조와 세상의 원리를 탐구하는 것이며, 그 기원은 에스겔 시대로 인정되고 있다. 즉, 아예 전통이 없거나 이교적인 부분인 것이 아니라, 유대교 원 관점에서 보더라도 영지주의적인 전통이나 경전은 '감추었을'뿐이지 '존중'되었다. 즉, 이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을 완전히 사장 시키려 하는 것은 기독교적인 아집과 합리화가 빛어낸 비극들이라고 할수 있다.

이사야는 결정적으로 여기에 대해 한마디 했다.

'누구든 이책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면 생명나무로의 길을 잃을 것이다.' 그 이사야의 기준으로 볼때, 과연 외경들이 이단서 였을까? 탈무드 사변의 주장자들도 아가다를 이단이라 하지 않는다.  단지 인식관이 틀리다고 생각을 할 뿐....



4. 무오성에 대한 태클의 네번째는 바로 기독교적 해석기전의 오류이다. 기독교가 주장하는 해석기전들의 경우는 적지 않은 오류를 지니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상징적인 부분의 해석이라는 것의 오류들이다. 기독교인들은 대개 상징에 대한 해석을 가하는 부분에 있어서 참으로 한숨 나오는 실력들을 보여준다.

일례를 들어보자면 베헤모스에 대한 텍스트의 해석이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 내가 알고 있는 요엘서의 내용의 집대성을 제외 하겠다.

일단 기독교인들 일부는 이것을 공룡이라고 해석을 한다. 차라리 레비아단을 그렇게 해석해 주었다면, 당연히 어느정도는 귀엽게 넘어 갔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개 이것을 코끼리로 해석해 보는 것이다. 이것은 고고학적인 시제에 따른 배열에도 코끼리 쪽이 더 타당성을 보인다.

코끼리에 대해 근동, 특히나 유대교에 있어서 힘의 상징으로 부각되는 예는 고고학적인 사적 자료들을 볼때 많이 드러난다. 특히나 이집트 일부 지역의 유대인들은 이것에 대해 신상을 만들고 샤다이의 변신인 '만군의 왕' 아도나이라고 지칭하였다는 전승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욥기 자체에도 신의 힘과 전능함을 드러내는 의미로 이 베헤모스가 등장했다는 것이 바로 그 타당성 자체를 증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어원설에 대한 논쟁과 상징 논쟁은 계속된다. 뱀이라는 부분의 이미지 형성.. 이 부분에 대해 기독교도 역시 인정하는 신성한 신의 종인 4대천사 즉, 치천사 세라핌을 의미하는 부분의 어원이 바로 불타는 뱀이며, 또한 모세가 광야에서 만든 것 또한 구리뱀의 형상인 네후스탄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모두 이것을 악마로 해석을 한다.

레비아단 역시 뱀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이 해석을 피하지 못하는데, 비교신화적인 관점과 라합이라는 존재에 따른 해석에 의하면 그것은 단순히 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개 수메르인들은 태초에 찢어져 대지를 구성한 티아마트 여신을 혼돈의 바다(원시바다)의 주인으로 말하고 있으며, 라합의 해석과 동일시 된다. 또한 이는 정경 문서에 있는 내용들이다. 티아마트의 경우는 흔히 후대의 해석에서 엔션트 서펀트, 즉 원시바다의 거대한 뱀이라는 형상으로 해석이 되고 있다.

레비아단은 원래 뱀이 아니라 나일강 지류의 신으로 바다가 아닌 민물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러나 점점 그 형태적인 면에 있어서 라합과 동일시 되기 시작했는데, 이집트를 상징하는 것은 초기에는 라합이다가 다음에는 레비아단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것은 라합이 이집트의 수호천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욥기나 요엘서에는 당연히 악어에 비준하는 생물로 묘사되던 상징들이 후대에 있어서는 악어가 아닌 뱀으로 해석되었다.

그리고 원래 선도 악도 아닌 존재들이 악마의 권위로 해석이 되어가기 시작했으나 레비아단과 베헤모스 둘다 원래는 신의 권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욥기에 의해 찬양되었다.



뭐 다른 사안들은 대단히 많습니다만... 이만 하겠습니다.


여기서 제 주장을 말씀 드리자면, '성경 자체는 원래 무오성일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의 성경, 즉 현대 기독교가 주장하는 성경 자체는 오류 투성이이다... 그것은 불확실한 인간의 손에 의해 거세되고 편집된 경서일 뿐이다.' 입니다.  이 부분을 좀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는 정경과 외경의 중도적인 사변입니다만.. 즉 둘다 신이 내린 부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만일 애시당초 그것이 아무런 연결이 없었다면 경전이 성립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자의적인 기준으로 나누고 만들어낸 경전이 과연 신의 진의일까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들의 모독적인 행태와 왜곡에 대해 분노를 금할수 없다고 밖에는 말씀들릴게 없군요.. 매우 유감입니다.



뭐.. 황당 하실수도 있습니다만, 위의 골자들이 바로 아가다사변적인 부분의 교의 해석에 있어 기독교적인 교의에 반하는 내용들의 일부입니다. 사람의 사상이나 생각은 다 틀리니까.. 그러나 저는 사이비도 아닐뿐더러, 원 관점에서 인정되는 교의적인 해석을 지지하고 있는 것 뿐이며, 또한 그것은 유대교의적 관점에서 평가 되어야지 기독교적인 이단 기준 자체가 성립할 여지가 없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하나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군요.



기독교인들은 따라서, 그들 자신의 정통성 또한 주장할 자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전통이나 정통성을 무시하는 행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이단으로 몰아가는 패륜을 저지르면서 말이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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