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재판
몰러
일반
0
2,779
2005.06.20 18:46
예수의 재판
작성일: 2002/10/30
작성자: 몰러
ㅇ 배경 설명
예수와 바울이 활동하던 시기의 유대는 로마의 식민지였다. 식민지라고는 하지만 이는 한반도에서의 일제시대와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로마시대에는 정복지를 완전히 합방하지 않고 국방, 외교 및 사법권 같은 중요한 사항만 권한을 행사했고, 약간의 조공만 요구하였다(그러나 뒤에 갈수록 수탈이 심해져 큰 반발을 유발했다). 반면 그 나라와 민족의 종교, 관습 같은 것은 대체로 용인(존중보다는 방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하였다.
당시 로마는 식민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통치하였는데, 분봉왕을 두는 것, 총독을 파견하여 다스리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다른 방식의 통치가 있었지만 이 글의 진행에 있어서 그리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분봉왕은 주로 그 나라 사람이 아닌 이웃의 다른 나라 사람을 왕으로 옹립하여 다스리게 하였는데 유대에 대해서는 사마리아 출신 헤롯을 왕으로 봉했으며, 이 분봉왕은 세습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분봉왕도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인접한 총독의 감독을 받게 되어 있었는데, 이를테면 반역사건이라든지,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인에 대한 재판권은 분봉왕이 아닌 총독에게 있었다. 유대에서는 AD 60년 경 1차 대반란 이후 분봉왕 체제가 폐지되고 유대 전체를 총독이 다스리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ㅇ 예수 기소사유
이상 예수 당시의 사법권에 대한 것을 염두에 두고 이제 요한서를 중심으로 예수의 재판을 살펴보자.
다른 3 복음서, 즉 공관복음서는 중간중간 인용은 하겠지만 요한서만큼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빌라도의 언행이 완전히 미스테리이기 때문이다. 요한서는 그래도 마지막에 작성된 문서라서 그런지 내용이 좀더 치밀하고 그래서 덜 헷갈린다.
일단 예수가 빌라도의 법정에 서게 된 이유는 유대왕을 자칭했기 때문인 것으로 되어 있다. 예수의 행위나 의도에 관계없이 적어도 유대인들에게 그렇게 고소당한 것이다. 로마의 식민지는 황제의 인가 없이 왕을 세울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함부로 왕을 사칭하는 것은 사형의 중죄에 해당하며 이는 총독에게 재판권이 있었다. 그래서 누가서에서는 분봉왕에게 넘어갔던 예수는 다시 빌라도에게 넘겨진 것이다. 물론 요한서에서는 분봉왕 헤롯에게 가지 않았거나 생략되어 있다.
빌라도가 예수의 죄목을 묻자 유대인들은 ‘예수가 악한 일을 했기’ 때문에 총독에게 넘기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빌라도는 기소를 각하하고 사건을 유대법정으로 되돌리려 한다. 이거 뭔가 이상하다. 뒤에도 나오지만 빌라도는 예수가 왕을 사칭한 것을 알고 있었다. 예수에 대한 첫 심문이 “네가 유대 사람의 왕이냐?”이라고 한 것을 보면 말이다. 이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사건을 돌려보내려 하다니...
유대인들에게는 사람을 사형에 처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물론 율법 중에는 돌로 쳐죽이는 조항이 있기는 하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적용될 뻔한 이 사항은 당시의 로마법에 위배된다고 전해져 왔다. 요한서에만 있는 막달라 마리아 구조장면은 다른 복음서나 사본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성경공격론자들은 이 사건이 후대에 가필된 것으로 가나의 혼인잔치 사건과 함께 예수의 결혼을 은폐하기 위한 장치라고 주장한다. 즉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부인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은 단순히 돌을 던지는 것으로 생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정말 상관이 없을까? 모세는 돌로 쳐죽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단지 하나의 관습일 뿐이며, 따라서 유대 내의 임의사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예수의 결혼문제는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고 따로 다룬 바 있으므로 생략하기로 하고, 어쨌든 유대인이 유대인을 재판하여 사형에 처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간주하자.
유대인들은 예수가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를 범했으며, 자신들은 그러한 예수를 재판할 권한이 없으므로 빌라도가 재판해줄 것을 재차 요구하였고, 이에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한다. 그런데 예수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며 관념적인 나라, 즉 하늘나라의 왕이라고 답한다. 이렇게 되면 빌라도에게 있어서 예수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인이 아니다. 또한 예수의 활동을 이런 저런 통로를 통해 보고 받았을 것이 틀림없는 빌라도에게 있어서, 예수는 어리석은 공상가쯤으로 비쳤을 것이므로 그가 공평한 재판관이라면 매질이나 하여 정신차리게 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판결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소’라고 답한다. 또한 이것이 앞서 말한 의문점, 즉 예수를 심문해 보지도 않고 유대의 법정으로 사건을 되돌리려 한 이유가 설명된다.
