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영과 회광반조(廻光返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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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뿔님의 칼럼입니다

우주영과 회광반조(廻光返照)

쥐뿔! 0 3,310 2002.10.16 10:12
우주영이가 얼마전 느닺없이 나타나서 휘젖는 폼이, 작년여름 마당에 온 게시판에 비아냥과 아이디 사칭과 셀 수 없는 멀티아이디로 장난치다가 스스로 물러간 때를 생각나게 한다. 여전히 똑같은 짓거리를 지금에 와서도 반복하니 사람이란 확실히 변키 어려운 것이며, 저런 넘의 기독교적 회개나 예수를 영접한 후의 변화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헛구호임을 알게 한다.

불교수련 용어에 회광변조(廻光返照)라는 게 있다. 외부대상을 관하는 데서 스스로 돌이켜 반조함을 뜯하는 말이니, 깨달음의 근본을 자신의 내면을 돌아봄에서 얻고 확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불교의 회광반조를 이야기 할 것이 없고 다만 일상용어에서 쓰는 이 말을 들어 우주영이란 허무맹랑한 잡것이 예수를 오염시키는지를 보고야 만다.

사람이 살다 죽기 전에, 또는 오랜동안 아프고 자리에누워 생사를 오락갈락 하다 한 순간에 맑은 정신을 보이고 깨어난다. 사람들은 그것을 오인하여 차도가 있겠거니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한 생명의 불꽃이 꺼지지 전에 잠시 마지막 생기를 추스리는 것이다.

이때에는 맑은 정신이 돌아와 자식을 부르고, 친지를 불러서 생의 마무리 유언도 하고 하여 자기삶을 돌아보는 마지막 시간인 것이다. 혼수상태에서 어떤 꿈속이나 경험을 했느냐도 이때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고, 목사네들은 이 노인네가 예수교인이 아니었을 때 교인자식들의 부탁으로 마지막 세례를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촛불이 가늘어지다 꺼지기 전에 한차례 환하게 빛을 발하고 꺼진다. 그걸 회광반조라 한다. 다행히 생의 마무리나 자신의 죄나 미안함을 표현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고, 이때는 진솔할 수 있으니 보내는 사람이나 가는 사람이나 서로의 잘잘못을 빌고 용서하고 하는 기회이다. 어차피 죽음의 문턱 앞에 와서까지 위선에 가식이란 의미없는 것이고, 마무리 부탁유언을 거짓으로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제께 어제 우주영이의 진솔한 신앙의 고백을 자유게시판에서 보았다. 그걸 보면서 아 이넘도 이제는 우주영이란 제 이름도 쓰면서, 진솔한 대화의 장에 나오려나 보다 하고 내심 기뻤다. 그러나.....두 글 모두에 달려나오는 댓글싸움은 예전의 몹쓸 짓이나 생각이 전혀 변화없이 표출되는 것이 아닌가?

제 스스로 회광을 하려했으나 과거에 지은 죄 때문에 반조를 할 수 없음이, 또한 빌고 용서하는 일이 반조에 미치지 못하니, 제 스스로 변하지 않은 진솔이 부족함이요, 또한 거짓의 그것을 받아줄 수 없는 경험인이 있기 때문이다.

회광반조의 기독교적 변용이 바로 죄인됨의 고백이요, 예수를 영접함으로 새사람이 되었다 할진대, 그게 입으로만 손으로만 "예수여 주여 나는 종입니다 죄인입니다" 아무리 외쳐봤자 제 행실을 주관하는 내면까지 변치 않고서야 새사람이 될 수도 없음이요, 목욕을 하지도 않은채 새옷으로만 갈아입은 꼴이니 제몸의 때와 악취를 간직한 채 외식하는 거와 다른가?

우주영이가 회광반조의 경지로 기독교인이 된다면 이제까지의 못된 생각, 삿된 짓거리를 멈추어야만이 가능한 것이고, 그 터전에서 서로 안티든 기독교인이든 마음에 든 대화가 가능하니, 그걸 도덕적 법정용어로써 감해주고 사해주는 전제조건 "개전의 정"이 참작되는게 아닌가?

저넘은 그래서 거듭난 기독교인도 아니고, 오직 말씀과 성경지식으로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라 할 것이다.
나는 내혼자만의 법정에서 선고하건대 건방지게도 "우주영이는 개전의 정을 참작할 여지가 없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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