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에르바흐와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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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러님의 칼럼입니다.

포에르바흐와 마르크스

몰러 0 2,206 2005.06.20 15:07
포에르바흐와 마르크스    
  
 
 
작성일: 2001/12/10
작성자: 몰러 



10년 전만 해도 금단의 영역인 마르크스주의... 주말부터 오늘까지 개론만 훑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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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르바흐와 마르크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마르크스주의는 유물론으로 돌아오는 주요한 한 부분이었다.
마르크스가 독일 관념론, 영국의 정치경제학, 그리고 프랑스의 합리주의에 의해 영향을 받은 복잡한 철학자라는 것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 헤겔주의의 후류들을 다시 살펴보자.

ㅇ 좌파 헤겔주의자 : 다비드 스트라우스, 청년 헤겔주의자들(포엘바하, 루게, 바우어), 마르크스와 엥겔스(유물론으로의 회귀)
ㅇ 정통 헤겔주의자 : 로젠크란츠(비판 없이 헤겔의 체계를 지속시킴), 로체, 지그바르트
ㅇ 우파 헤겔주의자 : 돕, 고셀(헤겔주의와 기독교를 조화시키고자 함)
ㅇ 이탈리아의 관념론 : 크로체, 겐타일
ㅇ 영국의 관념론 : 그린(신헤겔주의), 브래들리 맥타카트
ㅇ 낭만적 헤겔반대자 : 쇼펜하우어, 폰 하르트만(헤겔과 쇼펜하우어를 조화시키려고 함), 키에르케고르, 니체
ㅇ 마르부르크 학파 : 신 칸트주의 형이상학의 재생


우선, 헤겔의 사상에서 기독교적인 의미를 부정해 버린 청년 헤겔학파로부터 논의를 시작해 보자. 종교에 대한 헤겔 좌파의 비판에서 중요한 사항은 다비드 스트라우스의 "예수의 생애"(1835)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종교라는 것이 특정한 역사적 형태를 띤 신화 이상의 것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바우어는 이보다 더 나아갔으며, 포에르바흐는 더욱 더 나아가서, 헤겔적 이성의 추상적 요소들을 거부해 버리고 그것을 사회적 세계 안에서 구체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대체시켰다.

"기독교의 본질"에서 포에르바흐는 인간의 종(種)으로서의 생활에 관하여 논의했다. 그는 삶은 특별히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는데, 그 까닭은 인간이 자의식적인 사회생활을 포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포에르바흐는 헤겔을 땅으로 끌어내렸으며(추앙 받을 만한 철학이 아니라는 뜻) 마르크스는 헤겔을 거꾸로 세웠다. 둘 다 헤겔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포에르바흐는 인간에 대한 사회적 관계를 인간 이론의 기본원리로 삼음으로써 진정한 유물론과 실증과학의 기초를 세웠다고 마르크스는 평하였다. 또한 마르크스는 역사를 통한 인간정신의 발전이라는 헤겔의 개념은 분명히 대단한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거꾸로 보았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인간의 자아 창조를 과정으로서 파악했고, 노동의 특성을 파악했으며, 객체적 인간을 자기 자신의 노동의 결과로 보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칸트의 사상, 즉 이성적 인자와 연결되어 있다. 즉, 자유의지 안에서 실재에 의존하여 이해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인간 말이다.

여기서 헤겔 이후의 독일철학과 자신의 역할에 대한 마르크스의 강평은 다음과 같다.
헤겔의 절대적 영향하에 있는 독일철학은 사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그리스 철학과 닮았다. 그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전의 그리스 철학을 자신의 완벽한 체계에 이르는 일련의 접근과정으로 보았고, 헤겔도 이와 유사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철학은 사변적인 형이상학에서 윤리학으로 전환되었다. 철학은 실용성을 띠게 되었고, 실제 세계를 다루게 된 것이다. 그리고 프로이센의 아리스토텔레스인 헤겔 이후에 내가 한 일이 그런 것이다. 이전의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헤겔의 역사 변증법에 유물론의 기초를 제시하고자 한다. 즉, 헤겔의 정신을 자연과 일과 경제학에 대한 실제적인 이해로 대치하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헤겔의 이론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일종의 탁상공론이고 붕 떠있는 것이며, 마르크스 자신은 이것에 유물론이라는 유용성으로써 실제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지니도사님...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글의 덧글에 다셨던 내용과 비슷한가요?

빈민층 생활의 실상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해는 엥겔스가 맨체스터에 있는 직물공장에서 관리자로서 직접 경험한 내용에 의해서, 그리고 엥겔스의 저술인 "영국 노동계급의 제반 여건"에 의해서 깊어졌다. 1848년 혁명이 실패한 다음 마르크스는 런던으로 돌아와 여생을 거기에서 보냈다. 그와 그의 가족은 대부분 궁핍하게 생활했으며, 엥겔스로부터 지속적인 가불에 의해 약간 나아지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궁핍도 그로 하여금 연구와 저술을 중지시키지는 못했다. 런던에서 마르크스는 그의 위대한 종합의 끝부분을 마무리하였다. 이 일로 그는 경제학 분야에서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의 경제학적 관점의 엑기스만 살펴보자.

