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디아를 위하여...


헤로디아를 위하여...

※※※ 0 1,831 2003.09.27 12:58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민형)
날 짜 (Date): 1994년03월25일(금) 01시02분09초 KST
제 목(Title): 헤로디아를 위하여...


HEROD : Sie ist ein Ungeheuer, deine Tochter.

        Ich sage dir, sie ist ein Ungeheuer !

HERODIAS : Meine Tochter hat recht getan...

(헤롯 : 당신의 딸[살로메]은 괴물이야.

        괴물이란 말이야 !

 헤로디아 : 내 딸은 잘못이 없어요...

                          R. Strauss의 오페라 'Salome'에서)

============================================================================

헤롯 왕가의 여인들 중 성서에 언급된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헤로디아와

살로메 모녀는 세례 요한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인물로서 주목받고 있다. 살로메의

경우는 퇴폐적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어느정도 미화된 감이 있지만 헤로디아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비난이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 과연 그녀가 구약의 이세벨과 더불어 희대의 악녀 취급을 받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시대적 배경과 헤로디아의 집안을 이루는

두 가문(마카비 왕가와 헤롯 왕가)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


마카비 왕가(또는 하스모니안 왕가)는 신구약 중간 시대의 왕가로서 셀레우키드

(그리이스) 왕조의 지배로부터 유대 민족을 구한 집안으로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또한 대제사장을 (세습된다) 겸하고 있었다. 헤롯 왕가는 대단히

복잡한 계보로 이루어진다. 헤롯 대왕의 아버지 안티파터에게는 여러 자녀가

있었으나 헤롯 대왕, 파사엘, 살로메 세사람만 알면 충분하다. 헤롯 대왕에게는

10명의 부인이 있었으나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은 5명이다.

도리스 : 안티파터를 낳았다. 에돔 여인이며 헤롯 대왕이 마카비의 마리암과 결혼

하기 직전에 이혼당했다.

마카비가의 마리암 : 아리스토불러스를 낳았다.

말타세 : 아켈라우스와 안티파스를 낳았다.

마리암 : 헤롯(헤롯 빌립 또는 로마의 빌립)을 낳았다.

클레오파트라 : 빌립을 낳았다.

이 족보는 대단히 복잡하다. 예를 들면 마리암(마카비)의 손자 아그리파는

큐프로스와 결혼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아그리파의 아버지와 사촌간이며

큐프로스의 어머니는 아그리파의 숙모가 된다. 헤로디아와 그녀의 첫남편인 헤롯

빌립의 딸 살로메는 어머니의 숙부이자 아버지의 동생인 빌립과 결혼한다...

이쯤 되면 보통 서민으로서는 누가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혼동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마가복음서의 저자마저도 마리암(마카비가 아님)의 아들 헤롯 빌립과

클레오파트라의 아들 빌립을 혼동하고 있다. (마태복음서의 저자는 마가를 인용한

것뿐이므로 책임이 없다.)

    (...복잡하지요? 그러나 이런 것은 잘 몰라도 됩니다. 걱정 말고 읽으세요... )

헤로디아는 마카비가의 핏줄이다. 그녀는 마카비가의 마리암의 아들인

아리스토불러스의 딸이며 아리스토불러스에게는 그외에도 아들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아그리파'만을 기억해두기로 하자.


헤로디아는 두 사람의 숙부와 차례로 결혼했는데 첫 남편은 마리암(마카비가 아닌)의

아들 헤롯 빌립이며 두번째 남편은 말타세의 아들 안티파스였다.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을 죽이고 예수를 재판한 갈릴리의 왕으로 성경에 자주 나온다. 티티파스가

아님 !) 안티파스와의 결혼은 마가 6:17-29와 마태 14:3-12에 자세히 기록된 유명한

불륜 사건이며 세례 요한은 이 일을 비난하다가 안티파스에게 죽음을 당한다. 이게

바로 문제의 장면이다. 복음서 저자들은 안티파스가 요한을 죽일 생각이 없었으나

헤로디아의 딸(전남편 헤롯 빌립 소생) 살로메가 안티파스의 생일잔치에서 춤을 춘

상으로 안티파스가 뭐든지 주겠다고 하자 헤로디아가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하라'고

사주하여 요한이 살해되었다고 기록했다.


