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금지에 대한 어거지 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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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러님의 칼럼입니다.

이혼금지에 대한 어거지 반항

몰러 0 1,418 2005.06.20 17:26
이혼금지에 대한 어거지 반항    
  
 
 
작성일: 2002/07/15
작성자: 몰러




이혼금지에 대한 가톨릭의 한계

물론 가톨릭의 관점에서는 이 글이 죽어도 이해가 안 갈 것이다.
서로 딴 물에서 노는 셈이고 공유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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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에서는 혼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의를 두고 있다.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인류의 영속과 서로의 인격적 완성을 위해 합법적으로 이루는 결합으로서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는 나누이지도 않고 가를 수도 없는 생활 공동체이며, 애정의 합일일 뿐 아니라, 영속성을 지니고,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며, 단일성을 지니고 있다.

* 단일성에 대해 딴죽거리자면,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에 대하여 기독교는 구약시대 당시에는 전쟁, 기아 등으로 성균형이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는 식으로 궁색한 변명만 할뿐이다. 성서적으로는 일부다처, 일부일처, 일처다부 모두 합당한 관습이다.

* 잠깐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많은 수의 유부남은 일부다처제를 꿈꾸고, 대다수의 유부녀는 자유(이혼을 암시)를 꿈꾼다.

이혼을 금지하는 교리, 즉 불가해소성에 대하여 알아보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합법적으로 맺어진 결혼은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는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 불가해소성이다. 자녀 양육, 부부간의 인격적인 완성을 위해서 불가해소성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리고, 혼인은 남녀 각자가 부모를 떠나 배우자와 한 몸을 이루는 신비로운 관계를 이룬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오복음 19:6] 라고 하시면서 혼인을 풀 수 없다고 규정지어 주셨기 때문이다.

만일 이혼이 가능하다면 결혼생활 중 서로간의 부족함을 채우려 노력하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배우자를 찾아 나서게 될 것이고, 사소한 그리고 잠시의 미운 감정으로 인해 영원한 이별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질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에 혼인의 신성함과 신비로움은 사라질 것이고, 사회는 수많은 문제와 함께 윤리관의 타락과 함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창조 사업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혼인은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의 특징뿐 아니라 신비로움과 신성함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혼인은 개인과 인류 사회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고, 또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세말까지 존속될 것이기 때문이며, 이 혼인을 통해 부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로운 일치에 참여하고, 이로써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또한 혼인을 통해 맺어진 부부 사이는 가려진 것도 없고, 숨겨진 것도, 이해 관계도 없는 오직 사랑의 관계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인은 각각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고 다른 성격을 지닌 두 사람이 만나 피를 나눈 부모 형제보다 더 하나된 모습으로 살아가며 완성에 도달하기에 그 자체로 신비로움을 지니는 것이다. 그리고 혼인성사가 다른 성사와 틀린 점은 부부 자신이 성사의 집전자가 되는 것이 특징인데, 이 말은 혼인성사를 집행자는 사제가 아니라 혼인을 하는 당사자들이고, 사제는 이 혼인의 증인으로서 그들을 축복해 주는 것뿐이다.



사실 언듯 보아서는 불가해소성에 대하여 특별히 시비를 걸만한 요소가 별로 없다. 단지 하느님 운운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굳이 하느님 운운하지 않아도 결혼생활을 유지시켜 주는 요소는 많다. 공처가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으니까. 6-_-/

하지만 이혼에 대한 금지가 무조건 좋은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간과하고 계속 혼인의 신성함만을 강조하다가 비극이 발생했다. 역사적으로는 헨리 8세와 바티칸의 갈등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캐더린과의 이혼을 바티칸이 반대하지 않았다면(몇 백년 후에 나오게 될 ‘혼인무효’라는 것을 시행했더라면) 현대에 와서 북아일랜드에서 오렌지 행진 중에 사상자가 발생하는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고, 북아일랜드 구교도들에게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을 찍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인간이 자유의지, 욕망(어떤 형태로든), 권태, 싫증, 자존심, 사랑, 호기심, 스트레스, 시기와 질투 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기독교는 가끔 잊어버린다는데 있다. 우리가 이런 요소들을 갖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기독교이기 때문이다. 이제 잼없는 말은 그만하고 예를 들어서 이혼금지의 폐해를 까대보기로 한다.

(예문에 나오는 이름들은 특정인과 하등의 관계가 없음. 관계 있어도 할 수 없음. ㅋㅋㅋ)

웨인은 외국에 자주 출장을 나간다. 한번 가면 몇 개월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웨인의 부인 카타리나는 비록 독실한 신자이기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청순하지는 않다. 그녀의 속에는 용광로같은 열정이 숨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종교적 가르침 때문에 간통을 저지를 생각은 하지 못한다. 결국 그녀는 신부에게 가서 고민을 토로한다. 그런데, 신부는 섹스에 대해 종족 보존 이상으로 의미를 두는 것은 죄악이라고 할뿐이다. 독신남자가 섹스가 주는 기쁨을 알 턱이 있나. 카타리나는 결국 신부에게 혼인무효 선언을 해달라고 한다.

