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스테어님께 - 크리스마스


[R] 스테어님께 - 크리스마스

※※※ 0 2,873 2003.09.30 02:46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7년12월09일(화) 23시08분03초 ROK
제 목(Title): [R] 스테어님께 - 크리스마스



Gatsbi님을 오랜만에 뵙는군요. :)


> 스테어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원래 12월 25일은 태양절 축제였지요.
> 전도를 목적으로 크리스마스를 그 날로 옮긴 것도 맞지요.
> 그리고 현재의 크리스마스는 흥청망청하는 날이 되어버린 것도
> 사실이지요. (혹은 전부터 흥청망청)

12월 25일이 태양(Sol Invictus)의 축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날이 예수의

생일로 둔갑한 것은 이교도들에 대한 전도의 편의를 위해서였다는 것은

제가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에 속합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일단 도외시

해도 될 듯합니다. 더우기, 저는 성탄절의 흥청망청 분위기를 그다지

좋지 않게 보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그것이 '기독교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으며 이 보드에서건 어디서건 그렇게 말한 적도

전무함을 분명히 하고 싶군요.


> 그러나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을 기념한다는 뜻(기본 취지)에는 변함이
> 없으며

'예수가 태어난 날을 기념한다는 뜻'이 기본 취지라면 태양신의 축일로서가

아닌 예수 탄생일로서의 12월 25일의 기본 취지를 말씀하시는 것이겠군요.

맞습니까? :)

그렇다면 기본 취지에 변함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 탄생일로서의

기본 취지'란 다시 말해서 '변질 이후의 기본 취지'이기 때문이며 변질

이후 다시 변질된 적이 없었으니까요. 솔직이 말씀드린다면 여기까지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시는지, 그리고 왜 그것을 저에게 말씀하시려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저도 여기까지는 당신의 글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이 태어나심으로 인해서 수많은 불우 이웃들이 "한번 더" 관심을
> 받는 날도 그 날이 아닌가요?

여기서부터는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군요. 이 구절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는

당신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제가 언제 그렇지 않다고 한 적이 있던가요?

이런 '특별한 날'에만 가난한 이웃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슬픈 일이며

부끄러운 일입니다.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늘 이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더 부끄러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점은, '기독교적인 물이 들기 이전의' 태양 숭배 축일의

모습입니다. 초기 교회사에 대한 입문서들만 일별하시더라도 충분한 지식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이 축제는 풍요와 다산의 기원과 더불어 '이웃들과의

선물교환', 가난한 자들과 하층민들까지를 포함하는 '다같이 어울리는

흥겨운 잔치 마당', 그리고 돈과 권력을 독점한 자들의 '구휼 행위'를

포함하는 행사였습니다. 기독교회에 의해 변질되기 이전부터 이미 그랬던

것입니다. '태양 숭배 축제 시절에는 퇴폐적인 축일에 불과했으나 기독교회가

개입함으로써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날로 새로이 자리잡았다'고 생각하셨다면

한참 잘못 생각하신 것입니다. 인류는 기독교회가 가르쳐 주기 이전에 이미

이웃을 사랑할 줄 알았습니다. 또한, Gatsbi님께서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애초에 갖지 않으셨다면 어째서 저에게 여기까지의 내용을 말씀하셨는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 예수님이 쉐마에 나온 말을 그대로 한 것은 사실이지요.
> 예수님이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닌, 별로 강조하지도 않았던 "사랑"을
> 말씀하신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그 단어를
> 실천하셨고, 제자들에게 전하셨던 것도 "사랑"아닌가요?

예수가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사랑을 실천했다는 말씀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석가나 소크라테스가 예수보다는 훨씬 나은 면이 많습니다. 물론

저는 불교인도 아니고 소크라테스교도(?)는 더더욱 아닙니다만. 예수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자들에 대해 '뱀의 무리'니 '독사의 자식'이니 하며

폭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최선의 태도라거나 사랑이 가득한 언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인민들을 착취하던 성전에서 손수 채찍을 휘둘러 상인들을 소탕한

행위는 저로서는 박수를 보내고 싶을 만큼 멋진 장면이지만 (물론 그것이

글자 그대로 사실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삼엄한

경비를 무시하고서 그런 짓을 하고도 무사히 빠져나간다는 것은 청와대에

침입해서 총질을 해대는 것과 맞먹는 일입니다. 골목대장의 무용담이 입에서

입으로 구르며 신화가 되어가는 과정을 밟아 형성된 전승이겠지요.) 그것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과 어떻게 일치될 수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누구를 억압하기는커녕 멸시와 핍박에 시달리던 가난한 이방인 과부를

개에 비유한 독설이나 (곧 뉘우치기는 했지만) 죄없는 돼지들에게 귀신을

몰아넣어 몰살시킨 일, '아직 무화과 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않은 멀쩡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한 일 등은 사랑이라는 말로 얼버무릴 수 있는

장면들이 아닙니다.


저는 예수라는 인간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예수가 사랑의 전도사였기 때문은

아닙니다. 또한 '예수만을' 병적으로 좋아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에게 예수는

'이럭저럭 괜찮은 녀석' 정도의 의미를 가질 뿐입니다.


> 공자는 시경에 나온 말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으셨습니까?
> 막말로 말해서 논어에 나오는 말 중에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사실"이
> 얼마나 있습니까? 공자는 자신이 한 말을 책임졌기 때문에 평범한
> 진리들이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저는 공자라는 인간보다는 예수를 좋아합니다. 물론 이 논의와 전혀 무관한

사족이지만요. :)


공자가 시경에 나온 말을 인용한 것이 사실이긴 한데 그것이 공자 사상에서

어느 정도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겠지요. 저의

견해로는 예수가 쉐마를 인용한 것이 그의 핵심 사상과 별 관계가 없었듯이

공자가 시경을 인용한 것도 공자의 핵심적인 사상과 크게 관련지어 거론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공자에게서 발견되는,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것이 얼마나 있냐고 하셨는데 그야말로 '막말'이로군요. 공자에게는

이전의 사상과 뚜렷이 구분되는 점이 과연 없습니까? 공자를 깊이 공부하고서

내리신 결론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규정지으셨듯이 '막말'이라고 볼

수밖에요. 공자 사상의 가장 큰 약점이자 강점은 '보상이 없다'는 점입니다.

