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충돌을 제대로 보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충돌을 제대로 보자.

몰러 0 2,834 2005.06.20 16:44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충돌을 제대로 보자.    
  
 
 
작성일: 2002/04/17
작성자: 몰러
  
 
휴지통에 올리려다가 자.게에 올려봅니다.
성격이 맞지 않다는 여론이 많으면 휴지통으로 옮기겠습니다.

물론 엄청 깁니다. ^^

덜 떨어진 인간들이 무조건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중동사태에 무심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정보제공을 하여 유가상승에 대한 위기감이라도 갖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리해 봤습니다. 중동사태는 겉보기엔 종교와 영토에 대한 분쟁이라고 단정하기 쉽지만, 그렇게 단순한 종교/민족적 갈등이기만 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충돌은 사실 종교를 빙자하여 자신들의 이익과 생존을 추구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고, 강대국들이 적극적인 해결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자신들이 바로 원인제공을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틀어쥐고 있는 것은 유대인들이기 때문에 중동사태 해결에 소극적이다”라는 해석은 단순하고 나태하기 이를 데 없는 음모론적인 것이며, 이런 해석을 저는 반대합니다.

쌍방이 대립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를 무시한 해석은 단순한 반미감정, 반이스라엘 감정으로 귀착될 우려가 있으며, 이 논리는 멍청한 일부 기독도들에게 꼬투리 잡힐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냉정하게 정세를 판단하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변명 하나... 제 의견이 100% 옳은 것도 아니고 주관성도 배제하지 않았으므로 받아들일 분만 받아들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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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원인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이하 “팔이 분쟁”)의 뿌리는 3,300여년 전 유대민족이 가나안(팔레스타인)을 정복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부터 따지는 것은 조금 무의미하다. 우리가 중국에게 요동이나 만주를 내놓으라고 할 수 없고, 미국의 백인들에게 유럽으로 돌아가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로 말이다. 단지 원주인(원주민의 오타가 아님)에게 똑바로 대해주라는 질타와 감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질타를 새겨듣는 이는 별로 없다.

그래도 원인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모두 알다시피 팔이 분쟁의 실질적인 시작은 1917년 벨푸어 선언부터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시오니즘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일단 전쟁에서 이겨야 하고 유대인들의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독일측 세력인 오스만 투르크의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서는 아랍인들의 협력도 필요했다. 결국 맥마흔 선언을 하고 말았는데, 가나안에 유대인들의 나라를 세워주기로 한 벨푸어 선언과 모순된 외교정책으로 인해 영국은 오늘날의 비극의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딱딱한 역사보기가 싫으신 분은 아라비아의 로렌스, 바람과 라이온 등 웅장한 스케일의 사막영화 몇 가지를 보시면 당시의 중동역사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작가의 편향된 시각이 묻어 있는 영화이고, 서구적인 시각의 영화라는 점을 간과하지 마시고...)

이렇듯 모순된 두 약속이 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위임통치 하에 들어갔고, 유대인들은 벨푸어 선언을 손에 들고 팔레스타인에 일거 진입했으니, 기존에 살던 아랍인과의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이후 아랍권은 단결하여 이스라엘을 몰아내기로 했으며 4차에 걸친 중동전쟁이 발발하였다. 하지만, 아랍권은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요건이 별로 없었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무기체계에도 불구하고 이 전력들을 결집할 구심체가 없었고,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힘을 집중하지 않고 주도권 장악에 골몰해 있었던 반면에 이스라엘은 정보획득, 분석, 대응에서부터 서구로부터 지원 받은 무기체계의 질적인 우수함과 힘의 집중, 그리고 유연한 전력 전개 등으로 각 중동전쟁의 초기에는 조금 밀렸다(이스라엘이 선제공격 했던 한 차례를 제외하고)가도 금방 열세를 만회하고 오히려 영토를 늘여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살던 고향과 집에서 내쫓긴 팔레스타인인을 보호하고 대변해주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테러라는 극단적인 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탄압의 빌미를 제공하고 미국을 위시한 서구사회가 이스라엘 편을 들게 하는 악순환을 낳게 된 것이다(PLO조차도 1973년까지는 테러단체로 규정되었다).


