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제국주의가 망친 비극의 땅
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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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0 15:44
종교와 제국주의가 망친 비극의 땅
작성일: 2002/01/27
작성자: 몰러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그리고 IRA
지난주부터 해리슨 포드 영화를 거의 매일 한가지씩 빌려보고 있는데, “데블스 오운”과 “패트리어트 게임”에서 공통의 코드인 IRA가 나왔고, 또한 대녈 데이 루이스가 주연한 “아버지의 이름으로”에도 나오는 북아일랜드 문제를 한번쯤 짚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역사적인 문제가 얽혀 있지만 특히 종교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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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제일 서쪽에 있는 아일랜드는 800년이 넘는 압제 속에서 단련된 푸른 피(blood emerald)의 민족이 세운 나라이다. 현재 아일랜드의 정식 국호는 Republic Of Ireland이다. 또 다른 이름인 에이레는 섬을 뜻하는 켈트어에서 나왔다.
워낙 변방이었던 까닭에 로마의 지배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워 온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가톨릭화한 나라이다. 430년대에 파트리시우스라는 소년이 있었는데, 그는 영국(시저가 부여한 당시 이름은 브리타니아)의 로마 관리의 아들이었다. 이 부잣집 도련님은 로마가 멸망하면서 아일랜드에서 침공해 온 켈트인에 의해 노예로 끌려갔다. 이때 그는 갤릭(켈트어)과 켈트인의 문화(? 거의 야만인이었지)와 관습, 그리고 민족성을 익혔다. 프랑스(당시 이름 갈리아)로 탈출한 파트리시우스는 선교사였던 성 제르마누스로부터 가톨릭의 교리를 배웠는데, 후일 아일랜드로 돌아온 그는 몸에 익어 있던 갤릭과 켈트인의 습성을 활용하여 가톨릭을 선교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461년 3월 17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 날이 바로 아일랜드의 최대의 기념일인 St. Pattrick's Day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의 추석 이상 가는 축제일(하지만 울 나라 같은 민족 대이동은 없다)이기도 하다. 아일랜드의 수호신으로 격상된 성 파트리시우스는 그 이름이 가장 많이 쓰여지기도 한다. 아일랜드에 가서 아무 남자나 엉덩이를 걷어차면 10명중에 1, 2명은 패트릭일 것이다.
이처럼 가톨릭의 역사가 깊고 믿음이 유별난 아일랜드에 위기가 닥쳐왔다. 1169년 잉글랜드의 헨리 2세가 아일랜드를 침공하여 점령한 것이다. 이후 노르만족의 왕국인 영국의 압제에 시달리던 아일랜드는 더디어 종교에까지 위협을 받게 되었다.
영국역사에서 최고의 바람둥이 왕이면서 씨 없는 수박으로 의심받았던 헨리 8세(앤 볼린과의 사이에서 난 딸 엘리자베스 1세는 다른 남자의 사생아였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스페인의 아르마다를 격파하고 팍스 브리태니커를 연 The Great에 대해 영국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보호하려 했기 때문에 많은 증거들이 불태워졌다고 한다)는 형의 미망인이었다가 부인이 된 캐더린과 이혼하고 조선의 상궁쯤 되는 위치였던 앤과 결혼하기 위해 이혼을 금지한 로마 교황과 결별하고 영국 교회를 세우게 된다. 현재의 영국 국교인 성공회가 탄생한 것이다. 헨리 8세는 자신의 이혼을 반대했던 토마스 모어(유토피아의 저자)의 목도 자른 바 있다.
헨리 8세는 아일랜드를 성공회로 개종시키려 했으나 천하의 똥고집에 융통성 없기로 유명한 켈트인들이 수용할 리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일랜드에 성공회를 심기 위해서 아일랜드인들과 같은 켈트족이지만 신교도(성공회)였던 스코틀랜드인들을 아일랜드 북부에 대거 이주시켰다. 동족끼리 잘 설득해 보라는 의도였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오히려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는 골칫거리인 북아일랜드 문제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1650년 영국의 독재자 올리버 크롬웰(노래금지, 술금지 기타 등등 좋은건 다 몬하게 했다. 이 청교도의 종교적 후예가 미국과 한국의 개독들이다)은 아일랜드를 강제로 합병하였는데, 블러드 에머랄드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300여 년 동안 줄기차게 독립투쟁을 하였고, 영국은 줄기차게 탄압하였다. 탄압방법에 있어서 아일랜드인들에게는 우리가 일제의 창씨개명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버금가는 느낌을 받을 신교 강요가 동원되었고, 모든 가톨릭교도들를 공직에서 추방하고, 엄청난 세금을 쎄리는 등 그 방법이 혹독하였기 때문에, 이 켈트인들의 가슴에 영국과 성공회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증오를 뿌리깊게 심어 놓았다.
19세기에 이르러 이 탄압이 중단되긴 했지만 이미 너무나 깊게 각인된 증오는 이제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게다가 수년에 걸친 흉작으로 아사자가 속출하자 아일랜드인들은 대대적으로 신대륙으로 떠나고 말았다(존 F. 케네디나 소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다 이러한 이민자의 후손이다). 드디어 1900년 아일랜드에 신페인당(Sinn Fein)이 결성되고, 우리의 상해임시정부마냥 독립운동의 지휘부가 되었다.