헤롯 왕가는 처음부터 유대인의 미움을 살 수밖에 없었다. 헤롯 대왕(헤로디아의

할아버지)의 아버지 안티파터는 에돔인이었다. 에돔인이란 에서(야곱의 형, 이삭의

아들, 아브라함의 손자)의 자손으로 알려진, 이스라엘과는 적대적인 민족이다.

사족이지만 유대인들은 오늘날에도 그렇듯이 주위의 이민족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고약한 국민성의 소유자들이며 자신들의 족보 중에서 서자나 버림받은 자식들을

그러한 이방인의 조상으로 설정하고 멸시하는 버릇이 있다. 에돔인은 특히

이스라엘과 사이가 나빠 아모스, 요엘, 오바디야, 에스겔 등에 의해 늘 저주받아 온

민족인 것이다. (시편 137:7의 유명한 노래 '바빌론의 강가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노라...' 를 읽어보면 자신들을 멸망시킨 바빌로니아보다 유대의 몰락을 기뻐한

에돔인에 대한 저주가 먼저 나온다. 이 시는 '네 어린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에게 축복 있으리라'는 끔찍한 표현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에돔인들은 BC

2세기경에 마카비 왕가의 요한 힐카누스에 의해 정복되고 강제로 유대교로

개종되었다. 헤롯 왕가도 그렇게 개종된 집안이었다. 헤롯 대왕은 정치적인 출세를

위해  당시 대중의 인기를 독점하고 있던 마카비가의 마리암과 결혼한 것이다.


2차 3두정치의 주인공인 로마의 안토니우스는 헤롯과 깊은 친교를 맺고 있어

안토니우스에 의해 헤롯 대왕과 그의 형 파사엘은 유대의 지배자가 되었다. 한 때

마카비가의 안티고누스가 파르티아(오늘날의 이란) 군대를 끌어들여 파사엘을

죽이고 예루살렘을 빼앗았으나 BC 37년 안토니우스의 지원을 받은 헤롯 대왕은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유대의 왕이 된다. 그러나 곧 마리암과의 사이에 불화의 씨가

싹트게 된다. 헤롯은 제사장으로 무명의 아나엘을 추천했으나(전임 제사장은

안티고누스) 마리암은 자신의 동생인 마카비가의 아리스토불러스 3세를 제사장으로

앉히고자 했다. 아리스토불러스는 마카비인이었으므로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어

헤롯 대왕으로서도 그를 저지할 수 없었다. 마침내 헤롯 대왕은 그를 암살하고

말았다.


마리암은 헤롯의 죄를 알고 있었으며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마침내 헤롯은

마리암에게 부정의 죄를 덮어씌워 그녀를 처형했다. 또한 그는 다른 아내들의

아들들과 합세하여 마리암의 아들들을 모조리 처형하여 마카비 왕가의 힘을 완전히

꺾어놓았다. 이때 처형된 마리암의 아들 아리스토불러스가 바로 헤로디아의

아버지였다. 헤로디아와 그의 오빠 아그리파는 나이가 어렸으므로 살아남았다.

BC 4년 헤롯 대왕의 죽음으로 그의 아들들(말타세의 아들 아켈라우스와 안티파스,

클레오파트라의 아들 빌립)이 영토를 나누어받았다.


아버지가 처형되었을 때 헤로디아는 아직 어렸다. 자기의 아버지와 할머니를 살해한

할아버지와 숙부들 사이에서 성장한 환경이 어떠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혈연 지배의 법칙에 묶여 나이가 차기도 전에 숙부(헤롯 빌립)와 결혼했으나 혈족

속에서 소외되면서도 혈족 속에 안주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가 강제된 근친결혼의

굴레를 벗어날  기회를 다른 친척으로부터 찾은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방인

왕조(에돔)라는 이유로 민중들에게 외면당한 헤롯 왕가의 여자에게 근친혼이나 다른

왕가와의 정략결혼 이외의 탈출구란 사실상 없었던 셈이다.


