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나 전문가가 증명했다고 해서 모두가 사실일까? (잼 없는 글)
작성일: 2002/06/15
작성자: 몰러
사람들은 흔히 어떤 이론이나 주장에 대한 근거로 과학자나 전문가의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대부분의 경우 합당하기는 하다. 하지만 착오에 의한 자료나 고의적인 말장난(특히 통계치에 대한 해석에서)도 간혹 있다. 합당한 과학적 결론들은 모두 다음에 열거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ㅇ 논리성과 합리성이 있는가?
ㅇ 일화적인 내용을 증거로 내세우는 것을 배제하였는가?
(일반화의 오류를 근절했는가 하는 것이다. 바이오 리듬에 대한 증거나 행운의 편지에 나오는 사례들이 바로 일화적인 내용을 보편으로 확대한 것이다.)
ㅇ 우연성을 배제하였는가?
(행운의 편지는 우연성에 기초한 것이기도 하다. 케네디 대통령이 행운의 편지를 묵살했고 얼마 후 암살된 것이 사실이라 해도 행운의 편지 묵살이 암살 당한 것의 원인이 될 수 없다. 그냥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오비이락을 인과관계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ㅇ 충분하게 실험을 통제하고 결과를 확인하였는가?
(눈을 가리고 책을 읽는 소녀의 경우, 실제로는 코 틈으로 컨닝하였음이 발각되었다. 그 소녀는 목을 완전히 감싸는 보자기를 씌우자 전혀 읽지 못했다. 몰러는 이 점에서 이승헌씨의 활동을 반대한다. 이승헌씨가 바로 이 사기극의 스폰서였다. 이승헌씨가 그것이 사기인지를 알았든 몰랐든...)
ㅇ 애매한 용어를 배제하였는가?
(확실하게 정의되거나 정립된 용어가 아닌 것을 마치 정의된 것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氣, 차크라, 제 3의 눈, 뇌호흡 따위가 그렇다)
ㅇ 반증성이 있는가?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는데 외계인들이 기억을 없애 버려 자세한 것은 생각나지 않는다는 주장의 경우 전혀 증명(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할 방법이 없다. 부정적 증명을 못한다고 해서 긍정이 되는 것이 아니다)
ㅇ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하였는가?
ㅇ 재현성이 있는가?
(주장이나 논문에 대해 다른 사람이 같은 조건으로 실험했을 때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 일화적이거나 일회성이지 않아야 한다)
ㅇ 이론상 간격이 있을 경우 기존 이론이나 법칙을 뒤집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가?
(공기압축 엔진으로 열역학 제2법칙을 뒤집었다고 주장한 인간이 바로 우리 한국에 있었다. 공기를 압축할 전기에너지는 그냥 저절로 생겼을까? 오히려 에너지가 더 많이 소모된다. 그것을 대서특필한 신문사와 TV방송국에 경의를 보낸다)
ㅇ 대등한 과학자의 심사와 검증에 통과하였는가?
(네이처나 사이언스지에 논문에 게재되려면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은 필수다)
과학적 소양이 다소 떨어지는 일반인(물론 몰러도 포함)들의 경우 위의 조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이비 과학자들의 주장에서 헛점을 발견하기 어렵고, 또한 과학자의 착오나 실수는 더더욱 찾아내기 힘들다. 이 글에서는 마지막 조건, 대등한 과학자의 심사에 탈락한 사례로써 비과학적인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고자 한다.
흔히 엉터리 자료를 증거로 제시하면서 이것이 다수의 과학자들이 인정한 것이니 그대로 수용하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심지어 부적합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할 때도 있다. 즉 물리학 박사가 지질학적인 것을 논한 것이라든지, 생물학자가 노아의 방주의 선박공학적 완벽함을 주장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금방 오류를 알아챌 수 있지만, 문제는 사안에 해당하는 분야를 전공한 과학자의 이름으로 증거하려는 경우다. 일반인들은 그러한 전문가적 권위에 의심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수용하기 마련이다.
