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악마론,
악마에 대한 여러가지 요소들이라는 것은 비단 기독교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불교나 혹은 다른 종교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신을 대적하는 존재로서의 악마의 존재는 동서고금을 비롯하여 없는 곳이 없고, 또한 그 존재의 이유나 성향역시 매우 다양하다.
그렇담 이 악마론에 의해 규정된 악마라는 존재는 과연 우리의 생각이나 고정관념 만큼이나 사악하고 해로운 존재이든가?
이 내용에 대해서 다뤄 보고자 한다. 참, 오해 할까봐 적지만, 나는 사타니즘을 옹호하는 쪽은 아니다. 단지 균형적 사유에서 악마론을 새로이 다루고자 함을 먼저 말하며, 이 글은 사타니즘에 대한 내용이 아님을 먼저 밝힌다. 또한 이 글을 쓰게 된 사유는 나의 지식의 선배들이라 할수 있는 이들이 악마론에 휩쓸려 장작개비와 함께 불태워진 과거가 있기에, 저들의 사탕발림이 어떻게 인간을 인간 이하로 만드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자 함이라는 것을 밝혀 둔다.
2. 악마론이 형성될수 밖에 없는 이유
사실 악마라는 존재가 형성될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은 매우 다양하다. 일단 대표적인 세가지 이유만 들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1) 역사적 사변의 문제
: 가장 많은 사례가 아니라 할수 없다. 기독교적인 관념에서 가장 많이 볼수 있는 사례이며, 특히나 대표적인 내용은 레비아단과 다곤에 대한 내용들이라고 할수 있다.
레비아단의 경우는 강대한 이집트를 상징한다. 가나안 지역의 경우는 이집트나 히타이트, 혹은 주변 대제국들의 끊임없는 쟁탈전에 시달린 지역이었고, 당연히 지배자들에 대한 인식은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전쟁을 통해 지배세력이 된 이들 지배 민족들에 의해 수난을 겪은 유대인들에게 이런 이교도의 신성은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다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끊임없이 유대인을 위협하는 상대 민족을 상징함에 있어서 다곤은 팔레스틴 인들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요소이다. 원래 다곤의 원안은 오안네스로 반어인인데, 문명을 전하고 농경법을 전한 신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이로운 신으로 의미되지만, 적대 민족인 유대인들은 이것을 괴신으로 표현하고 있다.
레비아단의 경우도 나일강을 상징하는 존재이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이 존재의 의미 자체는 위협적인 이집트 그 자체로 생각되어 졌다.
왜 이런 결론이 나오는가? 그것은 역사적으로 볼때 기록자가 피지배층이기 때문이다. 승리자인 타민족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다곤은 이로운 신이겠지만, 이들과 전쟁을 치르는 입장에서 볼때는 당연히 해로운 신이었다. 이것이 기독교가 득세하게 되면서 악마로 변천된 것이다.
(2) 종교적 규례와 생활습관, 그리고 문화적 차이에 의한 문제
: 악마론이 생긴 두번째의 이유는 바로 생활 규범에 있어서의 문제와 문화적인 문제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인도인들은 소를 먹지 않지만, 다른 민족들은 소를 잡아 먹는다. 이것을 볼때 인도인들의 입장에서 볼때는 소를 잡아먹는 민족들의 경우는 성수를 해치는 사악한 족속으로 보일 것이다.
또한 유목민들의 신과 정착민들의 신이 가진 의미도 틀릴 뿐더러, 그 중요도가 가감되는 것은 매일반이다. 수탈과 정복을 위주로 하는 민족이라면, 그들의 신은 필시 전쟁과 승리를 의미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농경민족의 신이라면, 기후를 다스리는 신이 우선시 된다.
이런 생활과 문화 습관의 차이와 그에 따른 충돌들은 서로간의 악마론에 대한 논증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것이 체계화 되고 관습화 되어 종교적인 규례들이 형성되면서 이 악마론에 대한 내용은 점점 명확해 진다.
이슈타르 여신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은 이런 부분에 대한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슈타르는 성애와 전쟁, 그리고 풍요의 지모신인데, 이 때문에 다소 성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풍습을 가진 민족들에게 있어서 숭배 된다. 그러나 유대인이나 혹은 다른 금욕적인 종교 규례가 있는 민족들의 경우, 특히나 여성의 성적인 개방을 기피하는 관습의 민족들의 경우는 이슈타르의 신전매춘 풍습이 당연히 방탕하고 음란한 행위로 치부될 것이다.