여기까지는 기독교인들도 별 불만이 없을 것이다.
ㅇ 유월절 사면과 바라바
이후 빌라도는 유월절 사면을 들어 예수를 풀어주고자 시도한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소. 유월절에는, 내가 여러분에게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소, 그러니 유대 사람의 왕을 놓아주는 것이 어떻겠소?”
이때 유대인들이 선택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가 아닌 바라바 예수였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선택은 기독교인들에게나 중요할 뿐 여기서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빌라도가 로마의 법이 아닌 유대의 관습에 따라 예수의 사면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유월절에 죄수를 사면할 때 사형수도 포함되는지 의문이며, 어느 죄수를 사면할 것인지를 직접 결정하지 않고 식민지인들에게 묻는다는 것도 의문이다. 식민지의 명절이라도 로마법 위반자를 특별 사면하는 관례가 있었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한편 빌라도는 여기서 예수를 “유대 사람의 왕”이라고 분명히 지칭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관념적인 왕을 지칭한 것이며 또한 그냥 기소내용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자. 그게 아니라면 빌라도가 예수를 놓아주려 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
마가서와 마태서에서는 명절이 되면 총독이 죄수 하나를 직권사면하곤 했다고 나와 있다. 또한 누가서에서는 이 부분이 분명하지 않지만 유대인들이 바라바를 사면해 달라고 요구한 것을 보면 두 복음서와 같은 관례가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쨌든 공관복음서에서는 분명하지 않던 사면관례의 시행이유가 요한서에서는 유월절을 맞이한 때문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럼 빌라도는 그렇게도 처벌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예수를 직권사면하면 될 것인데 왜 바라바와 엮었을까? 사면대상을 통치자이자 재판관인 총독이 정하지 않고 식민지인들이 정한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빌라도는 피지배인들에게 선택하게 하였으니 참으로 아리송하다.
마가서를 보면 처음에 유대인들이 바라바의 사면을 원했는데 이때 빌라도가 예수를 끼워 넣음으로서 예수재판을 회피하려 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완강하게 바라바 사면을 주장했고 예수는 결국 제외되었다. 도대체 바라바는 누구인가?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한 폭동주동자, 살인자나 도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바라바의 위상을 까내리기 위해 성경에 그렇게 표현되었을 뿐인 것이다. 아마도 바라바는 질럿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폭동과 살인의 이유로 독립운동 말고 뭐가 있겠는가? 또 단순한 강도이자 살인자의 사면을 유대인들이 원했을 리 없으며 그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분명히 영웅이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아를 사칭하는 예수보다는 영웅 바라바가 더 필요했을 것이다.
바라바가 단순한 강도였다면 유대인들이 그가 사면되는 것을 원했을 리 없고, 바라바가 일종의 독립운동(로마인에 대해서만 테러나 강도짓을 하는 것)을 한 자라면 이것은 빌라도가 사면을 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로마법에 무조건 명절에 한 명을 사면하도록 명시되었다면 몰라도 하나의 관례일 뿐이라면 반역죄인에 대한 사면은 같은 로마인들에게 지탄을 받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빌라도는 로마로 소환되어 직위가 해제될 소지도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의 정당성을 위해서 기독교인들은 로마법 상에 명절날 식민지인들이 선택한 자를 무조건 사면하도록 되어 있는 조항을 증거로 제시하여야 한다. 하지만 로마법에 그런 내용은 없다. 그냥 관례일 뿐이다. 관례가 실정법 상의 중죄인을 놓아줘도 될 만큼 로마법은 허술하게 작성되지 않았다.
어느 역사서에서는 사면관례 따위는 없었다고 하기도 한다. 그냥 부패한 관료들에게 뇌물을 바치면 되었다는 것이다.