ㅇ 불완전한 평화 협정, 그리고 인티파타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1979년 캠프데이비드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그 이후에는 사실상 전면전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외형적으로 평화를 유지해왔다. 클린턴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중동에 대한 적극적인 중재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스라엘은 점령지를 팔레스타인에 인도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오슬로 협정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1999년에 이르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다시 반목하기 시작한다. 핵심쟁점에 대한 이견 때문에 협정의 이행은 지지부진하고, 이스라엘은 영토반환은 계속 지연되었다. 결국 이스라엘을 강경파가 집권한 이후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총리의 통곡의 벽 순례 강행으로 발생한 투석전을 발화점으로 하여 팔레스타인의 민중봉기, 즉 인티파타가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이 오슬로 협정을 이행할 의사가 없다고 간주한 이슬람 과격단체는 한동안 중단했던 자폭테러를 시작했고,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원칙인 극렬보복을 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과격분자의 자폭공격이 계속되자 이스라엘은 아라파트를 집무실에 연금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등 강력하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과격단체들이 아라파트의 영향권밖에 있다고 이스라엘측이 인식을 하고, 아라파트를 협상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한편 평화적 온건노선을 취해온 전 수상 바라크에 비해 샤론은 중동전 전쟁영웅으로 강성적 인물이다.

ㅇ 샤론이 아라파트를 왕따하려는 이유

샤론은 아라파트를 연금하기 이전에 평화협상 재개조건을 내건 적이 있는데 이것은 실현 불가능한 전제조건이다. 그 조건이란 다름 아닌 일주일 이상의 대이스라엘 테러 중지이다. 이것이 왜 불가능한 전제조건인지 살펴보자.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자치경찰을 비롯한 약 3만 명의 무장인력을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 3만 명은 아라파트의 심복이라기보다는 단지 애국심에 불타는 팔레스타인의 청년들일 뿐이다. 즉 아라파트의 노선에 100% 동조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 중 상당수는 아라파트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리고, 이슬람 과격단체는 애초부터 아라파트의 통제권 밖에 있었다. 이들의 테러활동에 대하여 아라파트는 사실상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아라파트가 테러에 연루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아라파트에게 일주일간의 테러중지를 요구하고 있다. 분명히 아라파트가 이스라엘과의 대화의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그가 아무런 대화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간주하면서 자신들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행동을 정당화하고 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합법적이고 정치적 실체이며 국제사회의 일원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와해시키려 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와해되면 남은 것은 하마스 같은 과격단체 뿐이며, 이들은 명백한 테러집단이므로 작년 9.11 사태 이후 상기된 과격테러단체에 대한 국제적 여론을 등에 업고 이들에 대한 군사적 공세를 아무 거리낌없이 취할 수 있는 것이다.


ㅇ 그럼 왜 이스라엘은 대화를 거부하려는 것일까?

이스라엘이 아랍권과 거리를 두려는 것은 종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다. 이제까지 이스라엘은 한번도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아랍권을 공격한 적이 없다. 아랍권이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분열된 여론을 통일시키려는 의도로, 그리고 테러를 정당화하기 위한 의도로 지하드를 주장하고 있을 뿐 이스라엘은 단순히 자신들의 생존문제를 내걸고 선제공격성의 군사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대화를 재개하지 않으려는 행동을 하고 있다. 이는 협상의 여지를 차단하여 요단강 서안을 영구히 합병하려는 시도임이 명백하다. 왜 요단강 서안인가? 이것은 팔레스타인 난민문제, 동 예루살렘 관할권, 팔레스타인 영토 내 이스라엘 정착촌 문제 등이 얽혀있다.

