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예수가 숨을 거두던 순간에 대한 고찰
몰러
일반
0
2,619
2005.06.20 17:02
예수가 숨을 거두던 순간에 대한 고찰
작성일: 2002/06/18
작성자: 몰러
예수가 숨을 거두는 장면을 모아 봤습니다.
바이블 알러지 있는 분은 퍼런 색깔을 건너 뛰고 읽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결국 읽게 되실껄요. ^^
---------------------------------------------------------------
그러자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스펀지 비스무리한 것)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셔, 갈대에 꿰어서, 그에게 마시게 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하여 주나 두고 봅시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그때에 성전휘장이 찢어짐) 마27:48-50
어떤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을 신 포도주에 푹 적셔서 갈대에 꿰어, 그에게 마시게 하며 말하기를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주나 두고 봅시다” 하였다. 예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서 숨지셨다.(그때에 성전휘장이 찢어짐) 막15:36-37
군인들도 예수를 조롱하였는데, 그들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신 포도주를 들이대면서 말하기를 “네가 유대인의 왕이거든, 너나 구원하여 보아라” 하였다. (한 죄수는 예수를 모독하고, 다른 죄수는 예수로부터 축복 받음. 몇 시간이 지난 후 성전의 휘장이 찢어짐) 예수께서는 큰 소리로 부르짖으시고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예수께서는 숨을 거두셨다. 눅36-46
그 뒤에 예수께서는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시고, 성경 말씀을 이루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에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해면을 그 신 포도주에 듬뿍 적셔서, 히솝 풀 대에다가 꿰어 예수의 입에 대었다. 예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시고 “다 이루었다” 하고 말씀하신 뒤에, 머리를 떨어뜨리시고 숨을 거두셨다.(성전휘장에 대한 언급 없음) 요19:28-30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4복음서에는 예수의 임종 순간이 각각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니 엄청난 차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공통점이라고는 신 포도주를 예수에게 먹였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먼저 예수에게 신 포도주를 먹인 사람과 예수를 조롱한 사람에 대한 진술이 일관성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예수를 조롱한 이유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마태서와 마가서에서는 인용한 내용 직전에 예수가 뚱딴지 같이 “엘리 엘리 레마 사박다니”라고 외친 것에 대하여 예수가 엘리야를 호출했다고 사람들이 착각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누가서와 요한서에서는 전혀 그런 이야기가 없다.
성전휘장에 대한 언급도 마태서와 마가서만 일치할 뿐 죽은 뒤에 찢어지거나 아예 언급이 없는 등 3가지 진술로 나뉜다. 예수가 마지막으로 한 말도 일관성이 없다.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았을 예수 사형 장면에 대한 진술이 이렇게 차이가 있음에도 성경이 무오하다고 우기는 넘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런 세세한 장면의 차이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 될 텐데도 성경 말씀은 모두가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바락바락 우긴다.
성경무오설을 까대려고 들춰본 것이 아니므로 서술 상의 차이점은 이만 논하기로 한다. 몰러의 관심사는 신 포도주에 대한 것이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4복음서가 가진 예수 사망 순간의 공통된 코드는 신 포도주이기 때문이다. 왜 신 포도주인가?
누누이 강조했지만 4복음서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은 요한서이다(시사하는 것이 많다는 것이지 요한서가 가장 사실적이라고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쩌면 가장 사실적인 기록일 가능성이 높다). 이번 경우에도 요한서에는 다른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 있다. 요19:28에 보면 성경 말씀을 이루려고 “목 마르다”라고 예수가 말한다. 인용된 성경 말씀은 시편 69:21이다.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그들은 나에게 독약을 주고,
목이 말라 마실 것을 달라고 하면 나에게 식초를 내주었습니다.
과연 “신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식초와 포도주는 엄연히 다르지 않느냐고 따졌더니 목사들은 신 것을 주었다는 공통점만 맞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몰러는 이렇게 답했다.
예수가 입덧 했슈? 아니면 연탄가스 먹었슈?
시편69장을 모두 읽어보면 예수의 타는 목마름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다. 특히 21절 이후의 내용은 저주로 가득 차 있다. 예수쟁이들의 주장은 결국 예수를 사랑과는 거리가 먼 저주쟁이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예수를 신의 아들은 고사하고 성현의 위치에서조차 까내리는 것은 바로 예수쟁이들이다. 무지는 신앙의 어머니면서 또한 무지는 신앙의 원수이기도 한 아이러니가 발생할 수 있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이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예수쟁이들은 요19:28에 시69:21을 링크시킨 것을 삭제하라고 대한성서공회에 전화질하기 바란다.
