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에 대해 씹으려거던 알고 씹어라
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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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0 17:04
이슬람에 대해 씹으려거던 알고 씹어라
작성일: 2002/06/26
작성자: 몰러
이슬람의 근본주의 VS 기독교의 근본주의
저는 요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고, 또한 딴 동네에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책들을 읽고, 신문기사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아니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은 제가 이슬람을 모른다는 것뿐만 아니라 너무나 이슬람을 잘못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로서, 사상으로서, 그리고 체제와 패러다임으로서의 이슬람에 대한 저의 관점은 여전히 인간(인본주의)과는 거리가 멀다는 입장입니다. 무슬림들이 아무리 변호해봤자 이슬람의 기본교리는 저에게 전혀 매력이 없습니다. 개인의 차이겠지만 말입니다. '원래 이슬람은 평화적인 종교다. 이제까지 당신이 알고 있던 이슬람은 서구 기독사회가 퍼뜨린 잘못된 속설일 뿐이다.' 등등의 주장들... 일면 수긍이 가지만 기독교가 가진 한계를 뛰어 넘는 구석이 별로 없다는 것이 일관된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관련된 해묵은 갈등을 지켜보면서 이게 다가 아니구나, 내가 오해했었구나 하는 점들이 속출하더군요.
이슬람 교리에 대한 것은 기독비평까페에 카릴님이 올려주고 계시니 참조하시기 바라며, 저는 이슬람이 역사의 한 축으로서 그들이 가진 이상과 현대사적 현실의 괴리, 그들의 좌절감, 그리고 그들의 꾸준한 변신 노력을 살펴보면서 알게 된 '이슬람 근본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의 차이를 논하고자 합니다. 이번 글의 대부분의 내용은 무함마드 깐수(아시죠? 간첩 정수일...)의 기고문과 터키 및 사우디 대사관(문화원)에서 나온 자료를 짜집기한 것입니다. 물론 같은 내용에 대해 그들과 다르게 해석한 부분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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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근본주의'라는 용어는 무슬림의 작품이 아니라 서구인들이 가진 편견의 소산이다. 13억 인구에 50여 개 나라로 구성된 이슬람 세계에서 보수나 혁신을 막론하고 일어나는 모든 이변들, 특히 외향성을 띤 일(테러, 암살, 분쟁 및 전쟁, 혁명 등)이 일어났다 하면 이슬람 근본주의의 소행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는 용어에서부터 개념에 이르기까지 애매모호하고 가치착오적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이슬람근본주의'란 허상을 실상인 것처럼 속단하고 오도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슬람의 역사는 기독교와는 달리 근본교리를 부정하는 이단이 생긴 적이 거의 없다. 시아파, 수니파 등등 여러 종파가 있지만 그 근본교리는 하나도 다른 점이 없으며 다른 점이 있다면 일견 사소한 것들뿐이다. 하여간 이슬람은 그 자체가 근본주의이기 때문에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이슬람은 정교합일의 기치 아래 이슬람의 전통과 순수성을 지키려는 반외세 투쟁을 전개해 왔다. 이슬람은 여느 종교와 달리 사회 전반에 걸쳐 정교합일을 강조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회문제에 간여하게 된다. 그러한 문제해결의 방도로 각기 다른 형태의 사회운동을 택하고 있는데, 지난 1400여 년간, 특히 근·현대에 와서 나타났다가 또 사라져간 이슬람의 사회운동들은 대체로 종교로서 이슬람의 순화와 그에 바탕을 둔 이슬람사회의 개혁이란 두 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려는 움직임들은 현실과의 괴리에 부딪혀 좌절을 겪는 경우가 더 많았다. 또한 탈레반이나 이슬람 혁명 후의 이란에서 보듯 마치 기독교의 Sola Scriptus와 같은 폐해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슬람의 사회운동은 이슬람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이슬람의 사회운동은 역사적인 틀 안에서 발생하고 발전하였으며, 이슬람의 기본 교의에 의해 사회운동의 성격과 결과가 규제되었다. 그러나 역사적인 틀에 종속된 사회운동이 아니라 이슬람교의 전통교리에 대한 도전과 응전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원래 근본주의(fundamentalism)는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내에서 일어난 보수주의 종교운동이다. 18세기 전반의 '천년왕국운동'에 영향을 받은 미국 기독교인들은 1902년에 '미국성서연맹'(나중에 성서협회로 개편하고 그 본부를 토마스 페인이 살았던 건물터에 짓는다. 기독교도들은 이것을 승리의 증거로 삼는다. 웃겨서...)을 결성하고 1910년부터 1912년 사이에 '근본적인 것, 진리의 증언'이란 제목의 소책자 12권을 시리즈 형식으로 발간하여 자기들의 반동적 입장을 설교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들의 교조(독트린)를 '근본주의'라고 이름지었다. 특히 19세기에 '성서비판학(신앙상의 예수 분리론으로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부정함)' 등이 대두되고 기독교가 세속화되며, 신자들의 사고가 자유화되기 시작하자, 성서무류설, 축자영감설, 예수의 신성, 동정녀 탄생, 부활과 재림 등 기독교의 근본교리를 지키기 위한 명분으로 근본주의는 훨씬 조직화되고 단결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이 기독교의 근본주의는 그들에게 있어 적절한 용어와 개념을 선택한 것이다. 이 근본주의적인 선교사들이 가톨릭 예수회 이상의 전도능력과 지원과 의지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 한국 기독교가 저지르는 삽질과 한국 기독교가 보이는 인간상실현상의 시발점(씨발점)이다.
