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와 키에르케고르
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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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0 15:06
쇼펜하우어와 키에르케고르
작성일: 2001/12/07
작성자: 몰러
헤겔을 쩜쪄 먹은 쇼펜하우어와 키에르케고르
전에 올린 헤겔을 참조하신 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걍고고야. 짜잘한 철학자들의 말장난이니깐 읽지도 말고 덧글도 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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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전에 헤겔의 추종자들 또는 아류들, 그리고 그의 영향을 받은 철학사조를 훑어보자.
우선 헤겔에게 영향을 준 철학은 칸트, 피히테, 그리고 셀링이었다.
ㅇ 칸트 : 휴지통의 옛글 참조바람
ㅇ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 칸트철학은 본질은 주체 또는 자아가 탐구의 근본적인 문제라는 점이라고 주장. 실천적 인식에 대한 칸트의 사상을 이처럼 해석한 것은 분명히 칸트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임. 그는 물자체의 존재를 부인하고, 세계는 다만 일종의 거대한 주체인 절대자아일 뿐이라고 함. 이런 사상은 나중에 헤겔과 독일 민족주의자들에게 적극 수용됨
ㅇ 프리드리히 폰 셀링 : 그는 독일의 낭만주의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으며, 칸트의 비판철학을 예술에 상당한 중요성을 부여하면서 결합시키고자 하였음. 그는 저서 "선험적 관념론 체계"에서는 피히테의 사상을 따르고 있었으나, 곧 피히테의 사상에 식상함.
헤겔의 사상은 다른 철학자들에 비해 엄청나고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크게 나누면 좌파, 정통, 우파 헤겔주의자가 있고, 이탈리아와 영국에 관념론을 태동시켰으며, 후에 본문에서 다룰 낭만적 반동주의자들도 나왔다.
ㅇ 좌파 헤겔주의자 : 다비드 스트라우스, 청년 헤겔주의자들(포엘바하, 루게, 바우어), 마르크스와 엥겔스(유물론으로의 회귀)
ㅇ 정통 헤겔주의자 : 로젠크란츠(비판 없이 헤겔의 체계를 지속시킴), 로체, 지그바르트
ㅇ 우파 헤겔주의자 : 돕, 고셀(헤겔주의와 기독교를 조화시키고자 함.적어도 몰러가 보기엔 택도 없는 짓이었지만, 이명신 강도사는 포기하지 않는다.)
ㅇ 이탈리아의 관념론 : 크로체, 겐타일
ㅇ 영국의 관념론 : 신헤겔주의(그린), 브래들리 맥타카트
ㅇ 낭만적 헤겔반대자 : 쇼펜하우어, 폰 하르트만(헤겔과 쇼펜하우어를 조화시키려고 했지만 글쎄...), 키에르케고르, 니체
ㅇ 마르부르크 학파 : 신 칸트주의 형이상학의 재생
헤겔은 인간과 자연, 우주의 비밀을 드러낸다고 주장하면서 방대하고 복합적인 체계를 구성한 19세기 초기의 철학자 중 으뜸이었다.(우웨 ~) 헤겔의 관념론은 이러한 체계의 시대에 독일은 물론 많은 유럽 사상을 지배하였다. 이상하게도 헤겔과 그의 추종자들은 그들의 거대한 체계와 당시 세계의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사회적, 경제적 변동간에 실제적으로 전혀 연관짓지 않았다.(마르크스가 헤겔에 대해 딴죽거는 부분이다) 청년 헤겔학파 사람들이 헤겔을 대중화하려고 한 반면에, 쇼펜하우어는 헤겔이 주장했던 것을 모두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헤겔은 멍청하기 이를 데 없고 희안한 허풍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우와 ~~~)
그는 독일 관념론 흐름 전체의 절대적인 반정립(관념론 자체에 대한 반대)으로서 등장하였다. 그는 거대한 체계를 싫어했으며, 단일한 사상을 오히려 선호하였다. 또한 그는 상아탑적인 철학을 거부하였다.