ㅇ 예수에 대한 채찍질과 법적용의 혼선
예수를 채찍질한 사건은 빌라도가 예수를 사형하는 대신에 채찍질로서 유대인들을 무마시키려 한 시도에 의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데, 각 복음서에서 예수에 대한 채찍질은 분명히 그 성격이 차이가 있음을 명심하자. 누가서에서는 전언한대로 빌라도가 예수를 사형하는 대신 태형으로 마무리지으려 했다고 나와 있다. 요한서에서도 빌라도는 예수를 채찍질한 후에 다시 한번 예수의 구명을 유대인들에게 간청하다시피 한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요상한 이유로 이를 거부한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을 따르면,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그가 자기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서, 다시 공관 안으로 들어가서 “네가 어디서 왔느냐?”하고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분명히 빌라도는 로마법에 근거하여 재판을 진행중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유대 율법을 근거로 사형을 주장한다. 로마법으로는 예수가 무죄라는 것을 인정한 것일까? 하지만 유대인들이 여기까지 생각해 보지는 않은 것 같다. 단지 그들은 예수를 처형하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유대 율법을 근거로 사형이 가능할까? 앞서의 유월절 사면시도와 동일한 성격으로 아리송한 일이다.
그리고 빌라도가 두려워한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유대인들의 소요를? 예수를 방면하면 폭동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다른 복음서에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건 정말 이상하다. 최정예 병정들을 수백 명 거느린 빌라도가 무엇을 두려워한다는 말인가? 기독교인들 중에서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해 주길 기대한다.
다시 예수를 심문한 후에 빌라도는 놓아주려고 시도한다. 이에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실정법을 상기시킨다.
“이 사람을 놓아주면, 총독님은 황제폐하의 충신이 아닙니다. 자기를 가리켜서 왕이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황제폐하를 반역하는 자입니다.”
여기에서 예수 처형의 근거는 유대율법에서 로마법으로 다시 환원된다. 하지만 전언하였다시피 빌라도가 인식한 예수의 유대왕 됨은 속세의 왕이 아니라 관념적인 왕이다. 즉 예수를 사형에 처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당신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말이오?”라는 말로 유대인들에게 최후의 조정을 시도한다. 유대인들이 어떠한 형태로든 예수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에 대한 대제사장들의 대답은 “우리의 왕은 가이사(율리우스 케사르)뿐입니다.”였다. 결국 예수는 사형을 언도 받는다.
예수의 재판에 대한 미스터리가 한 가지 더 있다. 빌라도는 십자가 위에 “유대 사람의 왕 나사렛 예수”라고 써서 명패를 붙인다. 그러자 유대 제사장들은 “자칭 유대 사람의 왕”이라고 고칠 것을 요구한다. 이에 빌라도는 “나는 쓸 것을 썼다”고 답한다.
이것은 단순히 생각하면 빌라도는 자신의 최종 판결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예수가 반역을 했다는 표시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예수가 왕을 사칭한 것 자체도 불쾌했던 모양이다. 분명히 빌라도는 예수가 유대왕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빌라도가 말한 ‘쓸 것’이란 판결의 정당성을 표명한 것 이상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은 제사장들이 주장한 ‘자칭’이란 말의 의미에 대해서다. 단순히 생각하면 예수를 자신들의 왕으로 인정한 적이 없으므로 ‘자칭’이란 말을 삽입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면 되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예수가 유대왕을 자칭하였더라도 로마에 대한 적극적인 반역행위를 한 적이 없기에 유대 율법에는 저촉되지만 로마법 위반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제사장들은 몰랐을까? 필자가 빌라도라면 “자칭”이란 말의 삽입을 주장한 유대인들에게 이러한 맹점을 제시하고 예수를 그냥 사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ㅇ 다른 각도에서의 고찰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재판과정에서의 빌라도의 언행이나 유대인들의 주장은 일관성도 없고 의문 투성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그럼 다른 각도에서 살펴봐야 하지 않겠는가? 문학비평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예수재판의 미스터리는 역사비평에서 손쉽게 풀린다.
먼저 각 복음서의 저술시기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복음서는 마태-마가-누가-요한 순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다. 마가서가 제일 먼저 작성되었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이 작성한 것도 아니다.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예수의 행적은 바로 사도 바울의 감독으로, 또 그의 영향을 받은 후계자들에 의해 작성되었다. 대체로 AD 40년에서 110년 사이로 보고 있다. 율법에 대한 바울의 혁명적 해석에 비추어 본다면 복음서도 필요에 의해 첨삭되었을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에 대한 불경적인 요소를 빼고, 필요하면 로마에 아부까지 해야할 판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로마시민들(처음엔 노예세계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했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할례문제만 보더라도 말이다. 로마시민권자였던 바울의 입장에서 기독교 전파를 위해 구전되어 오던 전승을 자기 입맛에 맞게 기술할 수 있는 상태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다른 요소도 훑어보자.
