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인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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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러님의 칼럼입니다.

예수님의 인간성

몰러 0 2,508 2005.06.20 15:54
예수님의 인간성    
  
 
 
작성일: 2002/01/29
작성자: 몰러




가다렌의 돼지몰살과 무화과나무 저주사건에 대한 소고

버트란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에서 예수의 인간성에 대해 까댄 부분을 가지고 기독교인의 반발이 많다. 겨우 그런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의 인간성에 흠이 있다고 우기는 것은 억지라고 말이다. 그냥 예수의 능력과 권위를 나타낸 하나의 에피소드로 볼 수 없느냐는 의견도 있다.

먼저 러셀과 안티들이 제기한 의견은 다음과 같다.

예수가 귀신들린 사람의 몸에서 돼지 떼 속으로 귀신이 들어가게 하여, 돼지가 물에 빠져죽게 한 것이나, 아직 열매가 열릴 시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열매가 없다는 이유로, 그리고 자신이 배고프다는 이유로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것은 예수의 능력과 인간성에 의문을 품게 하는 사건이다. 예수는 전능자라고 자처했으므로 귀신이 그냥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하여 마을사람들의 식량인 돼지를 죽게 만들었다. 또한 덜 자란 나무였거나 열매 맺을 시기가 아니었을 나무(그게 아니라고 하지 마시라. 무화과나무는 당신들의 표현대로라면 정해진 시기에 열매맺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아니면 양분이 없었기에 열매맺지 못한 것이다. 무화과나무에 책임을 덮어씌우지 말라)를 저주한 것은 권력남용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지혜나 도덕적 측면에서 역사상 알려진 어떤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석가나 소크라테스를 예수보다 높은 반열에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한 기독교인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1. 돼지는 불결한 동물(또는 불결함의 상징)이다. 돼지의 몸에 귀신을 잡아넣는다는 것은 정결한 것은 더욱 정결하게 유지하고, 불결한 것은 불결한대로 멸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귀신들의 간청을 예수님이 들어준 것일 뿐이다.

2. 얼마나 예수님을 흠집낼 게 없으면 겨우 그런 일로 억지를 부리는가?(모쉐이도 신약 함 읽고 난 뒤에 요딴 개소릴 했었다. 하도 웃겨서 그때는 뭐라 하지 않았다... 귀 간지럽다고 토달지 마라. 너의 흰소리는 딴데 옮겨주는 노가다도 생략하고 걍 삭제다. 억울하거덩 반론이란걸 해라. 아님 그것두 삭제될끼다. 모돌님 맘이지만...)

3. 무화과나무 사건은 인자가 오시는데도 준비하지 않는 자의 말로를 상징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혼인잔치의 비유와 같은 것이다(이렇게 주장한 분이 또 있죠. 엊그제 웃기는 글 올렸다가 슬쩍 밟아줬더니 곧바로 삭제하신 분... 모돌님이 지우시진 않았을 테고, 그랬다면 휴지통에 옮겨졌을 것이니...)

4.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동시에 인간이기도 하셨다. 즉, 두 사건은 “인간예수”를 표현하는 에피소드일 뿐이다.


이제 따져보자.

1. 앞으로 햄버거 쳐먹거나, 돈까스 먹은 교인은 교회에 가서 조슬 물고 회개할 일이다. 귀신들의 간청과 돼지의 불결함은 아무 상관이 없다. 왜 돼지가 To Hell With Devil해야 하는가? 이 사건은 분명한 예수의 실책이다. 또, 돼지 수백, 수천 마리를 죽여버리면, 돼지를 치던 사람들은 땅파서 먹고살란 말인가? 결국 이것은 예수가 잘난 체한 사건일 뿐이다.

2. 예수를 흠집낼 부분은 이것 말고도 더 있다. 성경을 하나님의 영광과 감동으로 기록되어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고 한다면 말이다. 그가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한 말을 보라.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자처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한 저주를 보라. 그래도 할 말이 있다면 양심부터 점검할 일이다. 양심에 이상이 없다면 아이큐가 70점대라는 반증이다. 반대로 성경이 후대의 기자들에 의해 자신들의 가치관이 이입된 것이라고 본다면 어떨까? 그때는 예수가 전능자가 아니며, 후대 전승자들에 의해 그 지위가 까 내려져서 결국 석가나 소크라테스 아래의 반열에 있게 된다.
얼치기 기독교인들은 가끔 외통수에 몰리는 소릴 잘 하더라. 자가당착, 모순 말이다.

3. 그렇게 상징이라고 우긴다면 다른 모든 것들도 상징일 뿐이며, 결국 야훼든 예수든, 또 수많은 선지자들과 그들의 행적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이걸 바라나? 아니겠지... 굳이 내가 상징이라고 인정해 줄 수 있는 부분은 “기도할 때에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라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런 거룩한 논지를 펴겠다고 그토록 거룩한 이적 능력을 무화과나무를 말려 죽이는 식으로 행사한 것은 예수를 거북한 전능자로 밖엔 볼 수 없게 만든다. 개폼만 잡았다는 것이다. 내가 예수였다면 열매가 열려야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열리지 않은 나무를 자신의 능력으로서 열매맺게 함으로써 믿으면 이루어진다는 논리도 설파하고 준비되지 않은 자는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겠다.

4. 일명 진보개독들이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는 논리다. 도그마적인 개독들보다 열린 신앙을 가졌다고 주장하지만 착각에 빠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케이스 되겠다.
물론 “신성예수”의 측면에서는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로서 돼지몰살 사건이나 무화과나무 괴사 사건 따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연민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고, 분노를 느끼는 “인간예수”를 내세우는 모양인데...
좋다. 나도 여기까지는 동의한다.
하지만 “인간예수”라고 하여 자신의 지혜와 도덕까지 흠집을 입어서야 되겠는가? 사람들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고 고민하는 예수는 인정해 줄 수 있겠지만,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위해 어떤 것(사람)을 저주하는 예수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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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 울 집에 전도자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와이프는 나에게서 배운 대로 버트란드 러셀의 책에 나오는 내용을 써먹었다. 예수의 인간성에 대해 씹는 내용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위에 나온 식으로 반박을 하더란 것이다. 기독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와이프는 깨갱하고 말았다는데...

오늘 간만에 와이프한테 큰소리 쳤다. ‘그들이 그럴 때는 이러저러하게 말하면 되잖아’ 하고 말이다. 그랬더니 와이프는 ‘일 똑바로 안하고 농땡이치며 씨잘데 없는 공부한 넘이나 그렇게 할 수 있겠지. 난 무능한 당신 땜에 그런거 생각해볼 여유 엄따’

젠장~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와이프의 째려보는 눈빛이 무서벘다.

아예 집안에 들이지 말 것이지. 한가지 배웠다고 써먹으려 들다가 깨갱한 주제에... 궁시렁~ 궁시렁~


피에쑤 : 이 글에 나오는 모든 내용들은 지니도사님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음. 욱 하는게 올라오더라도 부디 참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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