정치, 경제가 중요한 이유는 물질에 대한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의 전체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 전체에 대한 인간의 관계가 사회발전의 분석에 중심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경제적 동물이라는 사상은 생산양식이 역사의 결정적인 힘이라는 유물론의 저변을 이룬다. 유물론은 전체 환경 또는 자연은 인간 정신 외부에 있는 객관적 실재성을 지니고 있으나 인간 자신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역사의 변증법을 제공하는 것도 바로 인간과 자연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이다. 자연의 노동을 통해서 인간은 지식을 생산하는데, 그 지식은 거꾸로 발전의 양적, 질적 변화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것을 역사적으로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의식에는 세 가지 계기가 있다. 원시적 자아인식, 자아소외, 그리고 자아실현이 그것이다. 여기까지는 헤겔적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각 계기는 인간 자신이 자기 노동을 특정한 방법으로 규정하는 역사상의 특정한 단계에 상응하는 것이다. 첫 단계에서는 자연이 인간을 지배한다. 둘째 단계에서는 사유재산이 성숙하고 자연은 단지 인간을 위한 대상이 되어버린다(이것이 자본주의). 제 3단계에서는 사유재산은 사라지고 인간은 완전히 자아를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이것이 공산주의).
세분화하여 보면 역사는 획기적인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상이한 생산양식이 각 시기를 지배하였다.

원시공산주의 → 노예제 → 봉건체제 → 자본주의 → 궁극적이고 필연적인 공산주의

자본주의 하에서는 사유재산과 소외가 특징이 된다. 그리고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양극화가 심화된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계속 발전하였다는 것, 그리고 그의 전집(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금서목록에서 해제되지 않은 저작이 많다)에는 상당히 많은 사상이 들어 있는데 대부분의 그의 저작이 사후에 출판되었다는 것, 그래서 "이것이 마르크스가 말한 것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청년 마르크스와 노년 마르크스로 나누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를 엥겔스와 구분하기도 한다. 또 초기의 인도주의자로서의 마르크스를 후기릐 역사적 유물론자로서의 마르크스와 구분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도 1857년부터 1858년간에 쓰여진 "요강(要綱)"이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이 책은 1953년까지는 영어로 출판되지 않았었다. 왜 그런지는 아시지들?). 이 책에서 그는 리카도와 프루동을 뽑아내어 "자본론"이라는 위대한 저술을 실증하는 경제사상을 발전시키고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들은 뭔가를 알기는 했다. 그 성과는 상당하다고 인정한다. 아담 스미스는 산업화가 노동의 분리를 점점 더 첨예화시킨다고 보았다. 그리고 리카도는 처음으로 노동가치설을 제시함으로써, 상품의 교환가치가 단지 상품에 소비된 노동량에 의존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사유재산을 신성시하고 현상유지를 정당화하려고 하였다. 그들에겐 인간성이라는 것이 고정되어 있고 추상적인 것이었다. 자유방임의 시장경제가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게 바로 문제였던 것이다. 자유경쟁은 개인을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는다. 그것은 자본가들에게 노동자들을 착취하게 만들뿐이었다. 즉 자유라는 현상은 소외라는 실재성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노년의 프루동이 "재산은 절도다"라고 말했을 때 이런 점을 반쯤은 알고 있었는데 그걸 완벽하게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이다.


이 점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최대의 패착이다. 그들은 생물적인 진화뿐만 아니라 시스템과 패러다임도 진화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플라톤의 철인국가와 견주는 경우가 많이 있다. 거의 모든 관념을 초월한 철인(哲人)이 리드함으로써, 그리고 팔로워들이 리더를 철저히 추종함으로써 이룩되는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그 존재가 불가능하듯이 사유를 배제한 경제시스템은 인간을 더욱 더 크게 소외시킨다는 점을 알지 못한 것이다. 비록 이것이 결과론적이라 하여도 말이다. 자본주의는 약간의 수정(정책적 개입, 누진세율, 사회보장제도 등)을 통해 마르크스의 딴지를 사뿐히 뛰어넘은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가 지적한 소외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19세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리고 공산주의는 극히 일부에게만 자아실현의 욕구를 채워주었지만, 자본주의는 훨씬 많은 이에게 자아실현의 혜택을 주었으며, 거의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자아실현에 대한 도전의 여지를 남겼고, 최소한 착각이라도 하게 만들었다. 러시아가 아닌 영국이나 미국에서 혁명이 일어났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장한 자본주의 작동과 인간소외 일람표를 정리하고 딴죽거려 보자.

