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진실성보다 의미와 상징을 보라?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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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러님의 칼럼입니다.

역사적 진실성보다 의미와 상징을 보라? 글쎄...

몰러 0 1,426 2005.06.17 21:46

역사적 진실성보다 의미와 상징을 보라? 글쎄...


선지자의 말씀(예언)에 기름부음을 받은자, 즉, 메시아는 아브라함과 다윗에게서 나오게 되어있다고 하였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마태복음은 장황(?)하게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의 아버지인 요셉에 이르기까지의 씨(남자의 족보)를 나열하고 있다. 이 족보의 진위는 두 복음 이외에 아무런 사료가 없고, 그나마 누가복음과 일치하지 않는 점으로 인해 의심받고 있지만 여기서는 일단 마태복음의 기사가 맞다고 가정하자. 그리하여,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라고 소결론을 낼 수 있겠다. 문제는 뒤에 나오는 동정녀 수태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대민족은 이슬람 이상으로 부계중심적이다. 즉 남자의 씨로 잉태하지 않은 자식은 문자 그대로 여인의 자식일 뿐 남자의 자식은 아닌 것이다. 귀납적으로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 아니거나, 동정녀의 몸에서 난 것이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이며, 둘 다 취할 수는 없다.

* 구약에 나온 여인의 자식, 여인의 후손이라는 말이 예수가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한 것을 예언한 귀절이라고 우기는 개독들이 많고, 또 먹사들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구약을 찬찬히 살펴보면 '여인의 자식'이란 말은 자신이 사람의 자식이라는 고백으로써 야훼에 대해 상징적으로 겸손을 표현한 것이다. 나중에 채택되는 삼위일체 교리와 상치되지 않는가?

여기에서 [예수는 없다]의 저자를 위시한 자칭 '열린 신앙'을 가졌다는 교인(사실 개독들이 이 수준만 되어도 좋겠다)들은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족보가 나열되었고, 신성을 가진 분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동정녀 탄생의 설화를 차용했을 뿐이라 한다. 즉, 생물학적인 진리에 대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인성을 가지기는 했지만 여기에 구속되지 않고 신성으로써 인간적 부족함을 초월하였음을 믿는 것이 올바른 기독교관이라는 것이며, 마태복음의 기사가 역사적, 생물학적 사실로서가 아닌 상징의 의미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에 대한 기사로 인해서 예수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 기자나 초대 교인들의 신뢰와 확신이 그러한 이야기가 생겨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사실 반박이 매우 힘들어진다.

이제 이런 신관의 문제점을 보기로 하자. 미리 일러둘 것은 문자주의적 신관을 가진 개독들은 여기에 토(수정주의자, 범신론자로 매도하는 것)를 달 자격이 없다는 거다. 개독들을 이끄는 목사들은 바이블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란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원래 양심이 없는 인간이라 양(개독)을 계속 속이는 목사도 있고, 양심이 조금 있지만 개독들이 진실을 받아들일 여지가 없기에 이걸 말했다가는 개독들이 신앙을 버릴 우려가 크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목사도 있고, 두 경우 모두 결국 수입에 엄청난 차질이 생길 수 있기에 목사들은 이런 내용을 언급하지 않는다. (개독들에게 안티들이 말해줘봤자 귀를 닫았으니 소용없고, 목사들이 말하면 이를 들을 것이나, 다음은 회의를 느낄 것이고, 결국 이탈자가 속출할 것이다) 개독들은 안티들이 제기한 바이블의 자가당착적인 내용을 "목사님"께 조용히 여쭤보기 바란다.
하지만 결과는 별로 기대 안 한다. 어느 골빈 목사가 개독들에게 진실을 말하겠는가. 이명신 같은 허접논리로 개독들을 헷갈리게 해서 결국 '목사님 말씀이 진리'라는 생각만 더 깊게 할 뿐이다...

  * 결국 목회를 하지 않는 신학자들 대부분은 개독들에게 이단 내지는 변절자 취급을 받고 있다.

