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디벼보는 원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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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러님의 칼럼입니다.

다시 디벼보는 원죄론

몰러 0 2,516 2005.06.20 18:42

다시 디벼보는 원죄론     
   
 
 
작성일: 2002/10/07
작성자: 몰러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인정하지 않는 원죄론을 고집한다. 원죄론의 형성배경을 들여다보면, 이는 예수의 대속을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속하였다고 하지만, 죄를 짓지 않은 성인들이나 비기독교 국가 및 민족은 예수의 대속이 전혀 무의미해진다. 인간이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들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원죄가 필수적이다. 가톨릭의 연옥교리 조차도 인간의 원죄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악의 상태로 태어났다는 교리,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수의 구원을 믿고 세례를 받는 등의 과정이 없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교리가 없으면 기독교라는 종교는 아예 성립이 되지 않는다.

그럼 원죄의 문제를 자세히 해부해야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일단 원죄의 구성은, 이 세상은 전지전능하고 자비심 깊은 하나님에 의해 완전한 상태로 창조되었지만,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로써 불순종하고 타락하였으며 그 결과 죄와 악의 상태로 태어난다는 것, 이를 씻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고 회개함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의의 하나님은 불순종에 대한 결과로 원죄를 인간에게 부과했으며, 또한 자비심 넘치는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어 죄를 벗어날 기회를 주셨다. 또한 이 기회를 잡을 것이냐 말 것이냐의 선택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겼다. 여기까지가 기독교인들의 주장이다.


그럼 하나하나 살펴보자.
먼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비록 자신이 세상을 완전한 상태로 창조하더라도 결국 결함이 발생하리란 것을 알고 계셨다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로써 타락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하고, 그리고 선악과를 심어 두신 것이다. 혹시나 인간이 선악과를 취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기대는 쓸모 없는 것이다. 결과는 이미 그런 기대와 상반된 것으로 나왔으며, 어쨌든 하나님은 그 결과를 미리 내다보셨음이 자명하다.
인간의 타락을 미리 알면서, 또 세상이 결함을 가지게 될 것을 알면서도 세상을 창조한 신이 과연 현명하고 전능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필자는 몇 가지 경우에 있어서 차라리 올림포스의 신들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된다. 아버지보다 나은 자식이 탄생하리란 것을 알게되자 아름다운 여신과의 결혼을 포기하고서 인간에게 시집보낸 일 같은 것 말이다. 하긴 제우스는 전지전능하지 않은 단지 최고의 신일 뿐이니 적절한 비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이 세상은 결함 투성이로 가득 차 있으며, 그것이 인간의 타락에 기인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하나님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은행장이 예지력이 있어서 A라는 사원이 몇월 몇일 구체적인 시기에 고객의 예금을 횡령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고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현금취급을 하도록 방치함으로써 고객의 예금을 날려버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져야할 책임과 성격이 같다. 물론 A는 횡령죄로 처벌받아야 하지만, 은행장이 당일 날 또는 아예 계속적으로 A에게 다른 업무를 맡겼으면 횡령사건은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은행장의 예지력과 인사권은 아무짝에 쓸모 없어진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예지력이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입증되었을 경우에는 처벌도 면하기 어렵다. 예지력이 없더라도 불성실한 사원이 저지른 사고에 대해 평소 인사관리를 잘못했다고 하여 은행장이 문책을 받는 판에 말이다.
(이 문단에서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주장/전제를 부정하는 듯한 말을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분명 하나님이 전지전능하고 자비로운 존재라고 하였다)

세상의 결함이 하나님 탓이 아니라 마귀의 탓이라 하면 더욱 이상해진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마귀가 망치는 것을 수수방관하신 셈인데, 이는 마귀의 망동을 어찌하지 못할 정도로 능력이 부족하였거나 아니면 선하지 않으셔서 마귀의 망동에 동조한 것 중에 하나임이 틀림없다. 하나님이 잠시 소홀하신 틈을 타서 마귀가 세상을 망쳤다는 변명이 있는데, 이는 곧 하나님이 전지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에 수용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십 수세기 전에 이단으로 정죄된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이니 기독교인들이 이런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논의가 진행되어도 기독교인들은 절대로 하나님을 탓하지 않는다. 오로지 인간의 자유의지가 스스로 죄악과 타락을 이끌었다고 하면서 말이다. 기독교인들은 흔히 ‘하나님은 인간이 프로그래밍된 로봇처럼 복종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자유의지로써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신다’고 한다. 이 말에서 순종이라는 말 자체가 자유의지와는 성격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순종과 불순종을 인간이 택일할 수 있으며, 하나님은 결과만 심판하신다고 한다. 순종하면 천국, 불순종하면 지옥이라는 교리의 문제점은 뒤에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자유의지론이 가지는 문제점을 고찰해보자.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자연법칙들이 바로 위대한 설계자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과학자들이 발견한 관성의 법칙, 별의 운행, 상대성 이론, 양자론, 빅벵이론 등등은 단지 하나님의 업적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일련의 자연법칙이 하나님의 설계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자유의지론은 요상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결국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셈인데, 이는 위대한 설계에 예외를 두었다는 말이 된다. 예외의 또 다른 경우는 ‘기적’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자유의지와 기적은 최초의 설계와 창조 이후에는 하나님이 별다른 예정이 없었음을 뜻한다. 또한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은 자연법칙의 일관성을 깨는 것이다. 정리해서 말하면 기독교인들은 자유의지론으로써 자연법칙설계론과 예정설을 스스로 폐기한 셈이며, 이것들이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재림과 심판, 천년왕국 따위의 예정들이 폐기될 가능성도 내포한다.