1. 모든 부는 노동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사유재산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의 노동 생산물을 흡수한 것이다.
노동 생산물을 흡수한 대가는 고려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이 대가를 점차 키워 나갔기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인정한 것처럼 노동 없이도 부는 창출될 수 있다. 비록 의미는 서로 다를지라도...

2. 자본주의 하에서는 부는 부를 창출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개인들간의 관계는 사물들간의 관계로 나타난다.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20세기 후반부터 그랬고 21세기에는 더더욱 그렇지 않은 경향이 짙어진다.

3. 노동 역시 자유교환이라고 가정된 상태에서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파는 사물, 즉 상품(노동력)으로서 나타난다.
공산주의는 이것을 확장하여 착취라는 용어로써 자본주의를 배척했지만 결과는? 게다가 공산주의 경제도 자본을 필요로 한다는 역설과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었을까?

4. 노동자는 생존하기 위해 일하고 자본가는 이익을 창출하기 위하여 일한다. 자본가만이 생산 수단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하지 않는다.
자본가가 더 등뼈 휘고 머리 빠지는 경우가 많다. 19세기 당시에도 말이다.

5. 노동자는 재생산 비용에 해당하는 가치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가치 이상을 생산하게 되는데 이것이 잉여가치이다. 자본가가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잉여가치에서이다. 그러므로 이익을 얻는 열쇠는 결국 추상적인 노동력으로부터 잉여가치를 빼내는데 있다.
요즘은 이 잉여가치를 자본가와 노동자가 나누어 갖는다. 법과 계약으로 정해놓고 말이다. 물론 그 분배비율은 천차만별이지만...

그래서 사유재산과 소외는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자유(시장터의 자유)를 창조하는 듯이 보이면서도 실은 인간을 사물이나 상품의 세계 안에 노예화시키는 체계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자본주의 실상을 한 체계로써 파악할 수 없는 상태로, 서로 물건처럼 되어버린다.. 그들은 자유롭다고 상상하면서 이념을 창조하고 자유라는 현상을 그들의 사상에 투영시킨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아니다. 그 반대로, 인간의 의식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적 존재이다.

또 결과론적이지만 과연 그럴까? 마르크스주의는 해방을 이유로 인간을 또 다른 방법으로 구속한 것이 아닌가? 아직도 마르크스의 망령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자본주의에 대한 안티는 유물론적인 공산주의가 아니다. 레닌과 엥겔스는 방법을 잘못 골랐고, 시기도 잘못 골랐으며, 장소도 잘못 골랐다. 잘 골랐더라도 잘 된다는 보장도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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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를 너무 단편적으로 살핀 감이 있지만 이제 그만하고, 딴소릴 좀 해보자.(휴지통행을 피하기 위하여 ^^)

이성희가 걸핏하면 씨부리는 빨X이. 그 이름으로 대표되는(적어도 한국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종교에 대한 적대감을 우린 단편적으로 또는 왜곡하여 인식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종교를 이용하였고, 종교도 자본주의를 이용하였지만, 공산주의는 종교를 배척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공산주의 자체의 문제점과 그로 인해 야기된 사망이 종교에 승리의 깃발을 안길 수 있을까? 진화론의 결함과 실수가 창조주의를 합리화하는 반증이 될 수 없듯이 공산주의와 유물론의 실패를 종교의 성공으로 볼 수 없으며 종교의 우월성을 반증하지 않는다. 공산주의는 어디까지나 경제논리로 출발하여 경제논리로 자멸한 것이다. 거기에 종교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는 정치화한 경제논리일 뿐 종교와는 전혀 다른 영역에 있다. 공산주의자, 유물론자가 종교를 아편으로 보았다고 해서 종교가 여기에 대응하여 승리했다고 씨부린다면 스스로 격을 낮추는 짓이다. 종교는 분명히 이상을 추구하는 도구이지 경제논리나 사회논리가 아니다. 그런데 스스로 격을 떨어뜨리고 그 영역을 이탈하는 종교가 있고, 또 그렇게 신자들을 인도하는 정신나간 성직자가 많다.

그런 이들에게 해주면 딱 좋은 말이 있다. 물론 우리도 완전히 동의하지 않지만 형이상학을 형이하학(^^)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인 것이다.

형이상학은 언어의 남용이다. 19세기의 헤겔적 주장은 휴가받은 철학이거나 산책나간 철학이다. 지금은 과학과 일상언어가 그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비트겐슈타인

개신교도들은 기독교와 신학을 휴가나 산책 정도가 아니라 아예 쓰레기 매립장으로 보내버렸다. 쓰레기장에 있으니 이젠 아예 쓰레기라고 치부해도 좋을 정도까지 타락시킨 것이다. 몇몇 사람이 다시 주워서 깨끗이 씻어서 써먹으려 하고 있지만, 그것은 누가 보아도 애처럽고 힘겨워 보인다. 차라리 카톨릭이나 몇몇 교파처럼 페인트칠이라도 새로 하면 보기나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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