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를 비판해라?]과연 누가 교만이관대....
최근 이곳 저곳의 논쟁을 거치면서 나는 많은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안티 동지들과 약간 다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기독교의 오류를 무식으로 치부했다. 아마 내 글을 자주 본 분들이 있다면 알 것이다.
'무식은 죄요, 조뇌증은 병이라..'
그런데 이 부분에 있어서 추가된 부분이 있다. 무식의 원천이 바로 교만이라는 것이다.
1. 교만... 그것은 정말 배덕의 논리다....-_-'
성서에는 그들이 말하는 교만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많은 부분이 경고되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여러가지의 개념을 들겠는데, 교만이라는 것은 악덕 중의 하나로써 오만과 독선등으로도 생각해 볼수 있다. 이것은 벨리알의 덕목으로 생각할수 있으며,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경계할 덕목중 하나이다.
대개 나와 논쟁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은 교만하다.. 이다....-_-'
물론, 대개 나의 어조를 보면 다른 분들은 말한다. 살벌하다.. 시니컬하다.. 할말이 없게 만든다등등... 대개 기독교인의 나에 대한 감상평은 교만이다. 그런데, 이것은 나를 얼마나 아는 사람들이 하는 말일까...
내 지식에 대한 생각은 아주 간편하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지적되는 문제도 아주 간단하다. 반론이 제기될 여지가 있는 한 그것은 당연히 유일과 절대성이라는 부분을 가지지는 않는다는 부분이다.
그들은 성경을 역사적 사실이라 주장하고 자신들의 말을 사실이라 주장하는데, 대개 안티들의 반격에 대해서는 교만하다, 혹은 검증이 되어 있지 않은 지식을 이용한 모략이라는 소리를 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줄기차게 주장한다. 그리고 부차적으로 기독교인들은 대개 성경은 유일한 진리임을 애써 설파하는데, 문제는 뭔고허니...
자료의 비유는 내가 잘 드는 예중의 하나이다. 10개의 자료가 있고, 그중 한두개는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하며, 나머지 일곱개가 비슷하다면, 일곱개의 평균이 진실에 근접하다고 볼수 있지 않을까? 같거나 비슷한 시대에 기록되거나, 혹은 다른 부분에 있어서 유사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 있다면 이 부분은 당연히 비슷한쪽의 평균을 내 보면 간단한 문제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인들의 기준이라는 것은 대체적으로 편파적이라는데 있다. 즉, 언제나 자신들의 '번역성경'을 기준자료로 제시한다. '원문성서'도 아니다.. 이것을 기반으로 자료 일곱을 해석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 공정성이라는 부분을 부여할수 있을까?
애시당초 검증이라는 것은 보편성을 노린다고 하는데, 공정성이 없는 기준에서 보편성이 성립이 된다는 논리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틀릴수 있다는 소리다.
헌데,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진실이라 주장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자신들의 오류성을 주장하는 것을 무시한다는 소리다. 결국 이것은 교만이 아니고 무엇이관대?
그들은 안티에게 있어서 교만이라는 단어를 쓸 자격이 없다. 즉, 공정성의 기준을 봐도, 그들이 유일의 진리라는 것을 설파할 근거는 부족하다. 그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기독교적인 기준에 맞춰 생각해 보자면 결국 타당성을 인증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자신의 미성숙을 반성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그들은 상대의 교만을 말한다....-_-'
교만.. 이것은 기독교에 있어서 배덕의 논리이다. 그런데, 자신의 종교적 편향성을 지적하는 사안과 타당성을 묻는 문제에 대한 제기를 보며, 그것을 상대의 교만을 이유삼아 공격한다면 그것은 무엇으로 설명할수 있는가? 자신의 교만이다.
2. 답은 간단하다. 게을러서 그렇다.
내가 안티를 하면서 느낀 부분이라는 것은 뭐 복합적이지만, 대개 기독교인들을 보면 드는 생각은 자기 편한대로 사는 족속들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영지주의와 관련된 사상을 차용하는 사람으로써 이 부분에 대해 영적인 존재와 발전이라는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 기독교인들을 보면서 할수 있는 말은 바로 거저 먹기 좋아하는 게으른 족속들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상당히 게으르다. 왜? 반면자료라는 것을 보는데 지나치게 인색하다. 기독교인들은 대개 기독교서적만 읽고 그 논리로 반박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근데.. 이게 문제다. 왜? 세상이 모두 기독교적인 인식을 보편타당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의 문제는 자신들을 보편타당하다고 생각하면서 그에 대해서 한번의 의심도 안해보는데 있다. 그래서인지 봐도 성경은 번역성서 하나, 그리고 서적은 기독교사변적 서적, 자료는 기독교쪽 자료만 들어서 반박한다.
반면자료는 왜 안 보는가? 사실 겁이 나서라든지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 자신의 태만이 바로 근원이다. 반면자료를 보고 사고의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즉 어느 하나에 대해 반면성을 깨닫고 오류를 지적하며 그것을 개선한다는 것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틀리건 말건, 그들은 그들의 논리만 주장한다. 그리고 반면성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의 물음에 대다수는 침묵하거나 필요가 없다는 말로 일관한다. 한적 없다는 소리다...
보편성에 대한 착각이라는 부분도 여기서 기인한다. 대개 이런 부분의 사상에 물들어 버리게 되고 이렇게 물들어 있다가 보면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른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귀찮아 하게 된다. 사실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얼마든지 할수 있다. 그런데 안한다.. 왜? 나는 진리를 알고 있다라는 변명으로 일관하지만, 지금의 틀을 벗어나는 데 대해서 대단히 귀찮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지식을 습득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게으르다. 오죽하면 성경만이 답이라고 할까... 무지는 태만에서 온다는 부분이 필수적인 부분이다. 지식과 인식이라는 것은 사고의 회전에 의해 빠르게 성숙될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노력을 거부한다. 이것은 신념에 의한 것이 아니다. 대개는 귀찮아서이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인고 허니.. 이런 인간들의 문제가 유일의 진리를 주장하면서 오답을 계속하고 그것을 틀림없이 유일의 진리라고 믿으면서 상대의 교만을 탓한다. 이게 뭔 소린지...
귀찮음.. 이것의 태동이 뭐라고 보는가? 바로 그들의 교만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성숙되어 있다고 믿고 선택 받았다고 믿는다. 그 자신의 게으름을 나는 알고 있다는 변명으로 윤색한다. 그러나 반문한다... 도대체 아는게 뭐냐고....-_-'
솔직히 많은 안티 분들이 나에게 말을 한다. '그거 말해 봐야 저 작자들은 알아먹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끊임없이 나를 교만하다고 한다... 문제는.. 과연 누가 교만한지 대놓고 물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하나 말하자면, 나는 그리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바로 지식의 단편들이라는 그들의 지적은 맞는 소리일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지식의 단편만으로도 그 자신들을 농락하는데 아무 부담이 없는 현실이다.
자.. 이제 나는 반문한다.. 나에게 교만을 논하는자, 과연 누가 교만한가? 대답해 보라고....-_-' 최소한 기독교적인 기준에 맞춰 본다고 하더라도 누가 교만한지는 자명할 것이다. 끝없이 의심하며 진실에 도전하는 자와 현실에 안주하며 입바랜 소리나 지껄이는 자의 차이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