(제가 예전에 토마스 페인(Paine)과 한글 발음이 비슷하여 헷소리한 적이 있는데 신페인당과 토마스 페인은 아무 상관이 없음을 밝힙니다. 에궁~)
신페인당의 노선은 강경 그 자체였다. 거의 모든 독립투쟁의 수단은 아일랜드 공화국군(IRA)를 이용한 무자비한 테러(그들에게는 의거가 되죠)였다. 십 수년에 걸쳐 무자비한 테러와 암살이 반복되었고, 그 사이사이에 협상이 있었지만 거의 진척이 되지 않았으며, 민중의 봉기, 그리고 영국의 탄압이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었다.
최대의 충돌은 신페인당이 아일랜드 의회를 장악한 이후에 전개되었다. 신페인당을 불법단체로 규정한 영국에게는 아일랜드 의회가 자치의회임을 선포한 것이 반역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결국 이것은 아일랜드 독립전쟁으로 확산되었다(그때 우리나라는 삼일운동이 전개되었다. 뭔말 하려는지 아시죠? 민족 자결주의... 결국 쎈 넘들만의 자결주의가 되어버린 허울좋은 소리였을 뿐이지만).
3년 간에 걸친 전쟁 끝에 Ulster주(북 아일랜드)를 제외한 아일랜드 전역에 대한 자치권을 인정하는 협상이 타결되었다. 그후 1949년에는 독립을 하게되고, 독립과 동시에 영연방을 탈퇴해 버린다. 캐나다나 호주와 비교했을때 아일랜드의 영연방 탈퇴는 얼마나 그들이 영국에 대하여 한이 맺혀 있었는지를 반증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남아있는 북 아일랜드... 다수파는 신교(성공회), 소수파는 구교도이다. 독립 아일랜드에서는 IRA가 공식 해체되었으나, 북아일랜드 얼스터는 그렇지가 않았다. 북아일랜드 구교도는 에이레 공화국과 통합하고 얼스터에서 신교도를 스코틀랜드나 잉글랜드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신교도는 쫓겨나기 싫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이 원해서 온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결자해지 원칙에 따라 영국이 이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건 완전히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렸다. 영국군이 철수하면 가톨릭교도가 몰살당하거나 추방당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럼 걍 개긴다면? 영화에 나왔듯이 계속적인 테러와 암살에 시달릴 것이다.
몇 년 전에 IRA는 테러 포기선언을 하였고,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에는 무장해제를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행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그럴 가능성도 낮다. 설사 IRA가 완전하게 무장해제하고 신페인당이 평화적인 협상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항구적 평화는 요원하다. 왜냐하면 북아일랜드의 신교도들은 어떠한 협상에도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더러운 가톨릭과 협상할 수 있냐는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한국의 성공회와는 달리 북아일랜드의 성공회가 엄청 꼴통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국가를 소개할 때 시, 음악이 무척 강조되는 나라가 바로 아일랜드다. 먼저 대륙과 영국이 깜깜한 상태에서 야만적인 상태에 있을때 신플라톤주의와 범신론을 교황에게 한수 가르쳐 준 에리우게나가 있었다. 또한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버나드 쇼, 제임스 조이스, 시무스 히네는 켈트인의 독특한 문화가 반영되어 있으면서 어둡고 참담한 역사를 대변한다. 예이츠와 히네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클래식 음악은 필자도 잘 모르니 언급하지 않겠다. 팝에 한정하여 보면 Gary Moore, U2, Van Morrison, Enya, Sinead O'Connor, the Cranberries, Boyzone(이 그룹은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빼고 싶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그룹이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등 세계적인 뮤지션이 많다. 이들의 공통점은 미국이나 영국보다는 한국이나 일본 같은 동양권에서 더욱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음악이 동양적인 리듬이나 멜로디를 구사한 것이 아니다. 바로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차별되는 아일랜드의 독특한 역사와 정서가 동양권에 어필하기 때문인 것 같다.
머리를 박박 민 레즈비언 셔너드 오코너의 경우 교황의 사진을 찢는 돌출행동을 하였는데, 그 뒤 밥 딜런 30주년 음악회에서 성난 관객들의 야유로 노래를 부르지도 못하고 울먹이며 퇴장한 적이 있다. 그녀가 왜 요한바오로 2세의 사진을 찢었을까? 아마 그녀는 기회만 있었다면(우리 표현대로 멍석만 깔아줬다면) 성공회의 명예수장인 엘리자베스 2세나 캔터베리 대주교의 사진도 찢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녀는 종교에 대한 반발심도 레즈비언이 된 이유 중의 하나일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분명히 독립 후세대인 그녀가 아일랜드의 어두운 부분을 자신의 생에서 제거하지 못했다는 것은 자명하다.
매리 로빈스 대통령의 영도아래 해외투자 유치, 생산성 향상 등으로 경제적 약진을 시작하였고, 지금은 국제적 시각으로 과거를 점차 잊어가는 듯이 보이는 아일랜드인이지만, 결코 그들만의 비애와 증오와 좌절을 잊지 못할 것이다. 종교와 제국주의가 낳은 비극의 산물인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다른 민족에게 저지른 탄압과 착취는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 준다.
그렇다. 모든 국가와 민족은 Sinn Fein, 즉 “우리 스스로” 살 수 있어야 하고, 한편 남이 스스로 사는 것을 방해하거나 탄압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바라는 것보다, 다만 역사의 교훈을 깊이 깨닫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