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때 몽달귀신 상태로 앉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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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러님의 칼럼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때 몽달귀신 상태로 앉았을까?

몰러 0 2,799 2005.06.20 15:46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때 몽달귀신 상태로 앉았을까?    
  
 
 
작성일: 2002/01/28
작성자: 몰러





가나에서의 혼인잔치 수수께끼

일전에 개독 뚜쟁이 사이트에 대한 글이 올라왔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를 따서 이름지어진 곳이었는데, 이 혼인잔치 사건은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고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거 함 디비 볼 만한 Note라고 생각됩니다. 물울 포도주로 바꾼 기적은 분명히 중요한 소식일진데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에는 왜 누락되었는지도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작년에 이 부분에 대한 글이 올라온 적도 있었습니다만, 리바이벌 차원에서 정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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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행적은 각 복음서마다 약간씩 틀리지만 특히 요한복음서는 공관복음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물론 복음서 기자가 자세한 날짜나 시기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입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것들을 기록하다 보니 그 순서나 내용이 차이를 보일 수 있다고 인정해 주기로 하자(고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은 개소리다). 예수학원 설립과 수강생(제자) 1차 모집 후의 첫 번째 강의(설교 및 이적)는 다른 복음서에서는 치유은사로 시작하였음에 비해 요한복음서에서는 가나에서의 혼인잔치에 참석하여 물을 포도주로 바꾼 이적이다.

당시 상황을 그대로 인용하여 살펴보자.

갈릴리 가나에서 혼인잔치가 있었다. ①예수의 어머니가 거기에 계셨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그 잔치에 ②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니, ③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하기를 “포도주가 떨어졌다” 하였다. 예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④“여자여, 그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아직도 나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⑥그 어머니가 일꾼들에게 이르기를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였다. (중략) 예수께서 일꾼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⑦-①그래서 그들은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웠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제는 떠서, 잔치를 맡은 이에게 가져다 주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⑦-②그들은 그대로 하였다. 잔치를 맡은 이는,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물을 떠온 일꾼들은 알았다. 그래서 ⑧잔치를 맡은 이는 신랑을 불러서 그에게 말하기를 “누구든지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덜 익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구려!”하였다.
요한복음 2:1-10

이제 분석을 해보자.

①은 아마도 품앗이 격으로 하여 예수의 엄마가 혼인잔치를 도와주러 왔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나사렛에서 가나의 거리는? 모르긴 몰라도 반나절은 족히 걸었을 법한 거리(약 100리)로 판단되는데 이 정도 거리나 떨어진 곳에서 열리는 잔치를 도와주러 간다는 것은 친척집이 아니라면 납득하기가 힘들다.

②도 조금 이상하다. 아직 활동을 시작하지도 않은 예수를 어찌 알고 초대했을까? 결국 친척집 정도 이상의 친분관계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③부터 본격적으로 이상해진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은 주인(신랑)이 신경 써야 할 일인데 왜 예수엄마가 나설까? 품앗이 중에서 예수 엄마가 음료 및 주류 담당이었다고 해도 혼주나 신랑에게 어필해야 옳았다. 그런데 엉뚱하게 자기 아들에게 “우째 좀 해바라”(사투리로 표현한 이유는 예수엄마가 촌동네 무식한 아지메였으니 이게 좀더 정확한 번역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예수의 대답 ④만 보았을 때는 ③이 해결된다. “어무이, 술 떨어진 거 와 나한테 뭐라 카능교?”가 되겠다. 하지만 ⑤에서 우리는 시험에 들게 된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니?... 뭔 때?

여기에서 어느 신학자의 해석을 함 들어볼 필요가 있다. 예수의 능력을 예수엄마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구야 ~ 술 떨어저삔네. 우야마 존노? 아! 맞다. 내 아들 가트마 먼 수가 나게쩨... 바라. 머시마야. 술 좀 맹그러바라.”
“어무이는 내가 아직 나설 때도 아인데 와 벌써 한따까리 하라 캅니꺼? 주인한테 얘기하이소 마.”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좀 이상하다. 하지만 진행을 위해서 일단 걍 넘어가자. 한가지 딴죽거릴 일은 엄마에 대한 호칭이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이 가시나야. 와 나한테 뭐라 케쌋노?”가 되겠다. 왜 Mother가 아닌 Woman이라고 했을까? Woman이 식모 또는 가정부라는 뜻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예수가 못하겠다고 말했음에도 예수엄마는 샥 무시하고 ⑥처럼 일꾼들한테 자기 아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한다. 예수는 더 이상 군말없이 일을 진행하고 ⑦-①과 ⑦-②에서처럼 일꾼들은 토달지 않고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행한다. 이상하다. 예수엄마가 도대체 뭐가 되길래 일꾼들은 시키는 대로 예수의 말을 따를까? 그리고 예수도 손님인 주제에 남의 집 일꾼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까?