아까 농담으로 입덧 운운했지만 “신” 음식은 민간에서 각성제로 사용된다. 얼마 안 된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는 연탄가스에 살짝 중독된 사람들에게 신 김치나 동치미 냄새를 맡게 하거나 국물을 마시게 했다. 서양에서도 신 포도주를 일사병으로 쓰러진 사람에게 먹였다는 기록이 있다. 식초도 마찬가지다. 기절한 사람의 코에 들이대면 깨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글의 첫 부분으로 돌아가 4복음서 인용한 것을 다시 읽어 보라. 예수는 신 포도주를 마시자마자 큰소리를 지르거나 뜻도 모를 말을 씨부렁거리고는 숨을 거둔다. 민간요법으로 보든 의학적으로 보든 이것은 수수께끼다. 어떻게 신 포도주가 사망을 촉진시키나? 신 포도주가 아니었을 가능성은 낮다. 4복음서가 일치되게 신 포도주라고 했으니까. 그럼 예수가 빨리 뒈지라고 포도주에 독을 탔을까? 그럴 가능성도 낮다. 걍 냅둬도 예수는 죽게 되어 있으니까... 그럼 빨리 죽게 해서 십자가의 고통에서 해방시켜주려는 일종의 안락사? 그런데, 포도주를 먹인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 적대적으로 보인다. 아니 친화적인가?
몰러가 여기까지 전개하자 울 동네 순진만빵 무구찬란한 목사님은 이렇게 해석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갈증을 느끼셨고, 신 포도주를 드시자마자 돌아가신 것이 아닐까요?
글쎄요. 요한복음서만 봤을 때는 그럴 수도 있지만, 다른 복음서 상에서는 정황이 그렇게 보이지 않네요.
네. 생각하시기 나름이죠.
그렇겠죠. 그럼 목사님 말씀이 맞다고 치고 다시 한번 봅시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갈증이나 신 포도주에 대해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습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들이대면서 이구동성으로 예수님께 자신을 구원해보라고 조롱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러지 않았구요. 저는 못했다고 하고 싶지만... 아! 이거 이제 보니 큰 의미가 있네요. 그 포도주에 뭔가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네요. 예수님 숨이 몇 시간 더 남아 있었더라도 포도주 드시는 순간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더 높네요... 그럼 또 아까의 의문점으로 뺑뺑이 도네요. 하하하∼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잖습니까?
왜요? 추리하는게 얼마나 잼 있는데... 신학대 다니면서 이런 생각도 안 해 보셨어요? 그런데 요한복음서는 왜 관련도 없는 내용으로 성경 말씀, 그러니까 구약을 근거로 들려고 했을까요? 또 4복음서가 하나 같이 신 포도주를 언급한 이유는 뭐죠? 목사님 말씀대로 예수님 임종직전이라면 포도주는 예수님 생의 연장이나 단축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굳이 포도주가 공통되게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요?
끙∼ 집에 가서 다시 생각해봐야겠군요.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네. 담에 만나면 각자 연구한 것을 이야기하기로 하죠.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바이블을 보았을 때는 신 포도주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코드다. 하지만 신 포도주의 효능을 생각하면 예수 사망순간의 장면들은 수수께끼로 변한다.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고 하지 마라. 예수의 십자가 보혈이 주는 의미가 요상하게 되어버리는 수가 있다. 이것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고민과 해답을 기대한다. 안티 여러분도 마찬가지...
-----------------------------------------------------------------------------
피에쑤)
예수에게 포도주 먹이는 장면과 자신을 구원해 보라고 조롱하는 장면이 접속사에 의한 연결이라든지 행위자의 의도로 인해 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다.
마태 : 포도주 먹이는 사람과 예수를 조롱하는 사람이 별개의 사람이며, 포도주 먹이는 행위는 예수에게 친화적임
마가, 누가 : 포도주 먹이는 사람과 예수를 조롱하는 사람이 동일인이며, 포도주 먹이는 행위는 예수에게 부정적임
요한 : 의도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보여주지 않으며, 그냥 예언성취를 증거하려는 의도로 서술되었음. 물론 예언(구약)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
어쩌면 이 고찰이 더 고민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