그럼 이슬람은 어떤가? 이슬람의 경우는 기독교와 사정이 전혀 다르다. 기독교가 계몽주의와 과학기술문명에 떠밀려 다원주의라는 가면을 어쩔 수 없이 쓰고, 한편 이에 반발하여 근본주의를 내세우게 된 것과는 달리, 이슬람은 1400여 년간 근본교리가 도전받거나 거부되어 그것을 회복하거나 지키기 위해 '근본주의' 같은 것이 필요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꾸란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이어서 비판의 여지란 있을 수 없으며, 이슬람은 자체가 근본이요 원리이기 때문에 따로 어떤 '근본주의' 같은 것이 이슬람과 병존한다고는 상상할 수도 없다. 근본주의는 원래부터가 이슬람에 없는 개념이기 때문에 아랍어에는 '근본주의'란 단어가 없다. 우수릿야(근원적)라는 조합어가 있으나 이것은 서방에서 하도 이슬람 근본주의를 떠들어대기 때문에 시사적으로 인용하기 위한 용도로만 쓰일 뿐이다.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용어는 서구인들이 만든 말이다. 영국의 이슬람 연구가 왓트는 '이슬람 근본주의와 모더니즘(1988)'이라는 책에서 전통적 세계관을 고수하고 그대로 실현하려는 자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칭하고, 전통적 세계관을 몇 가지 측면에서 수정하려고 하는 자들을 '자유주의자'라고 정의하였다. 한편 미국 시카고대학의 연구논문에서는 '다른 적절한 대체어가 없지만' 이슬람과 기독교 근본주의 사이에는 '전투성'이란 공통점 내지는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이슬람 근본주의'란 말을 채택한다고 하였다. 정리하면 '이슬람 근본주의'는 전통 고수의 보수주의이며, 그 용어는 '전투성' 때문에 차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서구인들이 이슬람에 대해 가진 편견과 몰이해, 그리고 논리적 비약을 엿볼 수 있다.
보수를 근본주의로 보는 것은 기독교적 개념이다. 이 개념대로라면 '이슬람 근본주의'는 당연히 보수사상만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보수주의뿐만 아니라 '개혁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행동주의', 즉 혁신주의마저도 포함시키고 있다. 즉, 서구인들이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용어를 일반화시킨 것은 연구의 가설이나 분석의 방편에 불과한 차용어를 본질로 착각한 순환논리적 오류와 논리적 비약을 범한 셈이다.
