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소크라테스가 예수를 도용하다

그리하여........소크라테스가 예수를 도용하다

쥐뿔! 0 4,811 2004.06.16 21:05
어느 설교나 신학관련집을 보면, 자기가 말하고 싶은 부분부분을 성경 66권 여기저기를 시대를 넘나들고 권장을 뛰어다니면서 곶감 빼먹듯이 긁어 모은다. 시편에서 한구절, 창세기에서 한구절, 히브리서 한구절, 고린도전서......바부탱이들은 이제 성경속에 66권이 모아져 있으니까 그게 뒤죽박죽 함부러 막 가져다 붙여도 타당한양 비유네, 계시네, 연관 구절이네 하면서 막퍼다 나르면 다되는 줄 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이 바보같은 짓을 해도, 너무도 오랫동안 교리를 만들기에 늘상 그래왔으므로 당연하다는 듯이, 또 그렇게 취합된 글을 접하는 기독교인은 마치 새삼 큰 진리를 깨달은냥 아멘아멘을 외쳐대고 있으니 참으로 가소로울 뿐이다.

언어를 분석하는 유명한 방법 중에 공시성과 통시성이라는게 있다. 공시성이라 함은 지금 시대의 표준과 지역별 사투리를 말하고, 통시성은 표준어의 역사적 통찰을 말한다. 이것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상하는 시간 역사축이고, 좌우는 시대공유축이다. 예를 들어 세종은 세로축으로 보면 조선 초기이고, 가로축으로 보면 조선 전역이다. 세종조 이전에는 한글이 없었다. 이전에 유사한 것이라고는 이두나 가림토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니 한글에 관한 연구논문은 분명 세종조 전으로 올라가면 안된다 (통시). 또한 세종조 때에는 한글 반포후에 여러권의 시범적 한글도서 편찬이 있었다 (공시). 이 공시와 통시의 축을 가지고 성경풀이에 대입해보자.

바다라는 기독교인에게 창세기가 출애굽기보다 먼져냐고 물었더니 요런조런 성경성립관을 대면서 그렇단다. 사실 바다도 출애굽기가 창세기보다 먼저 쓰여진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물었었다. 출애굽기 호렙산에서 야훼는 처음으로 유대민족에게 자기의 이름을 알려준다고 했다. 그런데 창세기의 유대조상들은 이미 여호와를 알고 있었고, 창세기 2장의 창조기사에도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온다.

그러니 오경의 역사가 모세의 순차적 기록모음인양 알고 있는 것들에게는 여호와의 이름이 잊혀졌다가 다시 나타났다는 결론이나, 야훼는 창세 때부터 그 이름을 가지고 있는양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건 시간의 통시성을 대입하면 금방 뽀록난다. 그래프의 통시축을 기원전 9-10세기경 출애굽기가 쓰여진 시점으로 가져가 보자. 이것도 사실 모세로부터는 4,5백년 후의 일이지만 어쨌든.......이때는 창세기라는 것은 까마득하게도 4백년뒤에나 쓰여지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 미래에서 카피해서 적용할 수 없기에 도움을 받을 수도 받아도 안된다.

즉 출애굽기 저작시절에는 야훼가 분명 처음으로 알려졌다는 기록 자체만이 있었다. 야훼 도입자는 분명 모세이다. 이것은 창세기 그들의 조상이 야훼라는 이름을 몰랐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4-5백년이나 지난 후에 쓰여진 창세기에는 야훼가 이미 창세때부터 등장하는 것으로 된다.

그러면 이 창세기의 통시축을 아브라함대인 기원전 18-20세기로 가져가면, 이제 출애굽의 야훼이름 처음 알려준 구절은 거짓이 된다. 그러므로 시대를 거꾸로 돌려 이름을 부여하는 출애굽 이전의 야훼이름 기사는 모두가 거짓이다. 너무도 간단하다. 왜냐하면 출애굽 이전에는 창세기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창세기에 부여된 야훼 이름은 출애굽기의 시대역도용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소크라테스가 예수의 말을 매래카피했다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하스바스라는 비유풀이자는 아가서 술람미 여인의 배꼽에서 혼합된 포도주는 신약과 구약의 어우러짐이고, 둥근 가슴은 생명의 양식인 예수의 말씀을 비유한다고 가르진다. 이것을 아가서의 시간축으로 잘라보면 금방 뽀록난다. 아가서는 수메르 신성결혼 노래를 카피해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으로 그린다. 물론 하나님과 유대민족의 영적인 비유라고 처음 해석했던 오리게네스는 삼위일체로 말미암아 이단이 되었다.

