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주의의 발전사] 첫번째의 장... 뿌리...
1. 유대교의 신비적 교의: 영지주의의 뿌리
실제로 제가 근본점으로 삼으며, 또한 제 사상의 근원적인 부분이 영지주의일수 있습니다.
영지주의라는 것의 발전사를 본다면, 후대에 있어서 카발리즘이라는 부분과도 일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1세기경, 기독교리적인 유사성을 지닌 종교적인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로마를 타고 전파된 기독교적인 부분들을 타고서 전염된 이 사상은 그리스도교의 신학을 그리스 철학적인 사상과 유대교 신비주의적인 해석론을 빌어서 해석하고자 하는 일종의 무브먼트 였던 것이죠.
그러나 이보다 앞서서 영지주의라는 것의 토대는 존재 했습니다.
유대교는 두가지의 이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랍비라고 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대개는 탈무드를 공부한 율법학자라고 할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유대교의 주석 경서는 탈무드 만이 아닙니다. 유대교의 문건은 크게는 할라카와 아가다로 나뉘게 됩니다. 할라카는 탈무드를 비롯하여 미드라쉬라는 두개의 체계로 나뉩니다. 탈무드는 또한 마쉬나와 게바라라는 두개로 분리되구요... 이들은 토라와 테스타먼트, 즉 언약을 연구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가다는 유대교 내의 전승의 문헌을 의미하는 바입니다. 이 아가다의 경우는 넓게는 신화와 전승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전설 괴담이나 기타등도 여기에 포함이 됩니다.
이 아가다의 경우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을 해석하고 신적인 존재들을 해석하는 부분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것은 할라카보다 아가다였습니다. 특히나 역사적으로 여러 굴곡을 가진 이스라엘 인들에게 있어서 이 아가다의 주석이란 것은 자신들의 판테온의 비교우위를 점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매우 유용했죠...
비 탈무드적인 학자들이 존중 받았던 이유는 위와 같습니다. 성서 자체에도 그리스도를 랍비라 합니다. 이것은 탈무드가 아닌 비탈무드에 예속이 된 랍비라는 의미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율법외의 전통, 즉 할라카 외의 전통을 잇는 랍비라는 해석입니다.
이 아가다의 분파중에서 특이한 분파가 있었는데, 이들은 명상을 중요시 하면서 또한 오컬티즘적인 실천을 위주로 한 교의를 주장했습니다. 또한 편입의 판테온을 연구하는 자들도 있었으며, 그들은 그 판테온으로 종교를 해석하고 연구하며 그것을 체계화 한 사람들입니다.
위의 두가지 전통, 즉 아가다 내의 두가지 분리는 후대에도 계속이 됩니다. 이중 멜카비즘의 분파는 특히나 신에 이르는 명상을 중요시 했습니다.
멜카비즘이란 것은 신의 옥좌에 이르는 법이라는 뜻입니다. 명상과 자기수행을 통해, 신적인 체험을 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신의 영역에 올려 놓게 된다는 것... 이것이 멜카바 신비주의라고 불리던 초기의 유대교 신비주의의 모습입니다.
유독, 성서 내에도 보면 이런 부분들, 즉 들림을 받아 승천한 이야기는 많습니다. 이것은 그에 해당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그런 부분들에 대해 이론적인 체계를 만들고 '실천'하고자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이론은 각계의 해석에 많은 부분에 있어서 영향을 미칩니다. 아가다의 해석론자들은 그것을 해석하고서 율법적인 부분과의 타협을 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율법적인 교의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이용되고, 또 다른 각도로 이론들은 계속 발전을 합니다.
또 다른 각도로 발전을 하던 그러한 이론들은 또한 지중해를 건너 다른 사상들과 융합합니다. 특히나 이스라엘이 망한 뒤로는 더더욱 그 전파도가 커지게 된 것이죠...
이 사상들은 지중해 연안에서 그리스의 철학적인 부분과 융합을 행하게 됩니다. 또한 이 당시에 전파되고 있던 기독교 역시 지중해 연안을 근거지로 해서 이런 저런 사상들과 믹싱이 됩니다.
지중해 연안은 알다시피 무역의 요충지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융화의 과정은 어찌보면 당연한 부분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율법적인 부분에 있어서 완전히 그것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가다는 어짜피 비율법적인 부분에 한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들에게는 이들의 체계를 더욱 구체화 시켜줄 아이템이 생기니, 그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애시당초, 유대교의 신비주의적인 교의는 아이러니컬 하게도 범신론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그 역사적인 부분에 있어서 다신주의적인 부분을 거쳤기 때문에 이 체계는 사실 판테온을 흡수 병합하고 해석하는데 있어서 쓰이던 여러 방편이었다고 할수 있었기에, 타 사상들을 융합하는 것은 상당히 쉬웠습니다. 이는 역사에서도 알수 있습니다. 그들은 칼데아의 신화를 받아 들였으며, 또한 팔레스틴의 신들을 받아 들이고 섞었습니다. 이런 체계의 구성을 위한 일종의 내공이 스며있는 것이 유대교적 범신론주의입니다.
이 사상들은 여러 각도로 해석이 되었으며, 또한 그로 인해서 기존의 기독교와도 차이가 있으며, 기존의 유대교와도 차이가 있고, 또한 그리스 철학과도 차이가 큰 일종의 분파를 성립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노시즘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곧 세 분파로 나뉘게 됩니다. 이유는 기저에 깔려 있었던 사상들의 충돌점이 합의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있어서 준 영향은 상당한 것이었습니다. 유대교의적인 그노시즘은 다른 그노시즘에 있어서 판테온의 체계와 석법을 전하였으며, 철학적 사변의 그노스주의는 이 사상을 단순히 신비적인 부분이 아니라, 논리적인 부분으로 승화될수 있도록 사고의 전환을 제공하였던 것이죠...
이 둘의 석법을 받아들여서 성립된 것이 기독교의 그노시즘입니다. 실상적으로 그노스라는 것은 유대 그노스와 크리스챤 그노스라는 두가지로 나뉘어 성립이 된다는 부분으로 볼수 있습니다. 철학적인 부분은 어디 갔나? 그것은 후대에 신지학과 범신론이라는 부분으로 재편이 됩니다. 적이도, 기독교적인 부분과 유대교적인 부분만이 영지주의의 전부는 아니라는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