예수천국불신지옥이란 말은 기독교의 교리 중에 가장 저급하고 치졸한 것으로써 논의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모든 교리가 여기에 귀착되기 때문에 다루지 않을 수는 없다.
우선 신앙과 불신의 결과는 그 사람의 현세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세상을 살펴보면 불신자가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독실한 믿음을 가지고 의롭게 살던 중에도 불의의 사고로 평생 고통을 겪으면서 사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정의를 세우고 불의를 단죄하기 위해, 그리고 억울한 고통에 대한 보상으로 종교가 채택한 변명은 내세에서의 심판인 듯 하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이 천국과 지옥 중에 하나여야 한다는 것이다(가톨릭의 연옥은 일시적으로 머무는 곳이며 결국 천국과 지옥 중 한군데에 가게 된다). 이것들은 원래 유대인의 내세관이 아니라 페르시안의 것을 도입한 것임을 부언해 둔다.
기독교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영혼의 천국행과 지옥행이 한번 결정되면 번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의 의의, 즉 하나님의 공의가 퇴색되기 때문이다. 결국 지옥에서 아무리 회개한들 천국으로 올라가지 못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지옥에서 회개하는 영혼이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고통을 못 이겨서라도 후회하고 회개할 영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자유의지가 결여된 회개이기 때문에 무효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교화에는 관심이 없는 잔인한 교리를 만든 신이 그리 자비심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천국에서 안락한 가운데 신을 찬양하면서 지내는 영혼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에 대해 아무런 연민도 가지지 않는다면 벌써 비인간적인 것이다. 결국 기독교의 천국이란 이렇듯 도덕, 연민, 자비심과는 상관없이 그저 잔인하기만 한 것이다(기독교에는 지장보살과 같은 존재가 없다).


이상의 논의들을 정리하면, 먼저 원죄는 그것을 선포한 존재인 하나님에게 책임이 있으며, 전지전능하고 무소불위의 존재임을 부정하게 된다. 또한 절대선이 될 수 없으며, 인간적인 선인 상대선도 되지 못한다. 원죄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것이며, 심판의 결과는 너무나 잔인한 것이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 논변을 접한 기독교인들의 최후의 방어선은 인간의 가치와 인간의 논리, 그리고 인간의 사고로서 절대자인 하나님의 뜻을 어찌 다 알겠느냐는 것이다. 이는 상대적 가치론에 근거하여 절대자를 비판하지 말라는 말로 요약된다.

물론 인간의 사고로 신에 대한 것을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간이 분명하게 아는 범위에서 비판을 할 수는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 방법이 필자가 이 글에서 해온 모순제기의 방법이다. 아무리 전능한 존재라도 자체 모순을 범할 수는 없다. 모순을 초월한다는 것은 곧 억지를 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지전능하면서 선하다고 하는 존재가 피조물의 타락을 막지 못한 것은 전지전능하지 않거나 선하지 않은 것 중에 하나일 텐데 이 외에 무슨 뜻이나 목적이 있다는 말인가? 여기에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선과 인간의 선이 다른 기준에 있다는 말로 빠져나가려 해보지만 쓸데없는 시도다. 다른 기준의 선이라면 그 기준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정하였을 것이다. 또한 선과 악은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선과 악의 차이는 누가 만들었는가? 하나님이 만들었다면 분명 하나님 자신에게는 선과 악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반대로 하나님이 선하다면 선과 악은 그 자체로서 어떤 의미가 있거나 하나님보다 위에 있는 존재가 그 차이를 만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 모순을 빠져나가겠다는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과 권한으로써 생떼를 쓰는 공의롭지 않은 존재임에 틀림없다. 군대 갔다 온 사람이면 잘 아는 말이 있다. “짜슥, 암말 말고 까라면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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