기독비평까페에서 윤회에 대해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증거를 대라고 하자 이안 스티븐슨이라는 정신의학자가 전생이 대해 수집한 자료를 예로 들었다. 그리고는 “과학자들이 증명한 자료다. 과학이 애들 장난인 줄 아느냐”하면서 ‘과학적 권위’로써 네티즌들의 반박을 누르려고 했다. 하지만 이안 스티븐슨의 저서에 나온 사례들은 단 하나도 반증이나 재현성이 없었으며, 오히려 같은 분야의 과학자와 통계학자에 의해 오류가 지적되었다. 전생기억은 거의 모두 작화된 것이었다. 오류로 밝혀지지 않은 나머지도 반증성이 없었다. 좀더 상세하게 설명하면 작화는 여러가지 단편적인 정보를 두뇌 속에서 재배열하여 하나의 스토리로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작화된 정보는 기억의 한 구석에 머물러 있다가 최면상태가 되면 도출될 수 있다. 심지어는 최면상태에 있는 동안 기억을 작화하기도 한다.
이안 스티븐슨은 이렇게 작화된 기억을 너무나 쉽게 전생기억이라고 결론지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겠다. 미국의 어느 여성이 아일랜드에서 실존했던 사람의 행적을 최면상태에서 기억해냈다. 이 여성은 아일랜드에 가본 적도 없고, 공부해본 적도 없다. 더구나 유명인도 아닌 평범한 특정 아일랜드인에 대해 기억해 냈다고 하니 전생이라고 쉽게 결론 짓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다른 과학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 여성이 어릴 때 이웃에 아일랜드 여인이 있었고, 그 아일랜드 여인이 이 소녀에게 고향(아일랜드)이야기를 종종 들려주곤 했으며, 문제의 특정 아일랜드인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음이 밝혀졌다. 이 내용을 어릴 때에만 듣고 그 이후에는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인이 되면서 잊혀졌다. 하지만 최면 상태에서는 그런 ‘묵혀버린 기억’이 다시 발현하기도 하는 법이다. 2, 30년이 지난 뒤에 아일랜드 출신의 이웃집 아줌마에 대한 기억은 완전히 망각되었지만, 아줌마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만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
“늑대인간의 전설은 그냥 허구이지만 실제 달이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달의 인력에 의해 인체의 호르몬 분비가 변화될 수 있으며, 여성의 생리주기도 양력(30일)보다 음력(28일)에 더 잘 맞는다. 10년 동안 마이애미와 클리블랜드의 통계자료를 보면 보름달이 뜬 날에 살인사건의 빈도수가 높았다. 이렇게 달에 의해 사람들이 변하는 것이 사실이므로 늑대인간의 전설이 생길 법도 하다.”
위의 내용은 미국의 “박사(!)”가 주장한 것이다. 인체의 75%가 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인체도 바다처럼 달의 인력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가설로 시작된 그의 연구는 달의 인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보름과 그믐에 사람들이 심리적 안정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다른 학자에 의해 이 주장은 해체되었다. 그 학자는 클리블랜드의 통계자료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3400여건에 달하는 살인사건이 달의 주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밝혀냈다. 그 학자는 살인사건이 특정시기에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원인과 주기를 다른 곳에서 찾아냈다. 술을 많이 마시게 되는 주말과 각종 명절에 살인사건이 빈발했었던 것이다.
노아의 방주이야기를 또 한번 해야겠다.(둘리님... 광분하지 마셈) 창조주의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노아의 방주... 만약 노아의 방주가 과학적으로, 그리고 고고학적으로 완벽하게 증명만 된다면 진화론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 틀림없다. 멸종된 동물들은 노아의 방주에 타지 못한 것들이고, 화석은 홍수에 의해 죽은 동물이 변성된 것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노아의 방주를 부정하는 증거는 너무나 많다. 게다가 입증자료랍시고 제시하는 것들을 검사해 보면 하나 같이 잘못된 것들이다.
