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웃기는 교회의 경건.엄숙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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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러님의 칼럼입니다.

아주 웃기는 교회의 경건.엄숙주의

몰러 0 2,824 2005.06.20 16:16
아주 웃기는 교회의 경건.엄숙주의    
  
 
 
작성일: 2002/02/26
작성자: 몰러




몰러는 지금 "장미의 이름"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제는 도그마가 남긴 비극인데, 희극이나 웃음이란 것이 하느님에 대한 찬양, 하느님의 영광과 어떤 관계인가를 가지고 등장인물들이 갈등하는 것이 스토리의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제2일 3시과(이 소설은 제목 대신 성무일과표상의 시간 자체를 목차로 삼고 있다)에 보면, 웃음, 희극 등을 신앙과 수련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간주하는 호르헤 노수도사(베네딕트회)의 심기를 주인공 윌리엄 수도사(프란체스코회)가 다음과 같이 벅벅 긁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신은 절대 웃지 않는다는 호르헤의 말에 윌리엄이 “지금 웃음이란 것 자체를 비웃고 있으니 그것이 웃음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반박합니다. 그러자, 호르헤는 “한가한 말장난으로 이끌어내지 말라. 그리스도가 웃지 않으셨다는 것은 잘 알지 않느냐”며 응수합니다. 이에 윌리엄은 호르헤 수도사를 완전히 놀림감으로 만듭니다.

글쎄요, 나는 그렇게 안 봅니다. 바리사이 인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하셨을 때, 화폐는 거기에 새겨진 형상의 임자에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셨을 때, 재담하시면서 “너는 반석이다”라고 하셨을 때, 내 보기에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당황케 하고 제자들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시려고 우스갯소리를 하신 것 같습니다. 가야파에게 “그것은 네 말이다”(네가 그렇게 말하였다)라고 하셨을 때도 예수님께서는 재담을 하신 것이지요.
끌뤼니 수도회와 시토 수도회의 대립이 첨예하던 때의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끌뤼니 수도회에서는, 시토 수도회를 능멸한답시고, 바지를 입지 않는다고 공격한 것을 아시지요? 그게 바로 우스개가 아니던가요? 『바보들의 거울』에 보면, 당나귀 브루넬로가, 한밤중에 부는 바람이 수도사들이 덮고 자던 담요를 홀랑 걷어버리면 수도사들은 저마다 사타구니를 내려다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할까 하고 궁금해하는 대목이 나오는데..(좌중의 웃음이 터짐, 하략).


ㅇ 끌뤼니파 : 베네딕트회의 한 분파, 즉 윌리엄은 호르헤에게 당신의 동료들도 우스갯소리를 써먹지 않았느냐며 놀리고 있음.
ㅇ 시토파 : 원래 베네딕트회의 분파이나 시토파의 독트린이 프란체스코회의 엄격주의파가 추종하게 되면서 베네딕트회로부터는 배척을 받음. 두건 달린 법복 안에 바지를 입지 않고 허벅지까지 오는 빤스 또는 노빤스(시원하겠다) 상태로 수련함.
ㅇ 윌리엄은 프란체스코회의 정통파 수도사임. 엄격주의파는 약간 이단으로 취급되고 있음


위 에피소드는 물론 소설의 일부분일 뿐이지만 실제로 중세의 거의 모든 수도회는 침묵, 금소의 회칙을 엄격히 준수토록 했었습니다. 다만 프란체스코회만이 기도 및 명상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융통성을 발휘하였습니다.

지금의 가톨릭은 어떠한가요? 물론 주일미사는 엄청 지겹습니다. 딱 졸기 좋은 분위기에, 자장가 같은 기도와 찬송, 신자들이 졸지 않도록 배려하는 건지 몰라도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지만... 그런데 미사를 제외한 다른 모임에서는 전혀 다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학생들이 장기자랑과 같은 발표회를 하였는데, 발표한 8개팀 중 고딩 한 팀은 블랙사바스의 "Heaven and Hell"을 멋들어지게 연주하였고(데이빗 커버데일과 흡사한 목소리로 들었는데 꽤 괜찮데요), 모 신부님이 중간에 찬조출연하여 사제복 버젼으로 힙합과 브레이크 댄스를 능란하게 추기도 했고, 소사신부는 크라잉넛의 “말달리자”를 열창했습니다. 액션까지 그대로 카피하면서 말이죠. 학생들은 오빠부대 이상의 성원을 보냈고, 부모들도 기립박수를 치면서 앵콜을 연호했습니다.

신부들은(적어도 몰러가 만난 신부들은) 일상대화에서 아무런 격식이나 예의를 차리거나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자신의 천성이나 버릇대로 편하게 대화했죠. 온화하게 학자풍으로, 또는 큰형님처럼, 심지어 조폭틱하게...

그럼 교회를 살펴볼까요? 일단 순복음교회는 제쳐둡시다. 서구 교회와 굿판이 믹싱된 교파라서 엄청 분답습니다(시끄럽고 어지럽고 시장통 같다는 뜻의 갱상도 사투리). 하지만 가톨릭과 같은 자유분방함은 전혀 없으니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를...

다른 교회를 봅시다.
일단 젊은 신자들과 늙은 신자들은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아저씨들은 경건/점잔/엄숙을 엄청 따집니다. 교회에서 어떤 발표회나 학예회(심지어 유치원의 그것까지도)를 한다면 저는 구경 안갑니다. 잼 없거덩... 기도로 시작해서 중간에 몇 차례의 기도, 끝날때 목사의 기도와 축도가 반복되니 이건 뭐 학예회가 아니라 숫제 예배와 진배없습니다. 힙합? 어림도 없죠. 밴드의 경우 악기는 롹 편성(클린톤의 일렉기타, 베이스, 오르간이나 피아노 소리만 나는 키보드, 살살 쳐야 하는 드럼)이지만 연주내용은 초딩들 동요발표회 수준입니다. 몇몇 학생이 자신의 실력을 발휘(디스토션 넣거나 오버드라이브 걸고, 방방 나대는 짓)했다가 중간에 제지당하기도 한 적도 있었죠. 엄청 혼나구요.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여러 명의 수도사들이 피살된 것은 웃음과 관련된 서책을 읽었다는 웃기지도 않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몇년 전에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엄청 허무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도 그렇겠죠. 한편 현대 개신교를 이끌어간다는 사람들은 이런 허무하기 짝이 없는 중세틱한 것을 신자들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때가 어느 때인데... 개신교에서는 킬링타임용 영화인 Sister Act에서와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은 죽었다 깨도 없을 겁니다. 먹사들은 영화에 나왔던 전 대회의 챔피언 학교 성가대를 최고로 이상적인 합창단이라고 우길 겁니다.

지금 하느님은 양들에게 경건과 엄숙을 요구하시지 않고 있지만 하나님은 엄청 따지고 있군요.

P.S 뭐 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반화의 오류를 운운하면서 엉길 개독들이 나올까봐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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