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러님의 칼럼입니다. |
아퀴나스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합시다.... 슈브님께
전에 올린 글에다가 빼먹었던 둔스 스코투스를 보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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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대주교인 안셀무스(1093-1109)는 신이 내려주었다는 존재론적 증명을 내세웠다.
'신은 가장 위대한 사유의 대상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그런데 만일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때, 그것과 아주 똑같은 그 밖의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다 위대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보다 위대한 어떤 것, 즉 존재하는 하나의 신을 상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보다 위대한 신에 대한 생각을 품을 수 있는 까닭에, 신 자체는 틀림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더욱 위대한 것을 우리가 상상하게 될 터이므로, 그러니까 신은 존재한다.'
안셀무스는 플라톤적 전통을 고수한 마지막 철학자였지만 곧바로 아퀴나스로부터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하긴 안셀무스의 증명은 개념을 존재로, 관념에서 사실로 비약하는 것이니까.
'이교도를 논박하는 대전'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비기독교인들에게 자연이성을 통하여 기독교의 중요성과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에 착수한다.
그의 다섯가지 증명법은 다음과 같다.
1. 변화로부터의 증명 : 변화는 어디에서나 이루어지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Unmoved Mover와 같은 신이 있음에 틀림없다.
2. 인과관계로부터의 증명 : 누가 원인을 일으키는가? 스스로는 인과에 얽히지 않는 제1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거 아직 개독들이 써먹는다. 여기에 몇번 씹었으니 참고하시고...)
3. 우연성으로부터의 증명 : 우리는 자연에 있어서의 우연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연성을 뛰어넘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필요하다.(왜? 뭐하러?)
4. 우월성 정도로부터의 증명 : 자연에 우월성 정도가 있는데 이는 완전성의 개념을 함축한다. 결국 완전한 존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다.
5. 조화로부터의 증명 : 우리는 적응과 일치가 있음을 보게 되는데 예를 들어 물고기는 헤엄을 치기 위해서 지느러미와 꼬리가 있고, 개는 뼈를 갉아먹기 위해 억센 이가 있다. 이를 순전한 우연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계획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후자가 더 적절하다.(창조과학의 방식은 여기에서 헤어나지 못하지... )
아! 먼저 스콜라철학부터 언급해야 겠군요.
1. 지배적인 카톨릭의 정통적 주장을 받아들임.
2. 이런 정통적 주장안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플라톤보다 위대한 사상가로 받아들임.
3.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보편자의 개념에 대해 의견이 다르며, 이것은 해결해야할 중요한 문제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
4. 변증법적 사고와 삼단논법적 추론에 탁월성을 부여하는 점.
5. 자연신학과 계시신학간의 구별을 받아들임.
6. 모든 것에 대하여 장황하게 논쟁하려는 경향.
이러한 스콜라 철학자로 분류되면서도 아퀴나스와 전혀 색다른 철학자가 셋 있는데 로저 베이컨, 둔스 스코투스, 윌리암 오캄이다.
로저베이컨은 자유적 사고와 과학의 중요성(실험의 중요성)을 주장한 사람이며, 그의 사상은 갈릴레오로 이어졌다.
공개적으로 성직자들의 무식을 공격하다가 십수년간 투옥되기도 한 그는 Opus Majus에서 무지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부적당한 권위에 호소하는 것
2. 관습의 부적절한 영향
3. 무식한 군중의 견해
4. 단순히 무지를 은폐하기 위하여 지혜를 열거하는 일.
둔스 스코투스는 증명없이 알 수 있는 사물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1. 저절로 알게 되는 원칙들
2. 경험에 의해 알게 되는 사물들
3. 우리의 행동 자체
이런 것들은 궁극적으로 오로지 신적 계시를 통해서만 알 수 있음을 당연시하고 있다.
스코투스는 또한 "개별화의 원리"에 대하여 논의했는데, 이것은 스콜라 철학의 보다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였다.
기본적인 문제는, 어떻게 한 사물이 다른 사물과 다름을 구별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존재와 본질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물을 다른 사물과 구분짓는 것은
질료가 아니라 바로 형상인 것이다. 아퀴나스에 반대하여 둔스 스코투스는 흠 없는 개념을 옹호하였으며,
실제로 누구나 그의 의견에 동의해 온것 같다.
윌리암 오캄은 둔스 스코투스의 제자였으나 나중에 결별한다. 그는 화체설을 부인하고 재산에 대한 교황의 주장에 다른 견해를 취했기 때문에 1328년에 파문을 당하고 황제와 함께 피난을 가게 되었다. 당시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은 바로 교황과 황제의 대리전쟁이었다.
이때 신성로마제국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볼테르의 지적 : 신성로마제국은 신성하지도 않았고, 로마도 아니었고, 제국도 아니었다)
황제의 비호아래서 오캄은 정치적 책자를 몇권 집필했는데 주로 교회의 권력이 세속적인 일에 덜 간섭해야 하며,
보다 민주화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이었는데 이는 결국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게 된다.
오캄은 많은 사람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오해했었으며, 그결과 논리학과 인식론이 형이상학과 신학의 영역으로 떨어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오캄은 논리학이 과학적 용어에 대한 분석인데 반해 과학은 그 자체가 사물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논리학은 보편자를 다루며, 물리적 현상이 아닌 용어나 개념과 관계되어 있다.
이런 사상을 오캄은 모든 체계에 질서를 부여한 신적 존재에 대한 표준적 개념에 맞추려고 한일이 별로 없었다.
이게 뭔소린지 정리해서 말하면 오캄은 거대한 중세철학 체계의 붕괴를 위한 쐐기를 박은 것이다.
아퀴나스와 오캄을 직접 비교해 보시라. 아퀴나스의 시도는 성공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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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브님... 답변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