노아의 방주 형태와 크기를 보자. 창조주의자들은 노아의 방주가 풍랑에 대해 가장 안정된 형태라고 주장하며, 미해군 전함(잠수함이었나?)도 노아의 방주를 참조하여 설계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한국의 창조주의자들은 해사연구소(해군사관학교는 아니고 해양대도 더더욱 아니다. 이 연구소가 도대체 있기나 했는지 의심스럽다)의 발표자료를 인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노아의 방주는 굳이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공학자에 의해서 부정된다. 방주의 재료는 나무이다. 나무의 강도는 형편없이 약하다. 그러므로 목선은 일정 크기 이상으로 만들 수 없다. 더군다나 축구장보다 긴 목선은 물에 뜨는 순간 두동강이 나버린다.
두동강이 나는 모양은 영화 타이타닉에 나온 것과 반대 방향이 될 것이다. 타이타닉의 경우 이물이나 고물 중 한 쪽이 침수되어 가라앉고 반대쪽은 공중으로 떴다. 한 쪽이 공중으로 뜨면서 그 무게를 못 이기고 두동강이 나면서 침몰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럼 노아의 방주는 어떻게 될까? 방주가 물에 뜨면 방주 밑바닥 전체에 걸쳐 부력이 작용한다. 이 부력에 의해 방주는 마치 양쪽을 잡고 들어올린 긴 막대기의 중심부가 아래로 휘는 것처럼 힘을 받는다. 건축공사에 쓰는 철근은 길이가 1m일 때는 사람의 힘으로 휘기가 힘들지만, 길이가 100m쯤 되면 양쪽을 들어올리자마자 많이 휘게 된다. 물론 방주의 중앙부위도 부력에 의해 지지되긴 하지만 방주 전체를 보았을 때 고물과 이물에 걸린 힘에 비하면 너무나 작다. 결국 방주는 중심부가 아래로 부러지게 된다. 목선은 나무의 재질에 따라 다르지만 하여간 무작정 크게 만들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나무라도 노아의 방주 정도의 사이즈가 되면 부력에 의해 발생하는 응력을 견딜 수 없다. 이렇게 존재 자체가 불가능(실제로는 진수가 불가능)한 방주에 동물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실으며, 얼마나 실을 수 있고 배설물처리나 호흡을 어떻게 하고 등등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방주를 튼튼하게 해주셔서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면 이때부터 이미 비과학적이다. 왜냐하면 반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화석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인간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하여 C14의 반감기를 임의로 조정했다고 하거나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 하면 도무지 증명할 길이 없고 믿음만 강조될 뿐이다. 이런 식으로 주장을 하면서도 창조가 과학적으로 증명된다고 우기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다. 똑같은 방법으로 억지(교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를 쓸 수밖에...
“하나님인지 나부랭인지 내 눈앞에 데려 놔 봐.”
너무 억지스러운가? 그럼 똑같은 방주를 직접 만들어서 남해바다에 띄워봐라. 말의 이빨 수가 몇 개인지를 가지고 아웅다웅하는 것보다는 말 아가리 벌리고 직접 세어보면 되듯이 방주를 직접 만들어 띄워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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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또라이 같은 인간이 피장파장의 오류를 범할 때가 있다.
“성경을 종이쪼가리, 쓰레기라 믿을 수 없다는 당신들이, 마찬가지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과학논문이나 서적은 어찌 그리도 철석같이 믿을 수 있는가? 당신이 빛의 속도를 직접 재봤나?”
과학논문은 바이블과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바이블은 그 내용 중 한가지도 증명된 적이 없고, 또한 증명할 만한 성질의 것도 아니며, 증명할 가치도 없다. 하지만 논문은 가설-실험편성-실험-자료도출/수집-결론-심사-재가설 및 재실험 등 여러 단계를 거치며 철저하게 검증된 것이다. 물론 과학을 빙자한 사이비도 있고, 실험결과를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할 수도 있으며, 실험 자체가 불가능하여 증명을 못할 경우도 있다. 아인시타인이 상대성 이론으로는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또한 확정된 결과조차도 나중에 부정되거나 수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과학은 연구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다룬다. 바이블은 형이상학적인 고민의 대상은 될지언정(필자에게는 이것조차 불만이긴 하지만) 과학적인 연구대상은 절대로 될 수 없다.