공자는 '인간다움', '어짊', '백성에 대한 사랑', '너그러움', '성실' 등등

수많은 덕목을 말했지만 단지 그것이 '하늘의 도리'라고 했을 뿐입니다.

하늘의 도리를 실천하는 이가 현실에서 오히려 핍박을 당하고 하늘의 도리를

거스르는 무리들이 부귀 영화를 누리는 일이 흔하기는 오늘날이나 공자의

시대나 다를 바가 없었지만 공자는 '다만 그것이 옳기 때문에' 실천하라고

말했습니다. 내세관이 없는 공자는 하늘의 도리를 따르는 것에 대해 아무런

보상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법가나 묵가의 실용주의 철학 사이에서 공자의

일견 허약해보이는 사상이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제 왕정의

성립기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무것도

약속받지 못했지만 묵묵히 당위를 따르는, '시경을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 이러한 치열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내세에 주어질 보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요.


또 한 가지 지적한다면, 예수와 마찬가지로 공자도 언행이 철저하게 일치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논어에 따르면 공자가 탐탁치 않게 보는 사람이 찾아와

가르침을 구했으나 제자에게 '집에 없다고 하라'며 만나주지 않았다는군요.

여기까지라면 그런가보다 할텐데 그 사람이 공자의 집 문을 나서기도 전에

거문고를 꺼내 그 사람의 귀에 들리도록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다는 거죠.

요놈아, 내가 집에 없긴 왜 없어. 네놈 같은 녀석이랑 얘기하느니 이러고

노는 게 백 번 낫지... 귀엽게(?) 보아 줄수 있는 측면이기도 합니다만 영감의

심술 치고는 고약하지요? 요컨대 공자의 진정한 가치는 '그 자체로는 평범한

진리지만 치열한 실천으로 인해 빛을 발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안이하게

규정해버려도 좋을 만큼 너절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 기독교가 그렇게도 마음에 안든다면 기독교보다 훌륭한 종교나 사상을
> 만드시지요? (진지한 제안입니다)
> 기독교의 멸절을 주장하시는 분의 "기독교보다 훌륭한 사상"을 들어
> 보고 싶군요. (이건 비꼬는 말임)
> 제가 들어보고 정말로 훌륭한 종교나 사상이라면 개종을 한번쯤
> 심각하게 고려해보겠습니다.

첫째, 제가 그런 것을 감히 만들 만한 처지도 아닙니다만 굳이 제가 만들지

않아도 '기독교보다 훌륭한 사상'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더우기 그것은 무슨

대성인이나 대천재가 창안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으며

누구나 훌륭하게 계발(개발이 아님)해낼 수 있는 미덕입니다. 특정 사상가나

특정 종교집단만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는 바울식의 (더 정확히 말한다면

놀부식의) 사상이라면 저는 애초에 관심 없습니다.


둘째, 저는 진리나 사상 체계라는 것의 유일성 또는 최고성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저마다 같지 않은 실존적 체험과 같지 않은 자질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모든 인류가 빠짐없이 '하나의 진리'에 매달려야 한다거나

어느 사상보다도 더 뛰어난 '최고의 사상' 따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전에 제오님께 드리는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저는 '진리란

모든 개인이 스스로 찾아나서야 하며 모든 세대가 새로이 찾아나서야 할

그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아이비에서 '아향'이라는 분을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아향 : 창조자를 믿지 않으세요?

스테어 : 믿지 않습니다.

아향 : 절대자께서 내 삶을 내려다보고 계시다는 것도요?

스테어 : 역시 믿지 않습니다.

아향 : 그렇다면 스테어님의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스테어 : 당신의 목표는요?

아향 : 저의 목표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죠.

스테어 : 훌륭한 목표로군요. 저는 아향님께서 제 인생의 목표를 물으시기

      전까지는 제 인생의 '목표'라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더라도 아향님의 경우처럼 뚜렷한 목표 같은 건

      없다고 보는 게 옳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제 삶을 소중히

      여기고 제 삶을 순간순간 기뻐합니다...


기독교인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런 staire가 무슨 '훌륭한 사상' 같은 것을

창안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는 선각자가 아닙니다.


> 만약에 "나는 비판만 할 뿐이야"라고 말씀하신다면...
> 글쎄요, 스테어님의 인생이 무척이나 가치없게 쓰여지는 느낌을
> 확신으로 굳혀야겠군요.

저는 비판만 하고 있는것이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알려 드렸다고 생각하며

그럼에도 제 인생의 값어치에 대해 부정적인 확신을 가지신다면 저로서도

말릴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당신의 행복에는 더

유익할 테니까요.


역시 사족일지 모르지만 '스테어의 인생이 가치없다는 것이 아니라 가치있는

인생이 가치없는 데에 쓰여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는 변명이 따를지도

모르기 때문에 한 말씀 더 올립니다. 인생이란 '쓰여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쓰여짐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사실은 '쓰여진다'는 동사 자체가 어딘지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이라는 어색한 번역투의 관용구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저는 그러한 표현을 즐기지 않습니다만.) 따라서 저에게는 '가치있는

삶이 가치없이 쓰여진다'라는 개념 자체가 별 의미가 없습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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