자유안티 부부는 자유주의자로 DINK족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영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다만 당장은 즐기고 싶을 뿐이다. 하느님이 주신 즐거움을 하느님의 똘마니에 불과한 성인의 말 때문에 포기하고 엄숙함을 유지하기는 죽기보다 싫다. 하지만 오난처럼 저주받기는 싫어서 물리적, 생리학적인 피임을 하지 않는다. 교황성하께서 윤허하신 배란주기법만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서로에 대해 권태가 생긴 것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하느님의 공의가 임재하신 것일 수도 있다. 번창하라고 하신 창세기의 명령을 어긴 뇬넘에게 쾌락은 불공정하며, 또한 쾌락 자체가 죄악이니까... 두 사람은 별 짓을 다해봤지만 이제 더 이상은 가슴 떨리는 흥분을 서로에게서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정욕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 해결하기로 했다. 아기를 갖는 것이다. 아기에게 집중하면 정욕에 사로잡히는 일이 덜할지도 모르고 하느님이 좋게 보시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미 40대였다. 10년 넘게 임신을 피하다 보니 이제는 아기가 서지 않았다. 사랑과 존중과 사려깊음 보다는 권태가 두 사람을 장악했다. 결국 소가 닭 보듯 하는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쯧쯧쯧은 총각이다. 지천명이 낼 모레건만 그는 결혼할 마음이 없다. 쯧쯧쯧에게는 두 명의 누나가 있고 둘 다 결혼했다. 큰 매형은 의학자로 아프리카 풍토병을 연구하고 있다. 큰누나는 처음에 몇 달동안 아프리카에서 같이 살았지만 너무나 불편한 생활을 견딜 수 없어서 혼자 귀국했다. 매형은 얼마 후 연구를 도와주던 아름다운 조수와 그만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말았다. 마음 약하고 솔직한 매형은 결국 누나에게 고백했다. 작은 매형은 IMF가 뭔지도 모르던 시대에 이미 해고당했다. 그는 무능한데다가 게으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력만은 걸출해서 결국 작은누나는 해마다 아이를 낳아야만 했다. 만삭의 몸으로 시장에서 야채를 팔아야 했고, 아기 낳고 사흘도 안되어 가락동 시장에 가서 경매에 참가해야 했다. 작은누나는 남편이 부양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생겼기에 신부에게 결혼무효를 선언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신부는 이미 아이가 10명도 넘는데다가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한번도 한눈을 판 적이 없기 때문에 불가하다고 했다. 또한 신부는 형부는 간음의 죄를 부도덕한 자이고, 남편은 비록 무능할지언정 도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고 선언했다.
쯧쯧쯧은 큰 매형이 아프리카인 수백만명의 목숨을 구제하여 노벨 의학상과 평화상 동시수상론이 오가는데도 불구하고 비난받고 있으며, 식충이에 불과한 작은 매형은 도덕적 하자가 없는 사람이 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대주교에게 자신을 파문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하고 말았다. 그리고 독신선언을 한 것이다.


이상의 사례는 물론 가상의 것이며, 또한 절대 일반화할 수 없는 특수한 케이스일 수도 있다. 몰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교리가 정의한 이상적인 혼인생활이 실제로는 구현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혼인은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것이며, 신성함만으로는 유지되지 않으며, 윤리관의 타락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인간본성(특히 쾌락에 대한 욕망)이 내재하고 있으며, 서로 희생과 양보만 요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성직자들은 혼인에 대해 그리스도와 교회에 일치시키라는 요구만 하고 있으며, 교리와 사랑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불행한 혼인을 외면하고 있다.

이혼이 증가하고 말 것이라는 이유로 이혼을 불허하는 것은 불관용의 교리이다. 교리는 사소한 이유나 잠깐의 미운 감정 때문에 이혼하려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만드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원천적 이혼봉쇄로써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일 뿐이다. 여기에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불행한 혼인생활에 대한 고민이나 배려가 전혀 없다. 물론 어슬픈 시도는 한다.

“두 분이 사귀던 시절의 추억을 되새겨 보세요.”

불행한 혼인생활의 문제를 추억이 해결해 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추억은 말 그대로 사소하고 일시적인 감정을 해소해 줄 수 있을 뿐이다.


몰러는 작금의 이혼증가에 대해서 좋게 보지 않는다. 대부분 너무나 이기적이고 성급한 판단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을 해야할 만큼 심각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고, 또 이혼을 하는 것이 서로 더 행복해질 수도 있다.

좋다고 해서 무조건 해야하고 나쁘다고 해서 무조건 금지해야 하는 것은 이 세상에 별로 없다.


P.S 1. 혼인무효는 바티칸이 불행한 결합대신 분리가 더 행복할 때도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원리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기묘한 제도를 만든 것이다. 이는 천국과 지옥의 이분법이 가진 불합리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어서 연옥과 림보를 만들어낸 행위와 같은 것이다.

P.S 2. 이 글을 읽고 난 후 몰러를 일반적인 부도덕자로 매도하는 것은 수긍하겠지만, 몰러를 아무 데나 거시기를 껄떡대려는 불한당으로 보는 육갑은 없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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