그의 통렬한 비난 문장인 "대학철학론"은 아직도 읽어볼 만 하다고 하던데, 서점에는 구하기 힘들다. 대학도서관에 가면 있을까? 사실 돈주고 사기엔 안 내키고...
그는 헤겔주의자들의 형이상학, 종교철학, 그리고 독일 민족주의를 공격하였다. 무신론자로 자칭하면서 그는 계몽주의, 특히 볼테르를 다시 살펴보았다.
베를린에서 대학 강사로서 잠깐 재직하는 동안에 그는 주저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처음에는 거의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쇼펜하우어는 칸트로부터 출발하여, "물자체는 의지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이 철학에 끼친 그의 독특한 공헌이다. 아는 바와 같이, 칸트는 현상세계와 그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 물자체의 세계를 구별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의지의 작용을 통해서 현상세계를 안다고 쇼펜하우어는 주장한다.
육체는 그 실재성이 의지에 머무는 한 현상이며, 육체의 직접적인 앎을 통하여 우리는 의지를 안다.
이렇게 주장한 다음에 그는 다음과 같은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다.
ㅇ 의지가 근본적인 것이다. 이성과 감각은 의지로부터 따라나온다.
ㅇ 개별적인 의지는 사실은 단 하나인 보편 의지에 불과하다.
ㅇ 이러한 보편 의지는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악이다. -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 된다.
ㅇ 의지의 부정을 통해서, 즉 자비·청빈·사랑·금식을 통해서 인간은 지혜를 성취할 수 있다.
"마치 우리가 비누 방울을 될 수 있는 한 오래 그리고 크게 불듯이 우리는 쓸데없는 목적을 추구하지요. 그게 곧 터져 버릴 것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말이오."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쇼펜하우어도 이론과 실제간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그는 잘 먹고 마셨으며, 여자를 희롱하기도 했고, 무례한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탐욕스럽게 굴 때도 있었다. 나이 많은 침모를 계단 아래로 밀어서 심하게 다치게 한 적도 있었다. 그의 여성론은 다음과 같은 점을 주장하고 있다.
"여자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큰 일을 하게 되어 있지 않음을 알려면 여자가 생겨먹은 모습을 그저 쳐다보기만 하면 된다"
이 점이 와따구유 씨! 에이 ~ (YWCA) 아줌마들이 쇼펜하우어에 대해 게거품 물고 덤비는 이유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루소가 주장했던 것처럼 그도 시대의 흐름과 사조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여성에 대해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자가 생겨먹은 모습이란 것이 당시의 사고방식 즉, "여자가 배워서 뭘 하냐? 춤 잘 추고, 몸매 빵빵하고, 애만 잘 낳으면 되지"라는 보편의지(?)에 함몰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의지가 최고라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은 니체, 베르그송, 제임스, 듀이와 같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철학 이외의 분야에서는 바그너와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프로이트를 포함한 많은 낭만주의적 예술가와 신비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의 기독교와 성경에 대한 시각을 살펴보자.(이거 언급하지 않으면 휴지통으로 가야할 글이니깐. ㅋㅋㅋ)
"아! 내 마음을 붙들고 늘어지던 유대인의 미신을 이렇게 깨끗이 씻어주다니..."
우파니샤드를 읽고 이렇게 탄성을 내지른 쇼펜하우어는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라는 말만 듣고 자랐기에 동양의 성선설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는 평소 자신의 시각이 범인의 그것을 초월했다고 생각해오다가, 기독교 안에서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해 왔다는 것과 함께 그런 시각의 한계를 문득 깨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참조했던 볼테르처럼 극단적인 기독교 반대 활동은 하지 않았다. 누구처럼 "반대는 않겠지만 믿지도 않겠다"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의 종교관은 불교나 힌두교와 많이 통한다.
다음은 개독 먹사들이 자주 인용하는 키에르케고르다. 하지만 그의 철학의 진수를 안다면 섣불리 언급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순두부 신자들에게는 먹혀들겠지만...
