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주의의 발전사] 그 세번째의 장, 생명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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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vencrow님의 칼럼입니다

[영지주의의 발전사] 그 세번째의 장, 생명의 나무

ravencrow 0 3,840 2004.09.14 02:09
3. 유대교적 영지주의의 발전/그리고 결실이 된 것... 카발리즘...



유대교적인 신비주의 멜카비즘은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을까?



비탈무드적인 부분인 아가다의 전통, 그 안에 속해 있었던 멜카비즘은 그 이후 3세기에서 4세기동안 유대교에 있어서 경서의 성문화 붐이 일어나는 동안에 있어서 많은 발전을 했습니다.



탈무드가 성립이 되고, 율법적인 것은 탈무드적인 전통으로 승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가다적인 전통 역시도 같은 방식으로 재성립이 되고 발전해 갑니다.



여기에는 주석 경전인 세펠 예트지라의 역할이 크게 자리합니다. 예트지라는 창조의 서라는 이름으로 3~6세기경에 성립이 된 신비주의적인 교의의 이론서입니다. 이를 성립하는데 있어서는 유대 그노스라는 이름이 크게 자리합니다. 즉, 유대교적인 신비주의 전통역시 통합이 되기 시작했으며, 그 체계라는 것이 성문화를 통해서 빛을 보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세피로트의 교의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 예트지라를 통해서입니다. 이 이전에는 마쉐 베레쉬트라고 하는 사변적인 신비주의적 전통이 멜카비즘(마쉐 멜카바)와 더불어 존재 했었던 것인데, 이중, 사변적인 카발리즘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주경이나 마찬가지인 경서가 되고 또한 실천적 카발리즘에 있어서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한 것이 바로 이 세펠 예트지라입니다.



이것은 세계관의 해석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또한 창조와 혹은 섭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여러가지의 사변적 이론은 비로소 하나로 통합이 되기 시작을 했던 것이죠..



역사적으로 볼때 이것은 고통을 수반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서기 150년 경 부터 몇몇 랍비들을 주축으로 이뤄진 신비주의적인 교의에 대한 논문의 수집은 3~6세기에 있어서 사변적인 흐름의 토대를 완성했으나, 실제적으로 카발리즘이라는 교의가 탄생하고 완벽해진 것은 12~14세기에 이르러서 였으며, 또한 이 부분은 기독교적인 탄압이 가일층 속도를 더디게 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서 탄생한 것이 세펠 조하르입니다. 이때서야 비로소 카발리즘은 사변적인 부분과 실천적인 교의가 중도를 이루게 되었죠..



카발리즘의 경우는 주로 철학과 창조라는 내용에 대해서 기독교가 수용하지 못하는 여러 부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의 해석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도 당연히 기독교적인 논리를 압도할 수 밖에 없죠.



단, 유대교의적인 카발리즘의 경우는 구약적인 구속이라는 부분에 잠겨 있습니다. 이것이 유대교적인 전통에서 나온 것이고 또한 유대교의 사변적인 부분의 지지점이기 때문이죠.



이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중세에 있어 마법사라 불리며 탄압 당하기가 쉬운 처지에 있었고, 또한 아불라함 밴 사무엘 아불라피아라는 사람의 기행은 이런 분위기를 더더욱 조장한 적도 있습니다.



이러한 교의적인 부분에 대한 탐구는 기독교인들과는 근본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또한 유대교적인 전통의 치밀함이라는 부분과도 관련이 많죠.

유대교는 이단과 정통을 구분하지는 않습니다. 신에 대한 방법론에 있어서 규례는 있을 지언정, 규례 안에서의 행함에 있어 규제는 없다는 부분입니다. 또한 아가다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이런 규례의 해석은 탈무드보다는 훨씬 더 자유로운 부분이 존재했죠.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감추어야 할 것들이었고, 이것이 탄압을 받았어도 꿋꿋히 일어서서 사상들을 집대성한 것입니다. 기독교가 탄압탄압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적인 탄압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멸시와 탄압 안에서 태어난 결정체이며, 또한 인고의 산물인 것이죠..



카발리즘은 시오니즘과는 구분되는 유대인들의 또다른 산물이기도 합니다. 혹자에 있어서 유대잡신이 껄끄러운 분들도 있을 것이나, 이는 유대의 신성에 대한 이해가 기독교적인 기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제가 누누히 강조하는 것이지만, 진실을 보려면, 기독교적인 편린부터 모조리 때려 부숴야 가능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교의적인 해석을 보고 깨닫는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지의 왜곡과 편견에 의한 해석이라는 아집에 의해 기독교는 이런 사상들을 모조리 파묻어 버리려 했으나 이것은 분명히 '기독교의 역사와 같이 숨쉬는 상대적인 진리를 이해해 주게 만드는 훌륭한 체계'인 것이죠.



이런 해석의 체계들은 기독교적인 기준과는 전혀 다르게 세상을 해석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섭리의 구현을 좀더 명확하게 체계화하고 해석할수 있도록 규명하였으며, 신성에 대하여 세상의 법칙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표현하였던 것이죠.



우리엘이 천상의 운행을 책임진다고 한것, 이것은 우리엘의 상징성으로 별을 다스리는 천사란 의미일 뿐 아니라 별이 운행이 되는 섭리를 구현한다는 부분으로 해석이 됩니다. 또한 암호화 되어 있는 각종의 해석에 대해 암호에 접근하고 그 자체가 어떤 표현기재로 이뤄진 설명인지에 대한 부분을 규명할수 있게 하는 방법론이라고 할까요...



이는 세피로스라고 하는 장치적 요소와 다른 부수적인 파악법들을 따라서 해석이 되고 파악이 됩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성을 인식의 대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신성을 인식하고 그 움직임을 알아감으로 인하여 원리를 깨닫고 알게되는 과정이라는 부분에 한하는 것입니다.



실상적으로 이런 움직임은 불교에도 존재 했었습니다. 마치 선종과 교종의 움직임은 사변적 카발리즘과 실천적인 카발리즘의 형태를 보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요...



카발라를 악마적 행태의 오컬티즘이라고 하는 코미디가 있는데, 그것 역시도 위에 말한 기독교적인 편견에 의한 조작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자신들과 다른 체계가 동시대에 자신들의 탄압 안에서 지하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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