문제는 위에 언급한 대로 기독교가 그동안 혹세무민해 왔기에 이제 스스로 이를 바로잡을 역량을 이미 초과했다는 사실이다. 신자들이 열린 신앙을 가지기는커녕 신앙을 버릴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 것이다. 이제 와서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 아니다, 또는 동정녀에게서 나지 않았다는 말이 통할 것인가? 성경은 문자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비유와 상징을 음미해야 한다는 말로 이를 덮을 수 있을까? 바이블은 상징(象徵)과 실사(實史)의 한계가 모호하다. 열린 신앙이 이를 구별해 줄 수 있는가? 아직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다음 에피소드를 말씀드릴까 한다.

  수(Sue)는 딸을 가진 이혼녀이다. 그녀는 남편의 술주정과 학대를 견디다 못해 이혼소송을 했고, 그리고, 자녀 양육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딸에게 남자를 믿지 말라고 지속적으로 가르쳐왔다. 남자들이 싸우는 모습, 술 먹고 쓰러지거나 주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남자들이 일으킨 범죄뉴스를 녹화편집해 두었다가 보여주기도 하고, 심지어 옆집 남자아이를 부추겨 자기 딸을 괴롭히게 하고서는 우는 딸에게 남자는 다 그런 동물들이라는 말을 해주곤 했다. 이렇게 하여 딸은 지독한 남성혐오증을 가지고 성장했고 어느덧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딸은 남자아이들과는 벽을 쌓았고, 남자선생님이 담임이 되면 학교를 가지 않으려고 하는 등 좀처럼 남성 혐오증이 잦아들지 않았다.
그런데 15세가 되자 이 소녀에게도 사춘기라는 것이 찾아왔다. 그때 한 남학생이 그녀에게 호감을 보였는데, 그녀는 처음에는 쌀쌀맞게 대했다. 하지만 이 남학생은 소문난 학업우등생이고, 축구부(미식축구)에서 쿼터백(야구의 투수처럼 승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포지션)이었으며, 시쳇말로 빵빵한 집안에서 성장했고, 그 나이에 벌써 바이올린 연주솜씨는 주지사가 주최하는 콩쿨에서 입상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킹카 중의 킹가였는데, 게다가 사람이 진실되고 사려깊어 성인(聖人)에 다름 아니었다.
그녀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뿌리 깊은 남성에 대한 혐오와 눈앞에 다가온 남자의 이미지가 충돌한 것이다. 그녀는 엄마에게 고민을 말한다. 엄마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하면서... 수도 그 남학생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었는데, 그가 자기 딸에게 프로포즈했다는 말을 듣자, 마찬가지로 고민한다. 자기 딸과는 다른 의미의 고민을 말이다... 결국 그녀는 딸에게 남자가 다 나쁜 족속인 것만은 아니란 말을 한다. 딸은 여기서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엄마가 그 동안 거짓말을 해 왔다니... 결국 그 딸은 가출을 했다. 그리고 평생 엄마를 만나지 않았다. 엄마가 자기를 낳고 길러준 것, 둘이 산골 호수에서 수영했던 추억, 함께 홍연어 낚시를 하던 추억, 천둥소리에 놀라 깨어 엄마침대에 들어갔을때 그 아늑한 엄마의 품... 이런 것들을 모두 버린 것이다.