이런 종교적인 규례의 차이라는 것은 문화적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특히나 고대 사회에서는 이것이 다른 도덕이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로 많이 해석되었기 때문에, 혹은 종교적 규례 자체가 도덕적인 잣대가 될수 있었기에, 더더욱 상대의 신성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간단히 유추할수 있을 것이다.
(3) 정치적인 문제
: 세번째는 정치적인 내용의 문제이다. 이것은 여러 신화에서도 드러나는 것인데, 집권층의 신성이 부각되고 기존 집권층의 신성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악마로 낙인되는 존재들이 생기는 것으로 흔히 볼수 있는 현상이다.
일례로 이집트의 세트신이 있다. 세트는 악마적인 신으로 평가되지만, 실제적으로 볼때 힘과 사막을 다스리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호루스를 숭배하는 쉠수호르의 집권기동안 세트는 악마로 몰렸을 것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세트는 신화 이외에 본연의 위상을 회복하게 된다.
이런 경우 이외에도 유대인들의 경우는 약간 특수한 케이스이다. 즉, 다신교에서 유일신교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탈락한 탈락자들이 모여 악마가 된 경우라고 할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아시즈, 즉 아자젤인데, 원래 아자젤은 방목과 전쟁, 그리고 신의 무력을 대변한 존재라는 의미가 있으며, 실제로 구약시대 사막유랑때 따로 번제물을 취할 정도로 섬겨지던 신성이지만, 후대 유일신 위주로 편성된 교의에 의해 악마가 되었다.
바알이나 바알제불 역시도 마찬가지인 경우인데, 다신시대 유대교에서는 타 신성과 유대인들의 신성이 공존했으나 유일신 시대로 넘어 오면서 내쳐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서 악마가 된 많은 신들이 존재하며, 바알제불과 바알 역시 그러한 케이스이다. 대개는 팔레스틴 지역의 원주민들의 신이 도태 되었고 악마가 되었다.
이것은 지배층이 피지배층에게 가하는 공격적인 종교 개편의 일부라고 할수 있다. 즉, 악마라는 이미지를 이용해서 거부감을 형성해 피지배층 일부에 대한 다른 피지배층과 지배층간의 유대를 만들어 공격하는, 공공의 적을 이용한 방법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위의 세가지 내용에서 알수 있듯이, 악마론의 가장 주체가 되는 내용은 적대자이다. 이것만 가지고도 이것이 얼마나 상대적인 내용인지 알수 있을 것이다. 즉, 당시의 상대성의 필요에 의해 조작되고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악마론이라는 것이다.
3. 악마론의 변천
동양의 경우를 제외하고 서양과 근동의 악마론은 한번 변천하게 되는데, 이슬람과 기독교권의 문화적인 대립이 가시화되면서 이런 성향은 더욱 뚜렷해 진다. 이들 두종교의 특성인 일신교적 특징에 따라 악마로 규정되는 존재들에 대한 평가와 이론들이 성립되었고, 그것이 바로 데모놀로지, 즉 악마학이다.
현대에 우리가 알고 있는 악마론의 대부분은 중세의 데모놀로지에 의한 것으로 볼수 있다. 이슬람의 경우는 영적인 존재에 대한 4개의 구분선은 지어 놨고, 기독교는 두개의 구분을 지었다. 이들 두개의 악마론의 개괄은 다음과 같다.
(1) 이슬람의 악마론: 이슬람의 악마론의 경우는 사악한 진(정령)과 샤이탄(악마)으로 구분되어 있다. 진은 중성의 존재로 생각할수 있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악마는 대부분 샤이탄에 의한 것으로 볼수 있다. 이것에 따라서 경중을 구분한다고 볼수 있고, 즉 이슬람에 귀의한 진과 천사들, 그리고 사악한 정령들과 악마들의 대립 구도로 생각할수 있는 것이 일반적인 악마론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슬람의 경우는 이신론이 아니라 일신론에 기인한 악마론을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기독교나 이슬람 모두 이 악마론에 있어서 보이는 해석의 차이는 다분하다.
(2) 기독교권 문화의 악마론: 천사와 악마의 2구도로 볼수 있다. 일신교적 악마론으로 볼때는 악마 자체도 신의 피조물이지만, 신에게 대항하는 존재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 문화권의 악마론이라는 것은 약간 기이한 구도로 발전한다. 바로 신의 위격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 인해서...