몰러 같은 공돌이가 바이블을 종이쪼가리, 쓰레기라고 할 때는 일차적으로는 과학적인 검토과제가 될 수 없다는 뜻이며, 나아가서 인문학, 경제학, 윤리 등등의 측면으로 봐도 다룰 만한 가치가 없다. 다만 2000여년간 세계사에 미친 영향(주로 악영향)을 고려하여 관련된 분야를 연구할 가치는 있다.
* 음악은 예외로 한다. 음악사에 있어서 기독교가 미친 공헌도는 지대하다고 인정한다. 물론 이마저도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을 찬양하기 위해 발전시켰던 것이라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하여간 대위법을 위시한 각종 기법들이 기독교에 의해 발전되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도 개신교는 용서가 안 된다. 음악을 퇴보시키고 있는 것이 찬송가와 복음성가이기 때문이다.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 받기를 원하네...”(띠바. 교회 떠난지 10년이 넘어도 머리에 남아 있네)
가사는 문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전혀 가치가 없으며 음악적으로는 동요 이하의 레벨이다. 사실 찬송가를 신앙과 전도목적의 음악이라고 한다면 몰러가 음악적인 비난을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찬송가를 가장 완성된 형태의 음악이라고 개소리하는 인간이 있었기에 딴죽거려봤다.
과학적 소양, 논리적 사고, 냉철한 이성... 쉽게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몰러가 기독교인의 논리적 오류를 정리하다가 예수사냥님에게 호되게 깨진 것처럼...(ㅋㅋㅋ) 하지만 쉽지 않을 뿐이지 조금만 공부하면 오류를 찾아내고 지적할 수 있다. 과학적, 논리적 사고를 배양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가장 쉬운 방법은 일단 의심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의심만 하는 것이 아니다. 건설적인 검토를 수반한 의심을 해야한다. 인간관계에서는 신뢰를 전제로 해야 하지만, 학술적인 연구나 실험 결과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수행이 되었는지, 오류가 있지는 않은지 일단 의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창조과학은 의심이고 자시고 필요없다. 억지일 뿐임이 이미 판명되었으니 말이다.
둘째로, 어떤 사안이 사실이라고 하여 관련된 사안들까지 사실인 것으로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최면의 경우 그 메카니즘은 최면술사가 아니라 과학자(엄밀하게 정신분석학자들)들에 의해서 그 사실성이 증명되었다. 과학자들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최면은 아직도 기만에 가득찬 협잡이나 주술적인 행위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면이 사실이라는 것으로 밝혀진 뒤에 피술자가 최면상태에서 증언한 것을 무조건 사실로 간주하는 비과학적인 태도가 나타났다. 사람이 최면상태에 빠지고, 평상시에 기억하지 못했던 것을 기억해 내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지만, 그 기억내용이 무조건 사실적인 것은 아니다.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말이다.
세째로, 많은 분야에 대해, 그리고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이다. 물론 많은 분야보다는 깊이 있는 것이 더 좋다. 몰러처럼 권총만 여러 개 갖고 있다가는 HMG를 들고 있는 전문가에게 박살나기 쉬우니까... 하지만 여러 분야를 두루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사물이나 사안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쉽게 맹신하는 오류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이 말년에 말했듯이 “말할 수 없거든 입을 다물어야” 한다. 이 말은 원래 모든 것을 논리적 언어로써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고백이었지만, 요즘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말 그대로 모르면 입 다물란 뜻으로 말이다. 이런 상태에 놓이기 전에 미리 공부를 하자.
마지막으로 세르반테스의 말을 인용하며 끝을 맺기로 한다.
“과학은 그 자체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과학을 빙자하여 인간들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