철학적으로 어수선하고 웅성거렸던 19세기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헤겔과 반헤겔이라는 발로, 또는 관념론과 유물론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덴마크의 사제인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범주 그 어디에고 집어넣기가 어렵다. 어떤 면에서 그는 실존주의의 할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기는 하나 사실상 19세기에는 소속되지 않는다.
그는 냉소적인 측면과 심오한 신앙적 사상가의 측면이 교차하면서 나타났던, 매우 기이한 인물이었는데, 젊은 시절(42살)에 죽고 말았다.(키에르케고르를 정리하면서 소사 신부가 자꾸 연상되는 것은 왜일까?) 키에르케고르의 주된 공격목표는 헤겔과 헤겔의 추상적인, 일체를 보편화하려는 체계였다.
존재는 개별자와 연관된 범주다. 보편 관념과 연결된 것이 아니고 말이다.(뭔 소리여?)
키에르케고르에게는 헤겔이 모든 실재를 그의 변증법적 실재적 존재라는 그물로 붙잡아서 그 구멍에 잡아넣으려고 한 것으로 비쳤다.(아항~ 이 말이었구나) 키에르케고르로서는 철학은 개별자로부터 출발하여 개체로 끝나는 것이어야 했다. 개별자는 행동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존재라고 하였고, 진리는 공리나 체계가 아니라 주체성인 것이며 가장 열정적인 내부성찰의 어떤 사용과정에서 재빨리 취하게 되는 객관적 불확실성(?)이라고 하였다.
아주 기이하게도 키에르케고르는 평생동안 기독교인으로 남아있었으며, 또한 위트가 있고 명석했으며 작가와 비평가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윤리학에 대한 깊은 관심과 타인을 향한 연민이라는 사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약혼자를 향해서는 아주 냉정하게 행동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철학적 작업이 결혼보다 더 중요하다고 공공연히 선포하였으며, 결국 약혼은 파기되고 말았다. "인생 여정의 단계"에서 그는 여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여자는 농담의 차원에서만 올바르게 해석될 수 있다.
(헐~ 남자도 그렇고, 개독도 그렇고, 걍고고도 그렇던데... 여자에 한해서 저렇게 말한 것은 위의 쇼펜하우어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 솔직히 여성들에게 몰매 안 맞을려구 변명하는 겁니다 ^^)
키에르케고르는 헤겔의 추상적 관념론을 거부하고 생동감 있는 철학을 신봉하였다.(인생은 뒤돌아서 생각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은 전진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가 주장한 신, 영원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그의 사상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개인은 기지와 관능의 세계를 탐구한다(돈 후앙이 대표적이지. 몰러는 카사노바가 더 좋지만 말야. 어쨋거나 이것만으론 불충분하다.). 하지만 인간은 도덕적 책임을 지닌 세계를 탐구해야 한다(소크라테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부족하지...). 많은 노고와 공포 등등을 거친 다음에 인간은 주체성의 본질, 즉 일종의 합리적인 자살(?)이나 신앙의 도약이라는 상태에 이름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영원성에 내던진다.
(피에쑤)
키에르케고르를 언급하기 전에 개독들에게 그를 섣불리 인용하거나 언급하지 말라고 하였다. 물론 개독들은 위험, 참화, 전쟁, 질병, 공포와 함께 모든 노고를 거쳐서 구원(영원성)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노고와 공포는 개독들의 마스터베이션과는 다르다. 아니 오히려 개독들은 아주 간편하게도 무조건적인 믿음과 기도, 지옥/악마에 대한 공포만 경험(물론 실질적인 공포경험도 아니구)하고서는 영원성에 도달하겠다고 덤비는 공짜심리에 물들어 있으며, 또한 먹사들이 그렇게 유도하고 있다. 신학대에서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는 키에르케고르... 에혀~(누구의 탄식이더라? ㅋㅋㅋ)
안티 제위분들은 키에르케고르를 가지구 삽소리 하는 먹사를 보거덩 위에서처럼 살포시, 그러나 깊게 떵침 찌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