참고로 그 당시의 여인들의 지위가 어떠했는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미슈나 가운데

이혼에 관한 규정을 논한 굿팅 9:10을 보면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나 있는

'아들을 낳지 못하면...'이라는 규정 외에도 밥을 태우면, 문밖에서 물레질을 하면,

머리를 묶지 않고 외출하면... 등등의 이유로도 이혼이 성립된다. 랍비 아키바는

'다른 데서 더 예쁜 여자를 만나면 이혼해도 좋다'고까지 선언했다. 이쯤 되면

여성이 '자신의 뜻대로'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한다는 것은 논의의 대상에 들지도

못한다.  물론 서민층의 풍속은 이렇게 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왕가의

여인들은 대체로 정략결혼의 희생물이 될 뿐 자유연애란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었던

것이다. 


이런 여건에서 헤로디아는 평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뜻대로 남자를

선택했다. 강제된 결혼의 고삐를 끊고 싶었던 헤로디아로서는 젊고 능력있는

안티파스에게 이끌리는 마음을 억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안티파스의 입장도

비슷했다. 나바티야의 공주와 정략결혼을 했으나 물론 사랑이 동반된 결혼은

아니었다. 마침내 안티파스는 이복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했다.


그것으로 끝났다면 흔히 있는 남녀관계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안티파스의

장인이었던 나바티야의 왕 아레타스는 안티파스의 영토를 노리고 있었으므로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아레타스의 딸(안티파스의 본부인)은 이 사건을 구실로

나바티야로 달아난다.  탈출로의 요소에 나바티야군이 주도면밀하게 배치되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안티파스와의 관계는 부부라기보다 감시자에 가까왔을 것이다.

마침내 안티파스와 아레타스의 무력 충돌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장난이 아니다. 안티파스가 지배하던

갈릴리의 민중들은 권력자의 불장난이 불러 일으킨 값없는 싸움에서 의미없이

죽어갔던 것이다.


따라서 세례 요한이 안티파스를 규탄한 것은 (요한으로서는 단지 경건주의자로서의

도덕적 비난에 그쳤을지 모르지만) 갈릴리 민중들의 폭넓은 공감을 얻어 안티파스를

정치적인 궁지로 몰아넣었다. 민중들은 흔히 있었던 왕가의 불륜을 규탄한 것이

아니라 그 결과 자신들을 전쟁으로 몰아넣은 상황에 대해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요한의 대중적 인기가 이것을 더욱 부채질했다. 에돔 컴플렉스에 시달리며 요한을

경계하던 안티파스로서는 요한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서는 메시아를 자처하는 자들에 의한 민란이 자주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요한과 같이 대중의 인기를 업고 수많은 제자와 지지자들을 몰고다니며

권력층과 사제들을 비난하는 겁없는 사람은 통치자들에게 있어 요주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살로메의 춤이 어쩌고 하는 우스운 이유로 요한을 죽인 것이 아니다. 요한은

처음부터 죽어야 할 운명이었던 거다.


살로메가 춤을 춘 보상으로 헤로디아가 요한을 죽이도록 꾀었다는, 서양문학자들이

즐겨 써먹은 야사의 신빙성은 희박하다. 요한은 왕궁이 있던 티베리아에서 멀리

떨어진 마카이루스의 요새에 유폐되었으며 거기에서 죽었다. 왕궁의 연회 때에 즉시

죽여 그 목을 쟁반에 얹어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고대사 18:109) 마가복음서의 저자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과장된

전승을 그대로 복음서에 실었고 마태복음서의 저자는 이것을 그대로 인용했다.


