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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스승의 날이지.........쳇 군사부일체라?
쥐뿔!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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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15 13:31
오늘은 5월15일, 스승의 날이다. 스승이란 가치가 다분히 유교적 바탕인 이 나라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영향적 그림자는 아직도 상당하다.
마침 이 나라에 불고 있는 전교조와 교총의 대결 속에서 실제 교육의 대상주체인 학생은 없다. 두 단체 모두 학생과 교육을 그 모토로 사용하지만, 막상 앙꼬없는 진빵처럼 알맹이는 없이 껍데기 싸움이다.
조선시대의 유교적 가치는 君師父一體로서 볼 수 있는데, 임군이 그 주인이요, 스승은 유교적 임군을 지탱하는 체제유지적 장치요, 애비는 그 꼬래비로서 통치적 말단의 서열적 가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군사부일체를 주창하는 집단은 분명 임군이나 유학자들 자신들이라는 증거를 꼭 말해야 할 필요는 없겠다.
박정희 전두환시절인 6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항상 주창해 왔던게 軍官民一體다. 그 군부통치 시절에 최우선의 가치는 군대요, 관료지배를 통하여 대상인 백성이 존재하는 권력 중심가치의 서열이었다. 이게 문민시대쯤에 와서야 이제 民官軍으로 바꾸어 불러도 여전히 군이란 가치가 남아 있으니, 그게 분단의 현실상 권력의 한 부분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것을 증명해준다.
출애굽기의 모세와 아론이라는 두 형제는, 실제적으로 형제이든 아니든 지금으로 보면 정치적 리더와 제사적 리더이다. 왕이 없던 시절이니, 모세가 왕만 아니었고 여호와라는 왕역할의 총리나 다름없던 모세와, 출애굽기에서 모세의 보조적 조력자로 기술되는 레위족 아론은, 분명 정치적 유대왕국의 입김하에서 쓰여졌을 것이고, 금송아지 사건과 같이 제사장족인 레위를 까내려야 했던 정치적 왕들의 치하에서 집필되었다고 볼수 있다.
신정일치는 여호와라는 왕의 정치적 우위를 나타내는 것이겠고, 제정일치는 제사장 우위의 개념이므로,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북이스라에이나 앗시리아에 의해 망한 유다왕국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중단이 이제 제정일치인 레위족 중심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니 열왕기 같은 역사적 기록은 정치적 왕을 까내리는 요소가 있는 것이고, 이사야 같은 선지자적 기록 또한 왕을 견제하는 제사적 시각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만해도 백성이 꼬래비 서열에라도 있지만, 신정정치인 유대놈들의 대결구도는 정치와 종교의 싸움만 있을뿐, 백성은 안중에 없다. 제사문학의 주체는 다분히 사제적인 위치에서 정치위에 군림하는 정신적 또는 종교적 가치만이 중요해서,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제사적 중심이라서 일단은 정치적 왕을 견제하지만, 역시도 백성은 안중에 없다.
한마디로 구약 역사는 정치적 사제적 싸움의 연장으로 덮여 있고, 정치적인 실수를 제사장이 여호와라는 신의 이름을 도용하여 까는 연장이라고 해도 틀린게 아니다. 그러니 그 안에 백성이 없다. 백성은 권력싸움의 피해자로써 응징의 전가만 될뿐이다.
어느 경전이든 다 그 시각적 관점이 있는 것이며, 구약은 제사장적인 위치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신민을 누르는 억압적 기록이지, 결코 그 안에 백성을 위하는게 주안점이 아니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실제로 스승이란 위치가 대단한 것도 아니다. 전교조와 교총이 싸우는 사이에도 학생들은 수업하고, 진학하고, 졸업하여 결국은 졸없생이라는 학교와는 남남이 되는 것이다. 학교라는 주체는 얼뜻 보기에 학생이 주인인것 같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 학생은 그저 6년이나 3년이 지나면 강제로 나가야 하는 한시적 존재요, 그 학교를 유지하고 존속시키는건 교육주체인 교사와 재단이다.
마치, 유대의 제정의 싸움마냥 둘의 쌈박질에 백성은 응당 신의 징벌로 애매하게 죽어나가는 일들이 있었듯이, 우리 현실에서 보면 두 교육집단의 정의로운 싸움속에 학생들은 막상 보호되지 않는다.
스승의 날에 그저 유대와 연관되이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