약 370만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으며, 궁극적인 희망은 가자지구와 요단강 서안에서 완전한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독립국가의 수도는 예루살렘이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이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이상이다. 그럼,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자. 현재 500만 명의 유대인과 100만 명의 아랍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스라엘로서는 370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유입될 경우 아랍인의 비율이 절반이 되면서 유대인 국가라는 정체성이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궁극적인 목적, 독립국가가 선포되면 이스라엘로서는 턱 밑에 적의 칼이 들어오도록 용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다. 이스라엘의 시각으로는 국가급 테러단체가 자기집 안방 문을 마음대로 열고 닫을 수 있게 되는, 성가신 정도가 아니라 민족운명의 위기로까지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예루살렘 문제를 보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 모두 예루살렘의 구시가지를 역사와 종교의 중심지로 간주하여 수도로 삼으려 하고 있다. 즉 예루살렘에 대한 관할권은 정통성 또는 자존심의 문제가 된다. 그런데 2000년 7월 바라크 전 수상은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상당부분을 팔레스타인에게 넘기는 협상안에 대해 승인하였다. 전세계가 깜짝 놀라고 중동에 해빙무드가 찾아오리란 희망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던 이 협상안 때문에 작년 2월 바라크는 결국 선거에서 패하고 만다. 그렇다고 예루살렘 양보가 선거패배의 전적인 원인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스라엘 국민들에게는 그런 일례만으로도 바라크의 대팔레스타인 대응방식이 불만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오슬로 협정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요단강 서안에서 철수하게 되어 있었지만 지금도 전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인들을 이주시켜 정착시키려 하고 있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주는 미국조차도 이 문제만큼은 이스라엘에게 협정준수를 촉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이를 거부하는 이유는 뭘까? 팔레스타인 영토내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문제는 사실 단순히 이스라엘의 억지로만 보기에는 미묘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앞서 이야기한 팔레스타인 난민 유입을 차단하려는 정책과 맞물려 있다고 보는 것이 답이 될 듯 하다. 이스라엘은 유랑의 세월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너무나 강하다. 결국 팔레스타인 난민의 유입은 이스라엘 국가안전을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자지구와 요단강 서안을 내어줄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만으로는 이스라엘의 의도나 행동은 억지부리고 있다는 비난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자지구, 요단강 서안은 이스라엘 건국 당시에는 분명히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니었다. 골란고원과 함께 3차 중동전 후 점령한 아랍의 땅이고, 철수하겠다는 약속도 하였으면 분명히 지켜야 한다. 그리고, 이집트의 뒤를 이어 아랍권의 지도국가가 된 사우디의 왕세자가 올해 초에 내놓은 중동평화안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문제의 지역인 3차 중동전 점령지에서 철수하면 아랍 전체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 하겠다고 하였다. 이스라엘이 이것을 믿지 못한다면 중동의 평화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ㅇ 공존을 거부하는 신념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양측이 쌍방을 믿지 못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것은 서두에서 잠시 젖혀두었던 문제, 즉 수천년에 걸쳐 형성된 뿌리깊은 종교적, 민족적 반목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치고 들어온 이스라엘에 대해 근본적으로는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다만 지금은 현실을 인정하여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완전히 몰아내겠다는 정책은 포기한 체, 단지 팔레스타인 지역 한켠에서 독립국가를 이루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은 아랍에게 약간의 틈이라도 주게 되면 곧 이스라엘 멸망으로 이어진다는 위기의식을 항상 견지하고 있다. 그래서 난민 수용이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입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서 종교가 문제가 되었을 때는 항상 같은 패턴을 보인다. 확고한 종교적 신념이 독단으로 흘러서 배타성을 띨 때이다. 신념과 독단은 분명히 성격이 다른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구별하는 기준은 모호하다. 그리고, 종교적 독단이 권력을 쥐게 되었을 때는 신의 이름으로 무자비한 살육과 복수가 뒤따른다. 또한, 이 상처는 쉽사리 치유되지 않는다. 상대방을 대할 때, 대화를 할 때는 분명히 피해의식과 선입관이 전제되며, 협상이 잘 되지 않을 때는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일쑤다. 이러한 관념이 전제된 상태에서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상대방을 죽여야 한다는 극단적인 배타성이 대두되기 마련이다.


ㅇ 그럼 분쟁의 해결방안은 무엇인가?

충돌을 종식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상호간의 뿌리깊은 불신과 상호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신념을 버리라거나, 성경과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형제애로 서로를 사랑하고, 인내와 관용으로 공존방안을 찾아라 등등 근원적인 주문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오랜 시일을 요구하는 것이며,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는 한은 불가능한 방안이다. 수천년간 쌓였던 반목을 어찌 몇일간 진행되는 협상으로 해소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범아랍주의와 시오니즘은 태생부터 물과 기름 같은 관계인데 말이다.

