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러님의 칼럼입니다.

기독교는 자학의 종교

몰러 0 2,830 2005.06.29 16:47
아래는 모 기독교 까페에서 보낸 전체메일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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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주는 선물


도스토예스프스키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간질병과 사형수의 고통이었다.

로트레크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를 경멸 덩어리로 만들었던
난장이라는 고통이었다.

생테쥐페리를 위대하게 만든 것도
그를 일생 동안 대기 발령자로
살아가게한 평가 절하의 고통이었다.

베토벤을 위대하게 만든 것도
끊임없는 여인들과의 실연과
청신경 마비라는 음악가 최대의 고통이었던 것이다.

고통은 불행이나 불운이 결코 아니다.
고통이란 도리어 행복과 은총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번제물인 것이다.

당신이 지금 지나치게 행복하다면
그것은 곧 불행이다.
당신이 지금 지나치게 불행하다면
그것은 곧 행복이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비로소 자아를 불사를
용광로 속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며,
용광로 속에서 신의 손에 의해
아름다운 은으로 새롭게 빚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암석이
용광로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결코
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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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나오는 여러사례를 들어 기독교인들은 걸핏하면 "고통을 감내하라"고 합니다.
고통을 신이 베풀어 주는 단련의 도구라고 주장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두가지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고통은 감내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되는 것이라는 점과,
인간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망각한 나머지 고통을 극복하려는 노력보다는 체념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으며, 오로지 기도에 의존하라는 식으로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공의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내세의 보상 같은 것을 제시합니다.

기독교는 이렇게 자학의 정신을 신자들에게 강요하면서 자기합리화를 해온 종교입니다.
이런 노예의 관념을 받아들이기에 인본주의자들의 자존심은 너무나 그릇이 큽니다.


고통은 아무런 선물을 주지 않습니다.
고통을 극복하려는 의지만이 선물을 줄 수도 있고, 안 줄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엄연히 극복할 수 없는 고통의 존재는, 바로 기독교가 주장하는 신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거나 또는 기독교의 신이 절대악이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 줍니다.


이것은 반기독교운동의 이유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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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 반기독교인 할 것 없이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바이블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품격이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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