예전의 개역판에는 하인으로 되어 있었다가 표준 새번역판에서는 일꾼으로 바뀌었다. 노예도 아니고 자유인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인 하인에서 돈 받고 일해주는(갱상도 문디 말로 “놉 한다”고 표현한다) 위치로 격상된 것이다. 하인이라면 많이 이상했을 것을 일꾼으로 바꿈으로써 약간 해소된 부분이 있다. 즉 예수엄마가 뭘 시켜먹기가 쉬워진 것이다. 어차피 임시고용된 일꾼이므로 잔치와 관련된 일이면 누구의 명령이든 상관이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참고로 당시에는 남의 집 하인은 함부로 부릴 수 없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주인의 동의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서 별로 중요한 부분이 아니기에 생략되었을 수도 있지만, 하여간 하인에서 일꾼으로 바꾼 것은 잘한 일이다.

⑧에서 잔치를 맡은 이, 즉 세러머니 매니저는 분명히 신랑에게 감탄 or 푸념을 한다. 그런데 “예식관리자가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는 별로 씨잘데기 없는 말을 왜 거룩한 성경에 분명하게 언급하였을까? 이 부분은 아무래도 도둑이 제발 저린 경우라고 밖엔 볼 수 없다. 뒤에 그 이유를 설명한다.


예수는 특히 요한복음에서 “랍비”라는 호칭으로 자주 불린다. 또 다른 제 발 저린 경우가 1장 38절에 괄호로 표시되어 있다.

(‘랍비’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다)

성경을 보면 괄호가 쳐진 것은 거의 어김없이 아래나 옆에 주석이 붙어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아무런 주석이 없다. 그러니까 저 문항이 원본 또는 참조 사본에 원래부터 있었던 말인지, 번역하면서 이해를 돕기 위해 사이에 끼워 넣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여간 공관복음서의 “선생님” 호칭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랍비는 선생님이란 뜻’이라고 친절히 가르쳐준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예수의 내공을 고려할 때, 즉 성전에서 장로들과 한 따까리 한 일이나, 바리새파 사람들과의 논쟁할 때, 그리고 여러 곳에서 설교할 때, 그때마다 구약의 적절한 내용을 인용제시하는 예수의 실력을 보았을 때 일반존칭인 “선생님”보다는 율법학자이자 교사로서의 “랍비”라는 호칭이 더 타당성 있어 보인다.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라고 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쪼매난 꼬마가 성전 장로들을 물 먹인 사건은 허위가 되어 버리는 교인들에게는 조가튼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율법에 따르면 독신자는 랍비(교사)가 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예수는 독신이었기 때문에 정식으로 랍비가 되지 못하고, 그래서 걍 선생님으로 불렸다고 보아야 하겠다. 예수를 랍비라고 부른 사람들은 그의 혼인 여부를 잘 몰라서 그의 실력만 보고 랍비라고 불렀던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그런데 말이다. 요한복음보다 자주는 아니지만 공관복음서들에도 사람들이 랍비라고 호칭하는 장면이 나온다. 게다가 더 이상한 것은 율법도 잘 알고 예수의 혼인 여부도 잘 알고 있는 제자들도 예수를 랍비라고 불렀다. 이거 어떻게 된 일인가?

이제 슬슬 결론을 내자.

가나의 혼인잔치는 다른 사람이 아닌 예수 자신의 혼인잔치다.

위의 결론대로 하면 이 글 전반부에서의 헷갈림이 대부분 해소된다.

① 결혼준비는 당빠 예수엄마가 해야 한다. 예수아빠는 율법대로 하자면 걍 폼만 잡구 있으면 된다.
② 제자들은 당연히 스승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 예수가 초대받았다고 한 것은 예수의 결혼을 숨기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③ 술 떨어지면 당연히 혼주인 예수엄마와 신랑인 예수가 고민해야 할 사항이 된다.
④, ⑤, ⑥ 그런데, 예수는 자신이 상관이 없다고 한다.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고 좋아라할 교인이 있겠다. 하지만, 필자도 마찬가지로 약간 억지를 써 보자면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겠다.

