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글 리바이벌] 허접한 교인들에게... 뭐... 기독교인은 대부분 허접이지만...
작성일: 2002/08/16
작성자: 몰러
나는 처음에 기독교가 가진 교의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으려 했었다. 나는 기독교가 물리적이거나 심리적, 정서적 방법들을 동원하여 상대를 박해하거나 상대의 이성을 침해하는 것에 반대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짝사랑에 다름 아니었다. 단편적인 비판에 그쳤다.
기독교가 전도를 하는 방식은 RNA 증식을 하는 바이러스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기독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삽질”을 해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결국 기독교 자체가 말살되지 않으면 끝없는 “삽질”이 계속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원주의니 뭐니 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언젠가는 또 누군가가 나와서 기독교적인 독트린을 이용하여 인류에 해악을 끼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러셀의 말마따나 종교는 질병이다.
질병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해야겠다. 기독교의 질병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죄에 의한 것, 아니면 하나님의 시험이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 치료는 바로 하나님에 대한 도전행위로 간주된다. 그래서 새로운 치료법이 발표될 때마다 기독교계가 한 짓은 교리와 휴머니즘을 빙자하여 무조건 반대하는 일이었다. 제너가 종두법을 처음 시행할 때 어려움을 겪은 이유는 사람들이 막연한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것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질병치료를 불경스러운 행위로 간주하고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치료보다는 믿음과 기도를 우선시하는 것이 기독교다.
나는 기독교식의 신상필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으로 간단하게 표현되는 이 교의는 하나님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회의를 품게 하며, 능력과 공의성에 의심을 품게 한다. 회개하고 나서 자신에게 귀의하는 피조물에게는 용서를 베푼다는 신, 자기를 거부하는 자에게 벌을 준다는 신... 이렇게 신이 이분법적이어서야 스스로도 잣대를 정확하게 댈 수 없다. 아무리 신이라 해도 애매한 상황은 생기는 법인데, 순종과 불순종, 믿음과 불신으로 딱 자르겠다는 신은 자가당착에 빠질 수 밖에 없으며, 이런 신을 믿고 따라야 할 필요를 도저히 느낄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가진 우월감은 코미디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종교, 자신들의 신앙은 좋은 것이고, 다른 것은 해롭거나 소용이 없다고 정의한다. 어차피 신앙이라는 것은 증거 없는 것에 대하여 감정으로 증거하려는 의도적인 심리행위일 뿐인데, 거기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한다는 자체가 넌센스다. 오히려 기독교적 신앙은 다른 종교의 신앙보다 더 나쁘다. 신앙의 원인 말고 결과를 봤을 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우월감을 가진다. 죄인 주제에 말이다.
기독교는 두려움에 바탕을 둔 종교다. 성경의 일관성을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이 있었기에 그 일관성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았더니, 그것은 주님의 사랑이 아니라 종말과 심판이었다. 그리고 심판 이후에 있을 상위는 곁가지일 뿐이고 심판 자체가 주 관심사였다. 즉, 상 받을 일보다는 벌 받지 않으려는데 집중되어 있었고, 결국 벌에 대한 두려움이 그토록 교리에 매진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두려움의 바탕에는 죄에 대한 잘못된 개념이 들어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라는 이 교의는 결국 자기비하로 이어진다.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자기 비하를 자기들만이 아니라 믿지 않는 모든 인간들에게까지 확장하려 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야훼(그가 정말로 존재한다고 해도)를 따를 만한 가치가 없는 신으로 만든다. 하여간 기독교는 원죄에 기반한 종교로서 원죄를 벗기 위한 노력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결정할 뿐이며, 이것은 기독교 스스로 인간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허상의 존재를 위한 종교임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야훼가 실재로 존재한다면 인간사에 간섭하지 말고 영원히 반성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범죄나 병폐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님과 기독교 자체에까지 비판하는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주절거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