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guest(마리아)] (staire님께 질문)


[to guest(마리아)] (staire님께 질문)

※※※ 0 2,387 2003.09.30 04:28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8년 10월 28일 수요일 오후 06시 12분 33초
제 목(Title): [to guest(마리아)] (staire님께 질문)



> staire님께서 생각하시는 바에 따르면, '사고 활동'과 '이성'은 모두 물질에 의해
> 발생하는 '사건'일텐데, 그렇다면 그것들도 이성적이지도, 비이성적이지도 않은
> 것 아닙니까?

사건 그 자체는 이성적이지도 비이성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사고 활동'

이라는 사건과 '사고의 주체'라는 물질 덩어리(인간이나 동물 등등)을 이성적이라고

부릅니다. 언뜻 모순 같지만 모순이 아닙니다. 이성적이지도 비이성적이지도 않은

것은 사건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사고 활동이라는 '사건'은 별다른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사고 활동의 패턴 중에는 이성적이라고 부를 만한 형태의 것들이 흔히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사고 활동 '그 자체'는 이성적이라느니 아니라느니 말할 바가

못 됩니다. 우리가 '이성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고 활동 그 자체가 아니라 사고

활동 중 일부만이 갖는 어떤 속성의 명칭, 즉 형용사입니다. ('이성'이라는 명사는

존재하지만 그 명사에 해당하는 '실체'가 존재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사고

활동 그 자체는 전기화학적 반응일 뿐이며 우리가 이성적이니 비이성적이니 부르는

것은 그 사고 활동의 패턴이지 사고 활동 그 자체는 아닙니다. 또한 사고의 주체

자체는 물질 덩어리이며 이성적이니 비이성적이니 하는 말로 묘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사고 주체의 사고 활동이 이성적이면 우리는 그 사고 주체가

이성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도 이성적이란 사고 주체가 하는

행동(이성적인 사고)을 묘사하는 말일 뿐이며 원래의 용법(사고의 패턴을 묘사)에서

파생된 용법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핵심은 '사고의 패턴'이며 사고 활동의 패턴은

원초적인 의미에서 이성적이라거나 비이성적이라는 말로 묘사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입니다. 사고 활동이 이성적이라거나 사고의 주체가 이성적이라고 하는 표현은

모두 원초적인 의미가 아니라 파생적인 의미에서의 용법입니다.


> '사고주체'는 무엇입니까? staire님의 견해에 따르면, 자연계 내에서 원인과
> 결과에 의해 묶여진 수 많은 사건들 외에, 어떤 '주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 수
> 없지 않나요?

생각하는 사람은 사고의 주체입니다. 주인을 보고 반가움에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도

사고의 주체입니다. 사마귀를 보고 공포에 얼어붙은 메뚜기도 사고의 주체입니다.

그것들을 '주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즉, 마리아님께서는 '주체'

라는 용어를 어떤 의미로 쓰시기에 순수 물질계에는 '주체'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자연계에 수많은 일들이 있고, 그것들은 또 수 많은 패턴들을 이루겠죠. 그리고
> staire님께서 그 중 일부를 '이성'이라 명하셨는데, (그것이 사고 과정의 패턴
> 이든, 사고 과정 중 일부의 패턴이든, 까마귀의 것이든 여기서는 상관 없습니다.)
> 다른  패턴들과 구별하여 그 패턴들을 '이성'이라고 부르게 한 특별한 이유가
> 무엇입니까? "'이성적'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신다면 그것은 순환론이
> 아닐까요? 결국, 앞의 질문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 어떻게
> 갑자기 '이성'이라는 것이 생겨납니까? 사고 과정 중의 일부 패턴이 '이성'이라고
> 말씀하셨는데,  판단의 주체는 없고, 사건(사고 포함)만이 있는 가운데, 사건 중
> 일부가 어찌 '이성적'이 되며, '이성'이 되겠습니까?

다른 패턴과 구분하여 그것을 이성이라고 부르게 한 특별한 이유는 그러한 패턴들이

'이성적'이기 때문입니다. :) 이것은 순환론이 아닙니다. 물론 특별한 경우에는

순환론이 될 수 있지요. 마리아님과 같은 세계관을 가진 분의 눈으로 보면 순환론이

됩니다. 왜냐면 마리아님은 패턴들을 관찰하기 이전에 '이성적'이라는 개념을 이미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성적'이라는 개념이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다면 순환론입니다. 이러이러한 것은 이성적이고 이러저러한 것은 비이성적이라는

기준이 먼저 있은 다음 자연계의 사건들 중 하나를 지목하여 그 패턴이 미리 주어진

이성의 개념에 맞는지 살핀 후에 그것이 이성적이냐 비이성적이냐를 결정한다면

그것을 이성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선험적 기준에 따라 판단할 때' 그것이 정말

이성적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째서 그 패턴들을 이성적이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미 선험적으로 주어진 이성의 개념을 따를 수밖에 없으므로 "이성적이기

때문에"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순환론입니다.


저의 세계관에서는 순서가 반대입니다. 이성에 대한 정의나 기준 따위는 전혀 없이

관찰로부터 시작됩니다. 실험을 했더니 철망 너머에 있는 먹이를 보고 닭들은 그냥

돌진하여 머리를 부딪치지만 개는 갈팡질팡한 끝에 철망 옆으로 돌아가서 먹이를

얻게 되고 원숭이는 단번에 (아무 고민 없이) 철망 뒤로 돌아가는 방법을 택하더란

말입니다. 그러면 관찰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닭과 개와 원숭이의 행동 패턴의

이면에는 본능적으로 먹이를 향해 덤벼들기보다는 좀더 먼 안목으로 헤아릴 줄 아는

요소가 있구나. 닭에게는 그것이 아주 박약하고 개에게는 적당히 있고 원숭이에게는

꽤나 풍부하구나. 이것을 뭐라고 부를까...' 그러다가 왠지 멋있어보이는 글자들을

골라 그런 패턴을 '이성'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성이라는 개념은 이제 처음으로

생긴 것입니다. 이성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무방합니다. 그 이후 또다른 실험

또는 관찰의 과정에서 비슷한 패턴을 발견하면 저는 그것을 '이성적'이라고 봅니다.

"어째서 이성적이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예전에 '이성적'이라고 정의한

속성과 비슷한 패턴을 보이므로 이성적이라고 부른다"라는 정도의 대답을 드릴 수

있겠지요. 여기에서는 '이성이란 무엇이며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선험적인

논의가 전혀 없으며 관찰된 사실로부터 정의된 '이성이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는

논의가 가능할 뿐입니다. 물질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관찰하여 얻은 결론이므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물질계 밖에서의 원인을 찾으려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지적했듯이 minimalism입니다.)


'꼭 필요한 경우'란 어떤 경우일까요? 물질계 밖에 있는 이성의 원천을 가정하지

않으면 심각한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경우를 만난다면 물질계 이외의 이성을 적극

검토해야겠지요. 저는 아직 저의 기계론적 세계관이 이성의 기원 문제에 관한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을 실험으로도 관찰로도 사색으로도 경험하지 못하였습니다.

혹시 그런 예가 있다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지하게 검토해 볼 생각입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 글이 길고 지루해질수록 집적거리는 사람 없이 단둘이 얘기할 수 있어서 훨씬
  낫군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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