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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글거림을 무릅쓰고 개독 칼럼/간증 디비기(2)
몰러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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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
2005.06.20 17:17
니글거림을 무릅쓰고 개독 칼럼/간증 디비기(2)
작성일: 2002/07/11
작성자: 몰러
ㅇ 혀로 읽는 성경
미국의 어떤 성도가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여 바위를 폭파시키다가 잘못하여 불행하게도 양손과 양눈을 읽고 말았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성경을 읽기 원했다. 그러나 성경을 잡을 수도 없었고 잡았다고 할지라도 눈이 실명되어 볼 수도 없었다. 그래도 어찌나 성경이 보고 싶었던지 그는 궁리 끝에 혀로 점자 읽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성경을 읽게 되는데 혀는 너무 약하고 여려서 오랫동안 읽으면 피가 흘러나와 고통스러웠지만 계속하여 기쁨으로 성경을 읽었다고 한다.
성경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모한다면 시간과 육신의 장애가 문제가 아니다.
어디서 이런 거짓말을 잘도 가져다가 읊어대는지...
왜 거짓말이라고 단정하냐고? 멀쩡한 귀는 뒀다가 뭐하는지 모르겠단 말이다. 뭐 내용엔 안 나왔지만 양귀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는 있다. 그럼,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이 불운한 사람이 성경을 읽겠다고 뺑이치는 행위가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상태라도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 보여줄 뿐이지 반드시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몰러가 괜한 트집 잡는다고 생각하나? 물론 몰러도 이딴 식으로 트집잡기는 싫다. 하지만 말이다. 니들 하는 짓거리가 모두 이런 식이라서 문제란 말이다.
ㅇ 흙과 씨앗
오늘날 교회도 많고 성도도 많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 또한 많이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사랑이 가장 풍성해야 할 곳에 반목과 질투로 인한 상처가 얼룩져 있는 경우도 있다. 이는 자라온 환경과 성격, 신앙의 정도가 다른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의 평안과 하나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길밖에 없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성도간에 서로 하나 되기를 원하신다.
씨앗은 흙과 하나 되고, 가지는 줄기와 하나 될 때 싹을 내고 열매를 맺는다. 밀알이 땅에 떨어지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껍질을 벗고 씨눈에서 싹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흙과 하나 될 때 가능하다. 흙이 그 뿌리를 감싸주고 수분과 양분을 공급해 줄 때 힘차게 지표면을 향해 뻗어간다. 그래서 결국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주인의 마음을 흡족케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맺는 비결 역시 서로가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고 감싸줄 때 가능하다. 교회 안에서 때로는 씨앗으로, 때로는 흙과 같은 모습으로 서로를 감싸주는 성도가 되자.
말도 많고 탈도 많은지 인식하구는 있구만...
쭉정이를 심고 아무리 양분을 공급해봐라. 니들의 문제는 서로가 쭉정이라고 우기는데 있다. 3자가 보기엔 그놈이 그놈이구만... 옛날 어머니들의 말씀을 되새겨 보라.
“야야. 사람 마이 꼬이는데는 가지 말거래이.”
교회를 덩치만 키우려고 하지 말고, 영적으로 키워 봐라. 신도가 많다고 해서 그것이 은혜 받은 교회라는 증거는 될 수 없다. 목사의 카리스마로 유지되는 대형 교회. 그 목사가 죽거나 은퇴하면 항상 문제가 생기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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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뭔소릴 하는겨? 교회... 걍 홀랑 타버려야 맞지...
ㅇ 짚으로 만드는 줄다리기 줄
벼를 수확할 때 그 이삭을 떨어내고 나면 짚이 남는다. 이 짚은 고린도전서 3:12 에서 불에 제일 먼저 탈 재료의 대명사로 기록될 만큼 볼품없고 가치 없는 재료이다. 그러나 이 짚은 혼자 있을 땐 힘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또 다른 짚들과 어우러지면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힘을 발휘한다. 그 본보기가 줄다리기 줄이다. 이 줄다리기 줄은 수많은 장정들이 매달리고 서로 잡아당겨도 끄떡하지 않는다. 이 튼튼한 줄이 하찮고 힘없는 짚에서 나올 줄이야!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 4:12)
니들만 줄다리기 줄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짚이 그렇게도 많건만 니들만 줄다리기 하냐? 오히려 모두 오른쪽으로 꼬는데 니들만 삐딱하게 왼쪽으로 꼬고 있지 않냔 말이다.
그리고, 줄다리기 줄은 기름도 바르고 그늘에 보관하고 해야 한다. 니들이 하는 짓거린 줄다리기 줄을 햇볕에 방치하는 꼴이다. 다음 번에 그 줄을 당기면 걍 끊어진다. 다 삭아서 말이다.
ㅇ 갈대와 올리브나무
하루는 갈대와 올리브나무가 서로 자랑하며 상대를 헐뜯고 있었다. 올리브나무는 갈대를 향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흔들리는 줏대없는 식물이라고 놀려댔다. 기가 죽은 갈대는 말없이 고개만 떨구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폭풍이 불어 왔다. 갈대는 역시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움직여갔다. 그러나 뻣뻣이 고개를 든 채 버티던 올리브나무는 그만 허리가 잘려 나가고 말았다. 바람에 순종하는 것이 결코 비굴한 게 아니라 자기를 살게 하는 지혜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 말씀대로 겸손히 살아가는 삶은 결코 미련함이 아니라 세상을 승리하는 지혜이다.
어느 목사가 안티들을 두고 비유로 설교했던 내용이다. 재작년에 딸래미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다가 받은 찌라시(주보)에 들어 있던 내용이다. 이거 읽고 기독도들의 링클프리함에 한참을 웃었다.
말씀 = 야훼 = 바람 = 나쁜 것
갈대=거름으로도 쓸 수 없는 것=기독도
올리브=유익한 것=안티=나쁜 바람(야훼)한테 개기다가 골로 가는 것
이솝우화 함부로 써먹으려다 조땐 케이스 되겠다.
ㅇ 김익두 목사와 앉은뱅이
황해도 두라면에 한 시내가 있는데 그 다리 앞에선 언제나 앉은뱅이가 구걸을 하고 있었다. 김 목사는 베드로와 앉은뱅이 사건이 생각이 나서 마침 잘되었다 싶어 사람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그 앉은뱅이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를 향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그 앉은뱅이를 잡아당겼다. 원래 힘이 센 김익두 목사인지라 그 손에 이끌려 앉은뱅이가 번쩍 들어올려졌다. 앉은뱅이가 낫는가 싶어 흥분하는 순간 앉은뱅이는 땅에 나가떨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나 죽는다고 소리치는 앉은뱅이를 보고 자신의 믿음 없음을 한탄한 김 목사는 그날 이후로 철저히 회개하고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한국 교회에 큰 획을 긋는 신유의 종이 되었다. 능력과 은사는 남을 흉내낸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얼마만큼 의지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도대체 여기저기 널린 부흥회랑 금식기도원은 다 뭐지? 이런 곳에 대고 회개하라고 해라. 되도 않는게 안티에게 엉기지 말고...
웃기는 것은 이 찌라시를 돌렸던 교회가 전국에 최소한 5군데 이상 기도원과 수련원을 갖고 있는데, 이들이 길거리에 내건 플래카드나 길가는 사람에게 앵기는 찌라시를 보면 모두 치유은사를 강조하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