“야야. 봐라. 고마 술 떨어지삣다.”
“어무이요, 지금 바빠 죽겠는데 와 나한테 묻는교? 그라이께 내가 술 좀 마이 사노라 켓자나예. 그라고 그런 거는 여자들이 알아서 잘 준비해놔야 될꺼 아인교?”
“이누마가 머라 카노. 지금 어데가서 술 사오노? 걍 니가 술 맹글마 안되나?”
“하이고 어매요. 나 아직 데뷔도 몬했다 아입미꺼?”
“재거랍다(시끄럽다). 고마. 보소. 아제들 ~ 야가 하라 카는대로 좀 해 주이소.”
“아 ~ 이라마 안 되는데... 좀더 폼나게 데뷔할라 켓는데...


어떤가? 나머지 ⑦과 ⑧은 자동빵으로 풀린다.

물론 한편으로 생각하면 예수엄마는 아들의 능력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래서 술이 떨어진 난감한 상황이 닥치자 아들에게 어디가서 술을 구해야 할지 걱정하는 투로 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의 거부의사에 반하여 예수엄마는 일꾼들에게 아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지시한다. 뭔가 아들에게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래도 동의하지 않겠다면 “아직도 나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은 어떻게 해석할래?

정말로 예수가 독신이라면 예수는 자기가 한 말을 실천하지 않는 실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얼마 전에 필자가 올렸던 글에 나오는데, 이혼문제와 관련된 바리새파 사람들의 질문에 예수가 두리뭉실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으로 했던 답변을 보라.

너희는,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마태 19:4-6

구렁이 담 넘어가는 소리가 되지 않으려면 예수는 기혼자여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에게 내려진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요따우 소리를 할 작시면 성경을 다시 읽어보라고 권한다. 예수는 빈번하게 바리새파 사람이나 제자들에게 율법준수(다만 현실성 있고 더 큰 대의명분이 무엇인가를 따져가면서 하라고 했지만...)를 강조하였음을 아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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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관복음서보다 요한복음이 더 사실적이라는 신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놓고 볼 때, 공관복음서 기자들은 가나에서의 혼인잔치 이적사건을 일부러 누락시킨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요한복음 기자는 변조한 것이고... 예수엄마가 주제넘게 나선 일이며, 예수가 자신과 상관없다고 발뺌한 일이며, 이때 엄마를 여자로 호칭한 일이며, 엄마가 아들의 말을 묵살한 일이며, 일꾼들이 고분고분하게 따른 일 등, 어찌 보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상황설명은 원래의 사건을 어슬프게 은폐하려다 뽀록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 예수는 분명히 결혼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상대는 막달라 마리아일 가능성이 크다. 예수의 결혼 사실을 숨기기 위해 싸모님의 자질과는 엄청 거리가 먼 창녀(간음한 여자)로 둔갑시킨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용서받는 사건은 요한복음 사본마다 그 위치가 뒤죽박죽이며, 아예 없기도 하고,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사건이다. 위치가 뒤죽박죽이라는 것은 예수의 결혼사실을 숨기기 위해 사본 맹그는 넘들마다 아무데나 낑궈넣었기 때문이고, 문제의 사건이 누락된 사본이나 공관복음서들의 경우는 예수마누라를 완벽하게 감추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도대체 예수가 부활할 때 무엇 때문에 뜬금없이 막달라 마리아가 등장하는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인물이었기에 부활이라고 하는,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에서 갑자기 주인공의 상대역이자 증인이 되었는가?

“예수의 마지막 유혹”을 쓴 작가와 영화를 만든 감독은 분명히 이런 점들에 의혹을 가지지 않았을까? 영화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는 먹사의 소 제기 이유 중 하나인 ‘성경에서 있지도 않는 사건을 조작하여 기독교를 심히 훼손했다’는 말은 개소리다. 영화의 작가와 감독은 가능성이 엄청 높은, 그러니까 가장 있을 법한 사건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작품을 만든 것이고, 이는 타당한 해석이며 시비거리가 되지 못한다.

정말... 진정코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가 결혼을 했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별 씨잘데기 없는 일을 억지로 숨김으로써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까내리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교인들에게 충고하는 바이다.

독신은 비유대적이다. 독신을 강조한 것은 불교수행자와 엄청 타락해보기도 했던 아우구스티누스였다. 예수가 아니다.

피에쑤 : 젠장~ 오늘도 넘 길고 너절하다. 언제나 짧으면서도 샤프한 글을 써보나. 이 돌대가리 몰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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