여기서 시간축은 하향하지 않는다. 시간축이 오늘에 있다면 우리는 미래의 일을 알지 못한다. 과거가 미래를 카피하지 않기 때문에 초기교부들이 말했던 악마의 선도용조차 통시축으로 보면 야훼라도 돌리지 못한다. 아가서의 젖가슴이나 꼭지, 허벅지는 수메루 여신을 말한다. 수메루 여신의 젖가슴은 야훼나 예수의 생명젖줄인 말씀이 아니다. 수메루 여신의 배꼽 위에서 섞여진 포도주는 구약과 신약의 어우러진 완전이 아니다. 시간축은 하향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3천년 전에 쓰여진 수메루 여신의 젖꼭지는 예수의 생명말씀이 될 수가 없다.

비유풀이 집단이 말하는 잠언에는 야훼하나님의 개념이 없다. 왜냐하면 고대 이집트 수메루 바빌론 등지에서 떠돌던 금언 명언 속담을 채록 수집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축은 채집당시의 시간 축에 놓고 본다면, 결코 후대인 예수신약 시대와 비유매치를 하면 안된다.

욥기 또한 야훼의 개념이 없던 고대 수메르의 지혜서를 카피해왔다. 만일 욥기나 잠언, 아가서를 야훼랑 매치시키려거든 그 신은 출애굽의 야훼가 처음 등장했던 그 한참 전에 이미 있었던 다른 신 이집트 우툼 라, 바벨론 마르둑, 수메루 엔릴 이난나가 그 대상이다. 결코 야훼의 시간축은 그 이전의 고대신으로 올라갈 수가 없다.

또한 삼위일체의 구절을 창세기부터 구약 주구장창 예언 복선이 있는 양 어거지를 부리지만 몇가지 질문하면 금방 뽀록난다. 예를 들어 유대역사에 야훼를 처음 끌어들인 모세는 야훼의 속성을 삼위일체로 알았느냐? 제일의 예수인 다윗은 야훼 속에 예수가 있음을 알았는가? 최대 선지자 엘리야는 예수를 그 신관 유일 야훼속에 넣고 있었는가?

이 질문은 시간축을 반드시 내포하고 답을 받아야 한다. 모세, 다윗, 엘리야는 각 시간축이라서 하향으로 내려오지도 않고, 미래로부터 삼위일체 복선이나 구절을 지원받지 못한다. 다니엘과 에스겔의 예언은 시간축으로 볼 때 요한 계시록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영감쟁이들은 성령의 감화를 주절이면서 마치 시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에스겔이 시간축으로 먼저인지 나중인지는 챙기지도 않는다. 어떤 머저리는 계시록을 카피 원본보다도 먼저로 놓는 수가 있다.

이러니 비유풀이 집단이나 일반적 설교자들이 자의적으로 시대를 넘나들면서 빼먹어가는 해석질에 코웃음밖에 안나오는 것이다. 솔로몬이 수메르 여신의 허벅지와 젖꼭지와 입술을 빨고, 그 젖꼭지 입술은 예수말씀이니, 니들이 시간축 여행의 제약을 풀어버린 결과가 바로 그거다. 욥기의 하나님은 야훼가 아니고 수메르신이다. 잠언의 하나님은 야훼가 아닌 이방의 하나님이다. 에스더의 하나님은 분명 야훼라는 이름이 전혀 없다.님들이 말하는 신구약 구절구절 속에서 빼내먹는 야훼 예수는 이 시간축을 매기면 야훼와 예수가 아니다.

오늘도 주야불철 용맹정진 교리를 만들고, 비유풀이 해대는 머저리들은 들어라.
오늘은 어느 여신의 젖꼭지를 예수로 만들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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