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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택도 없는 말씀...
몰러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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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3
2005.06.20 18:45
Re: 택도 없는 말씀...
작성일: 2002/10/27
작성자: 몰러
: 여러 안티 분들 저는 목사임니다.
: 안티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별로 목사 같아 보이지는 않네요. 뭐 그렇다고 칩시다. 일반 교인들과는 좀 다른 듯한 주장을 하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 저두 어릴때 부터 교회 다니구 신학까지 해서 지금 목사하고 있지만
: 솔직히 과학쪽에도 관심이 많아서 그쪽 공부도 했고, 신학과 접목 시켜
: 볼려고 노력두 많이 했습니다.
과학과 신학을 접목하는 것은 헛짓이라고 이미 1000년 전부터 가르침이 있어왔는데 신학교에서는 그걸 1학년 때 가르치지 않나요? 제가 목사가 아닌 것 같다고 한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
: 하지만 머리가 커갈수록 기독교에 대한 회의가 많이 생기는건 사실입니다. 역사를 공부하고 여러 종교들을 알아보고 ... 솔직히 지금은
: 설교를 하고 있으면서도 성경이 진리라는 믿음이 없습니다.
역사를 공부했다고 하지만 어떤 역사를 공부했는지 의문입니다. 여러 종교를 알아보았다고 하지만 역시 제대로 공부한 것 같지는 않구요. 성경이 진리라는 믿음이 없다고 하신 것은 단순히 문자주의에서 벗어났다고 자부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 하지만 모든 종교의 최종 목적은 같습니다.
: 따지고 보면 모든 종교의 최종적인 목적은 똑같습니다. 윤리 강령도 보면 모든종교가 거의 흡사합니다.
: 사실 종교가 없다면 역사적으로 전쟁도 그리 많치 않았을 겁니다.
최종목적이 다 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중동의 사막에서 생긴 종교는 최종목적이 심판에서의 회피, 즉 구원일 뿐입니다. 다른 종교랑 같은 레벨에서 놀겠다고 깝쭉대지 말기를... 종교가 윤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종교가 윤리를 베낀 것일 뿐입니다. 종교는 어떤 면에서는 윤리를 부정하구요. 특히 기독교는 말입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관련된 전쟁을 제외하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의 10%에 불과한 전쟁사를 우리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있을 것입니다.
: 과거는 과거고 지금 21세기에 와서는 종교를 이용해서 보다 좋은 사화를
: 만들수도 있지 않을까요. 무엇을 믿든 절대자의 말은 가장큰 신뢰와
: 명령이 됩니다. 지금시대에 와서 십자군이니 노예 제도니 하는거 따지는거 보다 과거는 잊고 미래를 위해 종교가 해야 할일이 있지 않겟습니까?
과거는 과거라... 그러고 싶죠. 하지만 기독교가 멸절되지 않는 한은 과거의 불행은 계속 되풀이될 뿐입니다. 지금 현재도 기독교의 이름으로 불행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절대자가 뭘 했죠? 도대체 뭘 했냐구요. 지금까지 해온 삑싸리만으로도 그 넘의 절대자는 똥침맞을 일이 억겁인데, 죽은 자식 고추만지는 것도 아니고... 신뢰는 무신 얼어죽을 신뢰고, 명령은 무신 개뼉따귀여?
: 어짜피 이 세상에서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다 하더라도 종교는 어떤 행태로든 존재할수 박에 없습니다.
: 요즘은 사실 모든 종교들이 기업화 되 가는게 사실이지만
: 저는 종교를 이용해 보다 나은 사화를 만들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비판이나 올고 그름을 예기하기 보다는 우리의, 모든 종교의 최종 목적인 보다 나은 사회 모든 사람들이 웃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독교인도
: 비 기독교인도 노력합시다.
네. 종교나 미신은 어떤 형태로든 생기겠죠.
다시 말하지만 기독교라는 종교의 최종목적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사회,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기독교는 멸절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가 나름대로 순수했던 시기는 힘이 없을 때 뿐이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자는 것은 결과적으로 기독교의 패악을 그냥 두고 보자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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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정리해서 비판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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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의 말씀이 예수를 위대하게 보이게 하고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로 보이게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사람들이 산상수훈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를 사랑의 절정으로 보는 것이지, 위대한 예수가 말했다고 해서 산상수훈이 위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리하여 말하면, 신학에 근거한 윤리가 아닌 윤리에 근거한 신학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신학이 최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기독교의 방식이며, 이처럼 추악한 착각은 없다.
산상수훈을 비롯하여 복음서 대부분의 도덕/사랑론 중에 예수의 창작품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표절이라도 좋은 것은 취하는 것이 좋을 것이나 표절자를 위대하게 봐줄 이유는 하나도 없다. 예수가 표절자가 아니라 해도 예수를 전적으로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 예수(종교)가 아니라도 도덕과 윤리는 얼마든지 성립되기 때문이다.
좋은 세상이란 지식과 온정이 함께 용기의 지원을 받는 세상이다.
예수가 말하는 도덕은 노예의 도덕일 뿐이다. 예수가 믿었던 지옥과 영원한 형벌은 노예를 독려하는 채찍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종교의 좋은 면이 도덕을 정립시킨다는 믿음은 단지 믿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