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은 바이블이란 것으로 불교의 선문답과는 다른 차원으로 그 차원이란 것이 아주 뜨악한 방법으로 어떠한 기독논리비판(이렇게 부르는 것은 사실 논리에 대한 모독이지만)에도 천연덕스럽게 대응할 문구를 찾아낼 수 있다. 심지어 바이블 안에서 서로 상충(모순)되는 문구를 필요에 따라 교대로 제시하기도 한다. 또, 그것을 지적하면 기독교인들은 "잘은 모르지만 뭔가 다른 뜻이 있어서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어떤 문구가 여러가지로 해석되는 것이 심각하다. 같은 문구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기독교 내부적인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내부적인 일이 아닌 경우도 많다. 해석의 차이가 생겼을 때 그 영향은 항상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렀다. (지금도 종교분쟁/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와 관계없는 사람들의 삶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게다가 그 분쟁은 해결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은 전쟁에 지쳐서, 그리고 상대방을 멸절시킬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휴전한 것일 뿐이다.
씨.바! 니.들.끼.리 싸.워!!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정말 중요한 것은 간과하고 씨잘데 없는 것만 주장하고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원죄에 대한 증명이 사실상 바이블에는 없다는 것이다. 원죄가 없는데 죄사함은 무엇이고, 회개는 무엇이며, 구원은 또 뭐란 말인가?
기독교인들은 내가 서두에 말한대로 얼마든지 답변할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구원보다는 사랑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바이블은 창조와 대속과 심판과 구원이라는 시나리오가 일관성있게(유일한 일관성이다) 전개되어 있다. 원죄는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대속, 심판, 구원의 전제가 필요하였기에 형성된 교리이다. (그렇다고 내가 유대인들의 신관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