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다녀와서...

강릉에 다녀와서...

몰러 0 2,765 2005.06.20 17:43

강릉에 다녀와서...     
   
 
 
작성일: 2002/09/12
작성자: 몰러
  
 
흡사 전쟁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그동안 떠내려온 토사가 마르고, 그렇게 생긴 흙먼지로 눈을 뜰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미디어에서는 희망을 가지고 복구에 열중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도했지만,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지치고 힘든 모습 뿐이었다.
웃기는 커녕 표정만이라도 밝아 보이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렇다. 미디어는 참혹한 현장에서 떨어져 있는 우리들에게
가책을 덜 느끼게 하려고 했던 듯 하다. 워낙 내가 미디어를 꼽게 봐왔던 탓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강릉은 아직도 침울하다.

이번엔 천재다. 물론 인재인 부분도 있다. 저수지 둑을 그렇게 허술하게 공사했던 점은 말이다.
하지만 하룻밤 새 900mm씩이나 비가 퍼붓지 않았다면 저수지는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이번엔 천재야...

인간이 만든 모든 무기들을 한꺼번에 동원한다 해도 태풍 하나에도 못미친다.
자연은 역시 경외의 대상이다.
태풍이 생기고, 움직이고, 또 소멸되는 과정을 우리 인간은 모두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태풍이 다가오면 인간은 태풍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이런 무력감을 슬퍼하거나 아쉬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서글픈 것이다.

 

어느 교회 앞을 지나가다 발걸음이 멈췄다. 예배는 드려야겠기에 성도들이 교회에 나와서 한창 복구하는 중이었다.
그들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뻔한 대답 뿐일터...

그때 어떤 할머니의 말이 들려왔다. '하나님 덕에 이만 하니 다해이제이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한 말이다. 내 얼굴에 측은함이 묻어 있었나? 분명 조소나 경멸은 하지 않았으니...
그 할머니가 내 속을 뚫어보는 것 같았다.

'제게 하신 말씀입니까?'라는 물음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리고는 '젊은이는 외지사람 같은데... 이번 물난리에 괜찮수?'

'아! 네~ 저두 하나님 덕분에...' 말하고 보니 상당히 느끼했다.

'이번에 세상을 뜬 사람들 모두 천국에 갔을꺼야. 암~'

'하나님 안 믿고 나쁜짓 하던 사람도요?' 내가 왜 이러지? 시골할매한테...

그런데, 그 할머니의 대답은 내 생각을 확 깨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이라도 기도해 주는 가족들이 있었을꺼이고 그라이 천국에 들어야제이요'

몇년 전에 태풍이 사탄의 농간이라고 입에 게거품 물고 떠들던 목사보다,
이 환난을 이기게 해달라고, 징벌을 거둬달라고 절규하던 어느 예수 빠순이보다
이 할머니의 믿음이 훨씬...
뭐라고 표현할 말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이렇게 유연한 믿음도 연륜이 필요한가?


여전히 강릉은 침울하다.
자매회사에서 복구를 도우는둥 마는둥 하고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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