결국 확실한 해결방안은 없다. 차선책으로서 현실적인 방안이 요구된다. 현상적인 것으로써 정당한 논리에 입각하여 제3의 세력이 쌍방을 견제해야 한다. 일단은 테러행위가 어떠한 정당성도 띠지 못하도록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공평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테러의 이유는 하나뿐이다. 정당한 방법으로는 아무런 의사관철이 되지 않을 때 말이다. 부당함을 고발하고 타파하기 위해 또 다른 부당함을 내세우는게 바로 테러행위가 아닌가? 이 점에서 미국이 펼치는 반테러정책과 각종 성명들은 조삼모사에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과 다를 바 없으며, 이슬람 과격단체들의 테러리즘에 상대적으로 정당성을 부여한다. 분명히 테러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코란의 가르침과도 상치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국과 강대국들은 또한 이스라엘에 대해서 그들이 가진 생존의 위기감을 불식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를 건설하더라도 이스라엘에 대해 아무런 위협도 주지 않을 것이며, 이스라엘의 국가정체성을 흔들지 않도록 조치하겠다는 보증을 해야 한다. 이제껏 해왔던 반테러리즘에 입각한 군사지원은 사실 이스라엘에게는 근본적인 안정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스라엘이 중동에서만큼은 CIA를 능가하는 정보/공작기관 모사드를 키운 것이나, 우리나라처럼 미국편향적이지 않으며, 무기체계를 다양화하고 100%에 가까운 자주국방을 실현한 것은 이스라엘도 미국을 믿지 않는다는 점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아직도 미국이 이스라엘을 맘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은 클린턴 정부나 부시정부나 마찬가지이지만, 이스라엘은 미국을 믿지도 의존하지도 않는다. 이 점을 간과한 미국의 대중동정책은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리해서 해결방안을 말하자면, 팔레스타인이 궁극적 소망인 독립국가 건설을 이룰 수 있도록 국제적인 원조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이스라엘이 이를 용인할 수 있도록 아랍권이 이스라엘의 안전을 보장하고 강대국들이 이를 보증해야 한다. 단순하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요단강 서안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난민이 고향으로 복귀하도록 하는 것만 조치하는 것은 결국 한지붕에 원수집안이 같이 사는 꼴이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후 대두될 문제인 예루살렘 관할권의 향방은 종교적 이유만 배제한다면 하등 문제의 소지가 없지만, 그것은 어쩌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문제이다. 예루살렘을 동서로 분할하되 동예루살렘의 구시가에 위치한 모리아산 일대를 유대, 아랍, 그리고 기독교계가 공동관리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종이호랑이나 마찬가지인 UN(중동 당사국들에게 UN은 별 의미 없다)이 제시한 예루살렘 분할안은 좀더 구체적인 힘의 실체인 미국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아랍권과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대해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예루살렘을 독차지하려 들면 십자군 전쟁과 같은 소요와 분쟁이 계속 발생할 것이다.

몇 달 전에 TV에서 방영된 아랍어린이와 유대어린이가 함께 공부하는 학교는 중동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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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들이 바라는 방안이란 소위 종교지도자들을 현실권력 앞에 굴복시키고, 성전 바깥으로는 어떠한 목소리도 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죠. 그렇게만 된다면 중동문제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문제는 권력자들이 종교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당성을 추구한다는데 있기에 거의 실현 불가능한 방안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경찰국가임을 자처하는 미국은 진정한 공정성을 스스로 확보해야 합니다. 현재 제일 큰 파워를 갖고 있음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기에 타국가가 미국의 경찰국가적 위상을 깎아내릴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아랍의 석유무기화를 견제하기 위한 아랍권 분열획책과 유난스런 이스라엘 지원은 결국 이스라엘의 장기적인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기에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을 더디게 합니다. 자국의 이익과 안전만 추구하려는 제국주의적인 정책은 문제를 꼬이게 만듭니다. 더 이상 Fucking U.S.A.라는 구호가 나오지 않도록 미국은 공평무사한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실현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르지만...)

근래에 부시의 대 중동 외교노선이 조금 변경이 된 것 같기는 하네요. 국무장관을 보내서 협상을 유도하기도 하고... 또 샤론이 이제까지와 조금은 다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아랍권의 협박(석유금수, 감산)이 먹혀들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진행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죠.

다른 사람들이 싸울 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경우보다는, 시누이.올케 싸움에 저녁 못 얻어 먹는 경우가 더 많고, 우리나라는 후자에 속하죠.

잘 돼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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