'전투성'에 대해서도 서구인의 억지스런 시각을 알 수 있다. 원래 기독교 근본주의는 시작부터 수많은 분파들이 출몰하였고, 서로 경쟁과 대치를 하는 과정에서 비타협적인 전투성을 띠게 되었다. 지금도 수없이 벌어지고 있는 이단논쟁이나 타 종파에 대한 극단적인 배타성을 보라.(이러한 배타적 지랄들이 비판받기 시작하자 보수주의를 복음주의라는 말로 바꿨다. '복음주의=수구꼴통보수주의'인 셈이다) 시카고 대학의 논문, 즉 이슬람의 '전투성'에서 오는 공통성을 감안해 '이슬람 근본주의'란 용어를 쓰는 것이 합당하다는 주장은 결국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정말 이슬람이 원래부터 전투적이고 폭력적인가? 모든 종교가,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종교와 폭력은 양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종교는 모두 사랑과 평화를 자기의 이념으로 추구하는 법이다.(씨바, 여기서 기독교는 제외다. '십자가 군병들아 담대히 나아가자', '악의 세력들에게 매운 맛을 보여주자'고 개소리하는 거뜰이다) 이슬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십자군이 허벌나게 작살나던 13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슬람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 속에 씨부린 '코란이냐, 칼이냐'라는 말이 퍼진 이후 서구인들에게는 이슬람이 폭력의 종교로 비쳐지게 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호전성이 이슬람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쟁과 폭력의 원인이 된다는 식의 연역논리로까지 이어졌다. 이 빌어먹을 연역은 지금도 개독들이 이슬람을 공격할 때 주로 써먹는다. 서구 계몽주의자들조차 '코란과 칼'이라는 말로써 이슬람이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구태적 가치관을 지닌 사상으로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슬람사상의 기조는 극단을 배격하는 동양적인 중용이다. '이슬람적 중용조류'는 원초(전통)주의와 혁신주의의 배합, 불변요소와 가변요소의 균형, 경직성과 외세 추종으로부터의 해방, 이슬람에 대한 포괄적(신앙, 사회, 정치, 입법 등 측면)인 이해 등 네 가지가 주요한 사상이다. 이렇듯 평화와 중용을 지향하는 이슬람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지하드로 대표되는 폭력적 양태를 보이고 있다. 무슬림들의 변명이란 인간이 화약고 속에서 살다보면 비운에 떨기도 하지만 악에 받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득불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고 알리기 위해서 사회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소수의 급진파나 극단파가 생겨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전체일 수 없고, 그들의 행동이 합리화되어서도 아니 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보면...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용어는 애매하고 편견에 가득 찬 말이다. 또한 우리는 이제껏 이 용어로써 무슬림을 과격한 꼴통들이라고 일반화해왔다. 그런데 참으로 우습게도, 한편으로는 서글프게도 무슬림들도 어느덧 이 용어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서구인들이 정의한 그대로의 근본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이것은 지하드, 여성억압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 세계의 위정자(국왕, 대통령, 칼리프 등 어떤 형태의 통치자든 간에)들은 표면적으로는 종교 아래에 있지만, 실상을 보면 종교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때 이들은 교리의 근본주의적인 부분만을 강조하고 국민들에게 강요한다. 물론 이것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터키 월드컵 대표선수들의 헤어스타일을 보라. 우리가 가졌던 관념을 깨는 머리가 몇 명 있다. 물론 터키는 여타 이슬람 국가들과 뿌리가 조금 다른 사고를 하는 국민성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 글에서 '이슬람을 다시 보자'라든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자'는 식의 내용은 가급적 빼려고 노력했다. 뭐, 하나도 정이 가지 않는 종교니까... 단지 그들이 억울하게 매도당하는 듯한 부분 중의 하나인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해서 살펴보았을 뿐이다. 사막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발생한 종교나 사상은 결국 열악하기 마련이다. 마냥 순둥이처럼 살수는 없고, 치열한 생존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어떤 대상 하나를 정점으로 뭉치고 다른 종교와 민족에 대해 배타적 성향을 띠지 않으면 시쳇말로 먹고살기 힘들 것이니...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슬람은 기독교보다 2배 이상 더 낫다. 회의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인 필자에게는 오십보백보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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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부시 밥탱이가 개독적 성향이 드러나는 중동정책을 슬쩍 보였습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적극 밀어주겠다는 것 까지는 좋은데, 아라파트 빼고 하잡니다. 뭐 중동 안정을 위해서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이거 아라파트를 배제하겠다는 것이고, 그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안 받아들일 것이고... 결국 부시가 내놓은 평화안은 빛좋은 개살구네요. 이 씹새가 아무 액션도 취하기 싫으면서 국제여론 뿐만 아니라 국내여론까지 들고 일어나니까 마지못해 한다는 소리가 이 모양입니다. 아라파트가 테러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져야한다구? 아라파트는 협상에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짓을 하지 않으려는데, 이스라엘은 그걸 이용해서 더 갈구고, 참다 못한 팔레스타인들은 극단적 행동으로 나오고... 아라파트는 이미 영향력을 상실했는데... 상징적인 지도자일뿐 실권은 없는 신세죠. 부시정권... 분명 속으로는 이스라엘이 하루빨리 팔레스틴을 완전접수하길 바라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