위의 사례를 보았을 때 수는 이혼 직후에는 일시적으로 남성혐오증을 가지고 이를 딸에게 이입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딸이 가치관을 형성하기 전에 그만두었어야 했다. 딸과의 단절은 그녀가 자초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열린 신앙'을 가진 목사나 신학자가 지금에 와서 상징, 의미라는 식으로 운운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필자가 평시 교인들에게 교리를 못 버리겠다면 열린 신앙이라도 가지라고 했지만,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실 먹혀들지 않았고, 전반적으로 보면 단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신앙의 발전이란 것은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오히려 개독들은 신앙의 발전을 이탈과 동일시한다.(말씀보존학회의 강아지들이 특히 심하다)
[예수는 없다]에서는 신앙관의 발전단계에서 일시적 이탈이 있을수도 있지만 결국 열린 신앙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복귀자들의 대부분은 복귀가 아닌 이상한 신앙(짬뽕신앙, 사이비, 더 심한 도그마 중 하나)을 가진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또 다른 독단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거다. 기독교에서 파생된 소위 마귀/이단으로 터부시되는 무리들, 즉 라엘리안, 여호와의 증인, 통일교, 말일성도회 등과 같은 부류/종교는 기성교리의 약점, 헛점 중 일부를 해결하고 이를 집중 광고함으로써 그 세를 강화하려 하고 있는데, 이들은 사실 인류에게 더 큰 해악을 끼친다. 단지 아직 그 세력이 약해서 해악이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근본이 이미 틀려먹은 것을 아무리 예쁘게 포장해봤자 불량품이긴 마찬가지다. '열린 신앙'을 가졌다는 사람들은 이를 아는지 포장(새로운 종파 형성)을 하지 않는 대신, 제품을 고쳐(성경 재해석)쓰려고 한다. 하지만, 기독교는 완전한 수리가 불가능한 제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여기에 부합되는 비유를 살펴보자. 누가 한 말인지는 필자도 기억 못한다.

인용 시작 -----
우리 집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여기에는 필수, 필요, 불필요한 것들이 있다. 먹는 것, 입는 것에 관련된 없어서는 안되는 것들은 '필수'요, 없어도 살아갈 수는 있지만 불편하고, 있으면 불편함을 덜어주는 것이 '필요'요, 있으면 짐만 되는 것이 '불필요'한 것이다.
----- 인용 끝

언뜻 여러분은 기독교가 무신론자에게는 불필요한 것이고, 보통사람에게는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것이고, 교인들에게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해석할 것이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보면 기독교는 고장난 온돌침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고장났다는 근거는 너무나도 자주 나타나는 이상현상으로 알 수 있다.
가격(헌금, 시간 투자, 선교/전도활동 노력)은 엄청난데, 이게 원래 전자파검사도 받지 않은(바이블의 허구성) 제품인데다 지금은 고장(기독교 범죄)까지 났기 때문에 한숨 자고 나면 얼굴이 붓고 온몸이 찌뿌드드하다. 게다가 이것은 환불도 안되고, A/S도 안되는 피라밋판매 제품이다.

이 상황에서 아주 멍청한 이는 몸이 축나는 것도 모르고 자기만족에 빠져서 동네사람들에게 고급침대랍시고 자랑하고, 또 침대를 구입하라고 강권한다(개독). 조금 멍청한 이는 침대가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고쳐보려고 노력하며, 안 되면 기술자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구입자들에게 열심히 제품의 문제를 알리고 고칠 것을 권한다. 하지만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절대 모른다('열린' 신앙자).
조금 똑똑한 이는 침대를 산 것을 후회하고 폐기처분한다(이탈자). 조금 더 똑똑한 이는 판매자를 소비자보호원에 고발하고 환불받으려고 노력하며, 안되면 불매운동을 한다(안티, 몰러).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제일 똑똑한 사람은 3일간 테스트해보고 마음에 들면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하고서는 결국 문제점을 눈치채고 반품해버리는 사람이 아닐까(안티 or 무관심)?
그리고, 똑똑한지 멍청한지는 알 수 없지만 피해자가 불매운동 하는 것을 보고 저 침대가 문제가 있구나 하고 안 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불매운동자들의 주장을 들어보고 침대의 문제점을 간파한 다음 불매운동에 합류하는 사람이 있다.
또 한 부류는 자칭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으로 침대의 온도조절기만 고쳐 놓고서는 다 고쳤다고 생각하고, 유해전자파를 담뿍 받으면서 그 침대를 사용하는 사람이다(여호와의 증인).

옆길(안티와 개독 분류)로 샌 감이 있지만, 결론은 기독교는 불량품이며, 보상도 안 되는 최악의 제품과 같다는 것이다.

어느 한 분(본인은 알겁니다)에게... 사실을 직시하고, 불량침대(기독교)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고 조속히 버릴 것을 권한다. 이왕이면 불매운동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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