신의 위격이라는 것은 특히나 그리스도라는 의미에 대한 내용으로 볼수 있는데, 선악 이신론등 기독교 일부가 이신론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면서 신과 그리스도에 속한 천사들과 악마들이라는 구도로 나뉘게 되거나 혹은 신 안에서의 천사와 악마로 나뉘게 되는 형상성을 보인다고 할수 있다.
마틴 루터의 경우 여기에 대해서, 악마는 신의 피조물로 신이 창조한 피조물들을 시험하고 관리 감독하는 면에서 천사들과 동일한 입장임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 원래의 악마론은 기존의 지배층에 대한 반발로 인해서, 천사들에서 이탈한 피조물에 대한 내용들, 그리고 천사들과는 다른 근원에서 나온 피조물들을 일컫는 말이 되기도 한다.
요컨데 기독교의 악마론은 불균형과 균형을 오가는데, 악마에 대해 신에 적대하는 자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며, 또한 그것이 아니라 신의 피조물로써 충실한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이원론적인 한계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셈이다.
달리 말하자면, 루터의 악마론은 타신성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즉, 신이 천사와는 전혀 다른 악마를 운용한다는 의미로 소급되며, 기독교 자체는 천사와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라는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기독교 외적인 존재들 역시 존재하였고, 그것 역시 신의 의지라는 것에 대한 반증이라고 할수 있다.
일견 이것은 편협한 내용으로 이해 되기 쉬우나, 우습게도 루터의 이런 악마론 자체는 오히려 기독교인들의 일반적인 악마론, 즉 악마는 부정하고 사악한 존재라는 인식에 반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다고 할수 있다.
4. 현대의 악마론
현대의 악마론은 기독교적인 입장의 데모놀로지에 의해 왜곡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실 이 내용에 대해서 글을쓰는 동안 통탄을 금할수 없다.
기독교의 사탄의 의미를 보자, 사탄이라는 것은 원래 적대자를 의미한다. 즉, 악마의 의미는 신에게 대항하는 자이다. 바꿔 말하자면, 그들이 사탄이라 말하는 모든 존재들은 기독교의 대적자인 셈이다. 이 용어를 사용한다는 자체, 그리고 행동들은 기독교가 타신성, 타 사상에 대해 적대적임을 단적으로 증명하는데, 이 내용들에 의해서 생기는 문제들이 바로 현재 기독교와 사타니즘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기독교의 경우는 기존부터 있어 왔던 악마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활용해서 마녀사냥을 조장했고, 그 이론을 이어서 타 사상이나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교육하고 있다. 즉, 적대적 의미라는 부분의 악마의 해석을 차용해 타종교와의 대립의 타당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기독교와 정면으로 대치한다는 사타니즘의 경우는 아이러니컬 하게도 이런 기독교의 관점을 역으로 이용하는 실책을 범하고 있는데 문제는 바로 이것이라고 본다. 즉, 일부러 반면적인 입장을 너무나 강조한 나머지 기독교가 혐오하는 입장만을 차용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는데, 기존 문화권의 도덕적 기준에조차 위배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독교 문화에 대한 반발이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겠으나, 기독교나 사타니즘 양측모두 사실 확대해석이 지나친, 즉 종교적 의미 이상의 범주로 넘어서고 있음은 자명한 셈이다.
사실 현대적인 악마론의 경우는 많은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요즘은 차라리 악마로 낙인된 존재들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기에 과거의 악마에 대한 잔재는 많이 없어졌으나, 과거의 잔영을 이용한 기독교나 그것을 재탕해서 역으로 이용하는 사타니즘에 의해 악마론 자체의 본질이 흐트러지고 있음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일전 반아편님에게 들은 바로는, 혹은 유럽쪽 분위기를 보면 악마주의라는 것이 살의에 찬 광기의 집단으로 매도되는 것을 볼수 있는데, 이런 것이 바로 위에 지적한 내용이라고 볼수 있다. 즉, 과거로부터 내려온 신의 원형이 망각된채, 왜곡된 신성에 대한 해석이 왜곡을 역이용한 형태로 존재하고 설명되며 그것이 확대 해석되는 분위기가 조장된다는 것이다.
사실 현대 악마론은 악마 자체를 재조명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는데, 사실 그것이야 말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기독교와 지배층에 의해 실추된 왜곡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에서는 말이다. 단지 아직까지 기독교적인 문화적 폐습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5. 악마는 과연 사악한 존재인가?