빌라도는 성경에 나온 것처럼 고뇌하는 재판관의 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그는 탐욕적이고 부패했으며, 극악한 통치(고문과 협박)와 과중한 세금부과로 인해 식민지에서의 소요(대부분 진압되었지만)가 잦았고, 이렇게 잦은 소요 때문에 로마 중앙정부로부터 통치역량을 의심받고 또한 경고까지 받았던 인물이다.
한편 예수는 여러 정황과 함께 기독교계에서 숨기고 있는 소위 외경과 위경을 고려할 때 그는 처음에 열심당의 일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죽을때까지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러던 그가 청년 시절(후대에 철저히 숨겨졌다)에 받은 에세네파의 영지주의적 영향 때문에 갑자기 자신을 메시아로 선포하였고 이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경건하면서도 진보적이고 개혁가였던 바리새파를 율법에 얽매인 독사의 자식으로 매도했으며, 사두개파(조선으로 치면 친일파에 해당)도 비판의 칼침을 맞았다. 예수는 유대의 공적이 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산헤드린(공식적으로는 어떠한 형태의 독립운동도 하지 않았다)으로 하여금 예수를 빌라도에게 고발케 한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또는 하늘나라의 왕이라고 말한 것만으로도 산헤드린의 분노를 자아내기에는 충분했으니까...
산헤드린은 빌라도에게 뇌물을 썼을 가능성이 높지만 굳이 뇌물을 쓰지 않더라도 예수를 사형시키는데 충분한 이유를 빌라도에게 제공했을 것이다. 빌라도에게 있어서 예수가 어떤 성격의 왕이었든 간에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며, 예수를 형장에 보내는 것은 심각한 고민거리가 아니라 일상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그날 기분에 따라 예수를 죽일 수도 있고 살려줄 수도 있는 것이다. 뇌물을 받았더라도 말이다.
정리하자면 예수의 죽음은 거창한 의미나 거룩한 예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율법에 의해, 그리고 시기, 질투, 그리고 증오에 의해 단죄된 것이다. 독립투사 바라바는 구출되었지만 예수는 버림당했다. 예수가 별로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은 예수의 체포장면에서도 알 수 있다. 예수가 그토록 중요하고 유명한 인물이라면 제사장과 그의 군사들이 예수의 얼굴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다의 밀고와 유다의 지목이 필요했었다.
한편 유다의 밀고도 설명이 된다. 복음서에 나온 대로 유다는 열심당원이었다. 그런 그가 처음에는 예수에게서 민족을 구원할 지도자의 면목을 보았을지 모르지만 예수가 현세적 구원(유대독립)을 외면하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구원을 선포하자 실망했을 것이며, 더구나 열심당의 핵심인물들 중에 바리새파가 많았다는 점을 볼 때 예수의 바리새파 비판은 그에게 감정적으로 작용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그런데...
바울과 그의 후계자들은 복음서를 왜 실제와는 동떨어지게 작성했을까?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방민족에 대한 기독교 전파를 위해 율법해석조차 융통성을 발휘한 바울에게 중차대한 목표는 로마자체를 복음화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로마인들에게 예수가 부패한 로마관료에 의해 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수가 열심당원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로마 전도를 위해 빌라도는 공의로운 재판관, 고뇌하는 재판관이 되어야 했으며, 바라바를 비롯한 유대인들은 무뢰배가 되어야 했고, 제사장들은 독단적 권위를 먹고사는 늙다리가 되어야 했다. 이것이 반유대주의의 근원이다. 이러한 반유대주의는 마사다 항전을 끝으로 한 유대멸망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살아남게 된 원동력이었다.
ㅇ 결 론
기독교인들은 이 글에 대해 억측과 불손한 의도하에 씌여졌다고 매도할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예수재판이나 예수 운명 순간을 비롯한 복음서 상의 모든 의문점들을 명확하게 해소하기 전까지는 필자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설명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복음서를 비롯한 성경의 모든 텍스트에 대해 진정한 의문을 제기하거나 연구해 본 적이 없다. 단지 자신들의 믿음에 끼워 맞춘 해석에만 의존하였을 뿐이다.
요한복음을 예수의 직제자가 썼다는 식으로 신도를 가르치는 성직자들 자신은 분명히 다른 가르침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애초에 사그라들었어야 할 예수의 전기는 바울에 의해 구출되었으며 이러한 바울의 망령은 그 후 2000여년 동안 세계를 괴롭혀 왔다.
--------------------------------------------------------------------------------
교정이 많이 필요한 글입니다.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시길... 즉각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