여기에서 잠시 마가복음서의 저자의 신빙성에 대해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마가복음은 이방인 전도를 목적으로 씌어진 글이다. 마가복음서의 저자는 구약을

적게 인용하고 아람어(예수가 사용한 언어)나 히브리어를 거의 언제나 희랍어로

번역해주고 있다.(달니다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는 유대인의 관습을 설명해주고 있으며 이방인의 습관을 고려하여

로마의 관례에 따라 밤을 4등분하고(6:48, 13:35) 그리이스 동전을 로마 동전으로

환산하는(12:42) 등의 친절을 베풀고 있다. 그러나 사실 마가복음서의 저자도

유대의 풍속에 대해서는 들은 풍월일 뿐이었다.


>바리새인과 모든 유대인들은 조상의 전통에 따라 손을 잘 씻지 않으면 먹지 않았고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않았으며 그 외에도 여러가지
>지켜오는 관습이 있었으니 예를 들면 잔과 단지와 놋그릇등을 잘 씻어야 했다.

마가 7:3-4의 윗문장은 연구가들 사이에 악명높은 문장이다. 실제로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런 관습을 따르지 않았다. 이런 율법은 사제에게만 주어진 규정이며

이것을 평민들까지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일부 극렬한 바리새인들뿐이었던

것이다. 마가복음서의 저자는 유대의 풍속을 알지 못했으므로 요란하게 유포된

바리새인의 생활 규약이 곧 모든 유대인의 습속이라고 오해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마가복음서의 저자가 최후의 만찬 장소를 제공한 시몬 베드로의 제자 마가가

아니라는 증거도 된다. 그는 이방인이었거나 유대에서 생활한 적이 없는

유대인이었다. 이 글에서 '마가'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굳이 '마가복음서의

저자'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부족한 정보와 자료에 의한 오류는

'성령의 손을 빌어 저술한' 책에서도 피할 수 없었으니... 마가복음서의 저자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이 아니라 도서관이었던 셈이다.


어쨌든 이런 초보적인 분석만으로도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복음서에서 낭만적으로 채색된 왕실 야사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불쌍한

여인 헤로디아를 악녀로 몰고가는 것은 역사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10년쯤 후에 (AD 39)안티파스도 실각한다. AD 37년에 카리귤라가 (유명한 폭군...)

로마 황제가 되자 그와 친했던 아그리파(헤로디아의 오빠, 세배대의 아들을 죽이고

베드로를 체포한 왕. 사도행전 12장 참조)가 팔레스타인의 지배권을 장악하고

안티파스를 추방했다. 마리암과 그의 아들들을 죽인 숙부들에 대한 보복인 셈이다.

안티파스는 갈리아(프랑스)의 리용 근처에서 죽었다.


헤로디아는 원하기만 했으면 안티파스와의 관계를 끊고 오빠의 비호 아래

갈릴리에서 유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카리귤라가 직접 그녀에게 그렇게

권유했다. 그러나 헤로디아는 '지금까지 남편의 행복에 의지해 온 내가 이제 남편이

이러한 운명에 빠졌다고 해서 남편을 버리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라고 대답하고

안티파스를 따라 추방지인 갈리아로 향했다. (요세푸스의 고대사 18:254)

여기에서는 음탕하고 교만하며 권세욕과 물욕에 가득 찬 악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헤롯 왕가를 증오하여 로마에 밀착한 유대 지식인 요세푸스는 그녀의 이 말을 '오만'

하다고 평하고 있으나 여기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생애에 단 한 번 자신의 의지로

얻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추방지까지 따라간 숭고한 여성의 모습일 뿐이다.

톨스토이가 이러한 진실을 알았더라면 헤로디아를 주인공으로 또 한편의 '부활'을

쓰지 않았을까?


글 쓴 이(By): staire (강민형)
날 짜 (Date): 1994년03월25일(금) 02시22분35초 KST
제 목(Title): 헤로디아.... 에 덧붙임


예수의 전기를 써 보겠다고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의 일입니다.

어리고 치기만만하던 저는 에르네스트 르낭과 같은 명저를 남기지는 못하더라도

엔도 슈사꾸보다는 잘 쓸 수 있다는 건방진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헤로디아의 기구한 사연은 그런 과정에서 얻은 부산물입니다. 그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발견하던 날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새롭습니다.

그녀에게 돌을 던지지 맙시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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