실제로 사실 중요한 이야기는 여기서 부터가 아닐지 싶다. 악마 역시 과거에는 신으로 추앙된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면, 이 내용은 더더욱 중요할 것이다.
신성이라는 것은 세상의 법칙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할수 있다면, 악마라는 것이 일방적으로 사악하지는 않을 것이다. 천사라는 존재들 중에는 악마이상의 사악함을 보이는 존재들이 있을 것이며, 이것은 신의 힘을 대변하는 존재로 당당히 각인된다.
악마라는 존재들의 경우는 기독교/혹은 주류종교에 의해서 부정적인 면만이 강조 되었다. 이것은 아나트 여신을 보면 알수 있다. 아나트 여신은 인신공양이라는 잔혹한 풍습을 가진 팔레스틴의 여신이다. 그런데 이 여신이 살인의 의식을 가지는 이유는 기근을 몰아내는 의미가 강하다. 즉, 가뭄의 신이며 건기의 신을 죽여 풍요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가 강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이런 의미들을 망각하고 그저 피의 축제로 생각되어지는 요소들만 부각시켜 이 여신을 사악한 마녀로 만들어 냈다.
또한 이슈타르 역시도 풍요와 자애의 여신이며, 다산을 상징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이 여신을 방탕한 성애와 전쟁과 피를 좋아하는 여신으로 낙인 찍고 있다.
과연 이들이 사악한 존재일까? 비정상적이기는 기독교의 신도 마찬가지이다. 반대자를 무자비하게 심판하며, 또한 살육을 명하고 인신 공양까지.. 안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런 모습들은 비단 악마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믿는 신도 가지고 있다. 다른 신에게는 자애가 없던가? 잔인한 이집트의 세크메트는 하토르의 변신이다. 심판의 여신인 이시스는 또한 풍요와 지혜, 그리고 자애를 상징한다.
과연 악마는 사악한 존재일까? 아니다. 단적으로 말해, 기독교에 의해 사악함만이 드러나 있는 존재들일 뿐이다.
6. 기독교의 적대관이 문제일 뿐...
기독교인들의 표현적 요소에서 알수 있듯이 그들의 경우는 적대적 호전성을 모토로 한 종교이다. 사탄이라는 표현 자체가 적대자를 위시한 표현이라면, 그 표현을 내 뱉는 순간 상대를 나의 적대자로 규정하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된다. 결국 악마? 악이라는 기준 자체가 절대적이지 않은들, 선악의 절대 구분을 모토로 한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할리 만무하며, 결국 상대적인 적대성에 의한 판단들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악마를 만들어 냈을 뿐, 그것은 절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악마라는 것은 오히려 인간이 지니는 여러 가능성들을 의미하는 바라고 할수 있다. 어느 종교든지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신성을 악마라 하는 바, 그 표현이라는 것이 내포하는 것들은 사실상, 단순히 악이라는 존재가 아니라, 그 종교 이외의 여러 가능성과 이론, 사상, 그리고 생각과 표현들의 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어준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리라...
물론, 반문할 것이다. 도덕적 악의 기준에 대한 내용을 본다면 악과 선을 규정할수 있지 않을지에 대해서.. 그러나 그것 자체가 상대성을 수반한 마당에 어떤 의미로 악마를 규정한다는 것인가? 나에게 적대적인 것이 악마라고 한다면 악마의 규정이라는 자체는 절대적일 수 없음은 필연적인 내용이다. 유교적인 도덕률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은 나에게는 악마라는 것이 바로 유교적인 잣대의 폐습이 될수 있을 것이며, 또한 기독교적 법리에 긍정적이지 않은 나에게는 기독교적인 인식기준이라는 것이 바로 악마일 것이다.
또한 종교적 이유에서 볼때 악마라는 요소들에 대해 신성이라는 표현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악마라는 표현 자체는 가능성을 상징하며, 그들만의 세계의 바깥쪽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이 악마라고 하는 자들에게 있어서도 또한 악마로 표현되는 자들은 존재할 것이다. 어짜피 상대적 적대성을 표현하는 요소가 바로 악마라는 표현이기 때문일 것이기에...
나는 사실 악마라는 표현적인 요소를 즐기지 않는다. 그것은 적대자에 대한 명칭일 뿐이기에, 굳이 내가 악마라는 표현으로 상대를 적대시 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기 때문이지만, 상대가 나를 악마로 몬다면 나역시 그들에게 악마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기독교인들에게 말한다. 사탄이라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